브라만 출신 힌두교인 역파송 인도 선교사 되다
인도 선교사 판카즈 카필라 목사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1월호 /2019 표지  © 크리스찬리뷰



 ▲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 출신의 힌두교인이었던 판카즈 카필라 목사. 그는 한국에 왔다 개종하고 장신대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역파송 선교사로 모국인 인도로 돌아간다.  ©크리스찬리뷰
 

'인도'(India)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묘인 타지마할? 세계에서 7번 째로 큰 나라?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 3억 3천만의 신을 섬기는 힌두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 세계 5대 종교의 하나인 시크교(Sikhism)? 등등.
 
인도는 정말 다양하고 어마어마한 나라이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나라이다. 언어만 3천372개나 된다고 하니 상상이 가는가? 인종도 아리안계의 인도인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인종 전시장이다.
 
1997년 구세군 성장대회가 용평에서 열렸다. 인도 '미조람'에서도 구세군 사관이 참석했다. 공항에서 만난 인도사관은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는 반갑다고 인사하며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인도 기독교 선교 역사



▲ 판카즈 목사의 고향 펀자브      
 
인도는 전 세계에서 선교역사가 가장 긴 나라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한 명이었던 도마 선교사가 인도에서 복음을 증거했다고 하니 인도 선교는 예수의 부활사건 이후 가장 먼저 선교가 시작된 나라인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0년이 넘는 긴 선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도 선교의 열매는 아주 미미하다. 현재 인도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 13억 4천만 명 중 불과 3%에 불과하다. 3%의 기독교인들 중에 약 70%는 '달리트'라고 하는 '불가촉천민들'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인도에서 기독교인은 천민들이 믿는 종교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2018년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에서 발표한 기독교 '세계박해순위'(World Watch List)에 인도는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인도의 기독교 세계박해 순위는 17위, 2015년에는 21위였다. 순위의 변동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의 박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특히 폭력수위가 크게 상승했다.

▲ 판카즈 목사 가족. 왼쪽부터 판카즈 카필라 목사, 둘째 딸 하나, 첫째 딸 사라, 이혜정 사모(전도사), 막내 딸 예나.       ©  크리스찬리뷰

현재로서 가장 큰 박해는 ‘힌두교 과격분자들’(Hindu radicals)이며 ‘마오주의자’(Maoist)반군, ‘무슬림’ (Muslim) 세력으로부터 압력이다.
 
최근 '오픈도어선교회'가 전한 소식에 따르면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이후 선교에도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모디 총리가 집권한지 1년 여가 지난 가운데 현재까지 1만 3천여 곳이 넘는 비정부기구들과 선교단체들의 해외기부금 라이센스 갱신이 철회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디 총리 집권 이후 계속하여 '힌두투바'(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로 만들자는 운동) 운동을 하고 있다.
 
인도 선교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내년 선거에 모디 총리가 재집권하면 2024년까지 '힌두투바'의 일환으로 힌두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추방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선교가 점점 힘들어지는 인도에 선교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가족이 있다. 그는 인도 사람이다.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 출신의 힌두교도였다.
 
2000년에 한국에 왔다가 '나섬공동체' 대표인 유해근 목사를 만나 개종을 하고, 장신대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후 목사안수를 받고 '역파송 선교사'로 모국인 인도로 간다. 2019년 1월 11일, 부인인 이혜정 선교사 그리고 세 딸과 함께 고향인 '펀자브'(Pubjab)로 돌아간다.
 
역파송 인도 선교사 판카즈 카필라

▲ 판카즈, 이혜정 선교사 인도 파송 예배가 지난 11월 18일 나섬교회당 (재한몽골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판카즈    
 
▲ 인도 파송예배에서 기도는 유해근 목사 부부(오른쪽)와 판카즈 목사 부부(왼쪽)  ©판카즈    

판카즈는 인도 북부 펀자브의 주도인 '찬디가르'에서 온 나그네였다. 카스트의 ‘브라만’ 계급인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어릴 적부터 문제아로 자랐고, 급기야 20살 때 대형 사고를 치고 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감옥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가급적 빨리 떠나야 했는데, 브로커에게 부탁해서 가장 빨리 비자를 받은 곳이 '한국'이었다.
 
비자를 받은 후, 속히 한국으로 떠나야 했는데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한국은 미국 아래에 있다고 해서 한국에 올 때까지 미국 쪽으로 가는 줄만 알았다.
 
그는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브로커가 만들어준 비자를 들고 비행기를 탔다. 그는 포천 '송우리'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나그네의 삶을 시작했다.
 
그의 싸움버릇은 한국에서도 여전했다. 인도인들의 조직 속에서 그는 우두머리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사건과 사고에 연루되었다. 마침내 인도인들끼리 폭력사건이 일어나고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인도 사람들끼리의 주도권 다툼 중에 친구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자리에 판카즈는 없었다.

▲ 시드니새생명교회 주일예배 설교에 앞서 강승찬 목사와 예배위원들이 판카즈 목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다.       ©크리스찬리뷰

판카즈 목사의 간증 

"저는 힌두교 최고 계급인 브라만 출신으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나섬 공동체에서 힌두교들인이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손봐주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잘 해주는 것입니다. 계속 다니게 된 이유는 거기에 제 이상형이 있었어요.
 
국토순례가는 날 교회에서 최신형 핸드폰을 충전하다가 핸드폰을 잃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교회에도 도둑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꾹 참았습니다. 이상형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요.
 
만약 그때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전화를 받고 싸움터로 갔을 겁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국토순례도 믿음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이상형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는 살인한 친구를 돕기 위해 유해근 목사를 찾았다. 유 목사는 자수해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친구에게 자수를 권유했다. 친구는 자수를 하고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기대와는 다르게 15년 형을 받았다. 판카즈는 맘이 무너지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해정 자매는 그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 “당신의 문제를 모두 들어 주시는 분이 계시니 다 이야기하세요. 그분은 예수님입니다”.
 
“저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친구는 계속해서 저를 원망했습니다. 약 30일쯤 기도했는데, 알지 못하는 변호사가 나타나서 돕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15년에서 4년으로 감량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친구는 인도에 있는 가족들이 돈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감옥에 있으니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알지도 못했던 어느 집사님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인도의 가족과 감옥에 있는 친구를 매달 30만 원씩 도와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교도관이 대통령에게 친구를 인도로 보내 달라는 탄원서를 썼습니다. 결국 제 친구는 1년 반 조금 지나서 인도로 갔습니다.“

▲ 판카즈 목사는 지난해 4월 20일 시드니영락교회당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영적인 아버지인 유해근 목사와 나섬교회 성도들이 축하했다.  ©판카즈     

신학공부를 시작하다
 
판카즈는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하나님이 공부하게 하셨다. 순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학부 4년, 신대원 3년을 9년 만에 마쳤다. 남보다 2년을 더 공부했지만 그것은 기적이었다. 입학할 때,그는 한국말도 잘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기적이다.
 
"목사고시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처음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재시험 기회를 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따로 내서 공부하려 했는데 교회 일이 생기고, 어려운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핑계로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같지 않아서 도와주었습니다.

▲ 판카즈 전도사와 한국인 아내 이혜정 전도사의 결혼 사진 (2005. 10.1)           ©판카즈    

결국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번 시험을 다시 검토하라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동기에게 지난번 목사고시 시험 내용을 받아 공부하고 시험장에 갔습니다. 놀랍게도 시험은 정말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끝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합격했습니다. 진짜 시험은 교실 안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치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시험에 합격하니, 하나님은 보너스로 목사 고시도 합격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세 명의 딸이 있습니다. 첫째 딸은 죽었던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태중의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유산이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1주간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일 주일간 밤새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이제 수술을 앞두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에게 숨을 주셨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정말 놀랬습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담당 의사였습니다. 저는 놀라는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의사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3년 후에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해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 갔고, 셋째 아이를 낳을 때도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 갔습니다."

▲ 판카즈 목사의 여동생 약혼식. 뒷줄 왼쪽부터 판카즈, 아버지 수레시 카필라, 어머니 푸라바 카필라, 이혜정 선교사와 큰 딸 사라. 그리고 여동생 사라와 약혼남(2011.2.)  ©판카즈  

"2016년 CGN TV와 함께 인도에 갔습니다. 인도에 있을 때 제 생일이었습니다. 담당 PD와 카메라 감독이 인도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실 인도 성경은 집에 많이 있기 때문에 속으로 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가기 전날 5시간 떨어진 집에 갔습니다. 한밤중에 도착하니 새벽 내내 아버지가 힘들어 하며 저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힘들었을 때 위로를 해준 것이 성경이라고 소개하며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기도 중에 걷지 못하는 옆집 동생에게 성경을 주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찾아가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성경을 주었습니다. 제가 떠나고 힌두교 브라만 선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성경을 읽었습니다. 6개월 후 옆집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가복음 5장, 혈루증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자신도 고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판카즈 목사는 1월 11일  '역파송 선교사'로 인도로 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는 것을 말렸다. 호주로 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도 호주로 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인도를 사랑한다. 네가 필요하다. 너는 그냥 나와 함께 있으면 된다.’"
 
"그때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인도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나섬 공동체 대표 유해근 목사

▲ 유해근 목사와 이강애 사모. 이 사진은 본지가 나섬공동체를 찾아가 유 목사 부부를 인터뷰하며 촬영했는데 이때 유 목사는 약간의 시력이 있었다.(2006. 6월.)                      ©크리스찬리뷰    

'나섬공동체'란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의 약자이다. 나섬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사역과 프로그램은 외국인 나그네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 우리의 입장에서 나그네들을 바라보거나 혹은 우리의 편의대로 그들의 욕구를 판단하기도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지원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된 공동체는 나그네들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품어낼 수 있는 열린 공동체이다.
 
필자는 유해근 목사를 두 번 만났다. 실명 전과 실명한 후이다. 10년도 넘었지만 그때 그가 한 설교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다문화사회와 다민족사회에 대하여 구분하여 이야기를 했다.
 
"다문화사회는 외국인이 인구의 2%-5%입니다. 외국인 인구가 5%가 넘으면 다민족사회입니다. 한국은 아직 다문화사회입니다."

▲ 나섬교회에서 운영하는 각종 선교회와 학교 안내 간판이 교회 입구 거리에 설치되어 있다.  ©크리스찬리뷰    
▲ 인도공동체 모임에서 말씀 전하는 판카즈 목사  ©판카즈    
 
▲ 재한몽골학교 학생들이 후원의 날에 장구 연주를 하고 있다.  ©판카즈  

 그리고 10년이 더 지나서 다시 그를 만났다. 현재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약 250만 명이 된다. 대한민국 인구를 5천만 명으로 보면 이제 한국은 '다민족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유해근 목사는 한국에서 '이민목회'를 하고 있다. 한국의 이민목회는 타국의 이민목회보다 훨씬 더 어렵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생존권의 위협을 받으며,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 사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호주에 이민 온 사람들이 호주의 인종차별에 대하여 운운한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는 호주가 아니라 한국이다. 한민족의 민족성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그건 아니다. 다민족의 경험이 없는 한국인은 별다른 생각없이 자기 입장에서 외국인을 대하다 보니, 그것이 곧 인종차별이 되었다.
 
한국에 온 이주민들은 나그네이다. 성서는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 나섬교회 인도공동체 주일예배에서 유해근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판카즈 목사가 동시통역을 하고 있다.  ©판카즈 
 
군목 출신이었던 유 목사는 미국 유학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만 타면 됐다. 그런데 갑자기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가 그를 찾았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가지 말고, 이곳에서 이주민 선교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때 받은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유 목사가 갖고 있던 목회 철학과 원칙, 즉 “최고가 아닌 최초의 목회”,  “약자를 돕는 목회”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유목사는 그 자리에서 동의하고 미국 대신 '구로공단'으로 갔다. "
 
1992년, 유목사는 한국 최초의 이주민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인권과 생존권을 유린당하고 노예처럼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변하여 동분서주로 뛰었다.
 
1994년 과로로 인하여 시력을 잃게 되었다. 1995년,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자살하려다가 실패했다. 다행히 1997년 시력이 회복되자 '성수공단'으로 사역의 장을 옮겼다. 하지만 2003년 재발하고 2007년부터 그는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섬 공동체'의 지경은 계속 넓어졌다.

▲ 나섬공동체 교인들이 부활 찬양대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  ©판카즈  

▲ 재한몽골학교 졸업식을 진행하는 이혜정 전도사.  ©판카즈    
 
유 목사는 농담으로 말한다. "원래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유해근 목사는 2001년 '나그네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란 책을 필두로 최근에 쓴 '아이러브 몽골'까지 총 8권의 책을 썼다. 두 번째 책인 '가출해야 성공한다'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책 내용은 성서의 성공한 인물은 모두 가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과 모세 그리고 예수도 하늘에서 땅으로 가출했다.
 
가출이란 기존의 고정관념과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날 대학을 잘 다니던 아들이 독립할 때가 되었다며 나가겠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아들은 '가출'했다. 그래도 감사하다. '출가'하지 않아서. 우연히 아들 방에서 '가출해야 성공한다'란 책을 보았다. 
 
"혹시, 아들이 이 책을 보고 나간 건 아닐까? 도대체 누가 쓴 거야?"
 
나함사 (나섬과 함께하는 사람들) 
 
▲ 김두제 권사(샘물장로교회) 자택에서 열린 ‘나함사’ 첫 모임에 참석한 성도들.      ©  크리스찬리뷰

지난 2018년 12월 9일 오후 6시, 김두제 권사 아파트에서 '나함사' 첫 번째 모임이 있었다. 김 권사는 오래 전부터 나섬공동체와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후방 선교사로서, 전방 선교사를 돕는 역할을 했다. 작년 1월 인도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그녀의 삶은 선교적 삶으로 바뀌었다.

▲ 판카즈 목사는 25년 만에 친구 캄마(Kamma) 씨를 나함사’ 모임에서 만나 반갑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선교를 다녀오기 전에는 막연하게 선교사를 돕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인도에 다녀온 후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선교에는 전후방이 없고, 우리가 사는 이곳이 선교지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선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일상의 일을 선교와 연결시키며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문을 활짝 열었다. 유해근 목사와 판카츠 목사와 함께 뜻을 같이 하는 30여 명이 그녀의 집에서 모였다.
 
판카즈 목사는 시드니에 사는 10여 명의 인도인을 초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자, 판카즈 목사는 조금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인도에는 ‘인도 Ti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까지는 열 명이 온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일로 못 온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결국 인도인 한 명만 왔다. 판카즈 목사와 어릴 때 친구이다. 25년 만에 시드니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시크교도이고 직업은 버스 기사이다. 판카즈는 오랜만에 고향말로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신학공부를 마치고 선교사가 되어 내년 1월 11일 고향인 펀자브로 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망나니 같았던 판카즈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판카즈의 변한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시크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세계 5대 종교 중 하나이다. 인도는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무굴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무굴제국은 오늘날의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한 이슬람 왕조이다.
 
힌두교 나라인 인도가 이슬람교의 지배를 받게 되자 종교 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두 종교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시크교’(Sikhism)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가 섞인 종교이며, 15세기에 창립되었다.
 
▲ 판카즈 목사는 호주를 방문, 지난해 12월 5일부터 16일까지 시드니주심교회,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시드니새생명교회, 새벽종소리명성교회, 멜번순복음교회, 멜본한인교회, 멜번호산나교회에서 말씀(간증)을 전하고 19일 한국으로 떠났다.       © 크리스찬리뷰

둥그렇게 칭칭 두른 터번은 바로 시크교도의 상징이다. 시크교는 인도 북부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발전한 종교이다. 인도 인구의 3% 정도뿐이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도의 성자 '선다싱'(Sundar Singh)도 펀자브 출신의 시크교도였다. 선다싱은 1889년 인도의 펀자브 지방의 '람퍼'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은 모두 시크교도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다. 그는 시크교의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시크교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
 
람퍼에는 공립학교가 없어서 영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학교에 다녔다. 선다싱은 학교를 다니면서 철저하게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14살 때 어머니가 죽고 시크교에 회의를 품게 된다. 방황하던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환상 중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시크교도인 아버지는 가문의 신앙을 모독한다고 선다싱을 집에서 추방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티베트 등지의 지역을 맨발로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며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후에 그의 아버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는 40세 때에 티베트 선교를 가다가 실종되었다.
 
호주에 온 목적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유해근 목사는 일어서서 모임의 취지를 설명했다.
 
"저는 한국에 있는 나섬공동체의 대표입니다. 나섬 공동체는 외국인교회가 여섯 개가 있고, 몽골학교, 아시아 청소년학교, 몽골문화원 등 많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호주에 온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호주에는 ‘나섬공동체’ 출신의 인도사람뿐 아니라 판카즈 목사가 개인적으로 인도에서부터 알고 있는 친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만나서 이곳에 '인도 신앙 공동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 본지와 인터뷰중인 판카즈 목사의 영적인 아버지 유해근 목사(왼쪽)와 판카즈 카필라 목사    © 크리스찬리뷰

판카즈 목사의 사례는 이곳에 살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 사고를 치고 한국으로 피신했던 판카즈가 어떻게 목사가 되었고, 이제는 역파송 선교사가 되어 고향으로 갑니다. 이곳의 인도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많은 도전과 비전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을 선교의 자산으로 묶어 내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호주에는 직간접적으로 나섬공동체를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집 주인이신 김두제 권사를 비롯하여 지난해 1월 인도에 함께 갔던 분들도 있습니다. 돌아와 이분들이 인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섬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판카즈 목사를 직접 소개하고 지속적으로 나섬의 이주민 선교와 역파송 선교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나함사'(나섬과 함께 하는 사람들)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민목회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민목회에는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회는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이민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될 때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식사를 하며 유 목사는 실명 후 강영우 박사와 만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강 박사는 어릴 때 실명해서 많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해서 유 목사는 강 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 박사님, 앞이 안보여 많이 불편하시죠?"
 
강 박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실명해서 출세한 사람입니다."
 
유 목사도 내게 비슷한 고백을 한다.
 
"저도 그렇습니다. 실명한 후 저는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안보이니 혼자서 밖에 나갈 일이 없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안보이는게 은혜입니다."
 
그는 컴퓨터 자판을 외워서 치면 오디오로 들을 수 있다. 책은 오디오 북을 통해서 듣고 있다.
 
유해근 목사와 판카즈 목사의 인터뷰
 
- 선교란 무엇인가요?
 
 "선교는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목적 의식없이 사는 사람이고, 순례자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외적으로 보면 나그네와 순례자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다릅니다.
 
기독교인은 본향을 향하여 순례하는 순례자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그들을 제자화해서 '역파송 선교사'로 보내는 것입니다. 현대는 선교의 위기시대입니다. 무슬림 지역은 물론이고 인도 역시 이제 '힌두교의 나라'를 표방하고 기독교 선교사를 핍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존의 선교사를 추방하고 비자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판카즈 목사'와 같은 사람이 역파송으로 인도에 간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에 선교에 여러 장애를 넘을 수 있었던 것 같이, 판카즈 목사는 인도의 브라만 출신이기에 일반 선교사와는 다릅니다. 판카즈 목사는 한국 시민권을 가질 수 있었지만, 역파송 인도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도 선교의 보물과 같은 사람입니다. 인도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역파송 선교사’가 되어 인도로 간다는 것은 세계선교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입니다.“
 
“저는 이주민 사역을 1992년부터 시작했고, 1993년에 처음으로 '역파송'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역파송이란 단어는 다문화사회가 되어야만 가능한 용어입니다. 당시 한국사회는 배타적 단일민족 국가였기에 역파송이란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주 노동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신학공부를 하라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예수 안에서 철저히 변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작을 했다가 중도에 탈락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섬의 철학 중 하나는 목사는 반드시 한국교회가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통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어야 신학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가지고 목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카즈의 경우는 광나루에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교 4년, 신대원 3년의 과정을 거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장신에서는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일이 없습니다. 판카즈는 7년의 과정을 9년 만에 마쳤습니다.”
 
“판카즈 이외에도 이미 역파송 선교사로 몽골, 터키, 베트남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판카즈는 4번째 역파송 선교사입니다. 인도 선교는 2000년이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윌리암 캘리'와 같은 전설적인 선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는 미미한 상태입니다.
 
이제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세계선교는 역파송 선교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이주민 시대입니다. 국가 간의 장벽과 경계가 없어진 시대입니다. 찾아가는 선교가 아니라 온 사람을 훈련시켜 선교사로 파송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9월에 만났던 '바울선교회' 대표인 이동휘 목사가 생각났다.
 
그는 "선교란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의 예수님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라고 했고, 오늘 유목사는 "선교란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분 모두 선교 전문가답게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의를 내려 주었다.
 
- 판카즈 목사는 누구인가요?
 
“판카즈 목사와 이혜정 사모 사이에는 딸이 세 명있다. 사라, 하나, 예나. 아이들의 이름은 영적 아버지인 유해근 목사가 지어 주었다. 인도에도 사라란 이름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예나는 '예수님의 나라'란 뜻이다. 판카즈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습니다. 저는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힌두교 선교사입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지만,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할머니와 이모에게서 자랐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컸습니다. 저는 세상의 것들을 통해서 허전함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 고향인 인도에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판카즈 목사.  ©판카즈    

어느 날 큰 사고를 치고 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어서, 외국으로 일단 피신해야 했습니다. 그때 비자가 제일 빨리 나온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법체류자로 지냈습니다.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내와 유해근 목사님과 함께 인도로 갔습니다. 카스트 제도에 의하면 브라만은 비슷한 계급끼리만 결혼해야 합니다. 브라만 출신이 한국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제가 신학공부를 해서 기독교 목사가 된다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설득을 했습니다. 기적이죠. 떠나는 날 아버지는 유목사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판카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 이민법에 의하여 불법체류자는 5년 이내에 재입국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목사님은 믿음으로 저와 함께 인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갔습니다. 담당 영사에게 유 목사님은 제가 한국에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서 역파송 인도 선교사가 될 사람입니다. 비자를 주십시오.’ 저는 영사와 인터뷰를 했고 통과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비자를 받았습니다. 비자를 주면서 영사가 유 목사님에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저는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출신입니다.’ 그래도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비자는 외무부 소관이지만, 출입국 사무소는 법무부 소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무부와 법무부 직원을 감동시켜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 펀자브(Punjab)는 어떤 곳인가요?
 
"인도의 북부에 있고, 아마 땅 크기가 한국과 비슷할 겁니다. 펀자브는 대부분 힌두교와 시크교도 그리고 이슬람교도 살고 있습니다.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좋은 교리만 택해서 만든 종교입니다.
 
아마 외국에 사는 60-70%의 인도 사람들은 펀자브 출신일 겁니다. 펀자브에서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간디는 어떤 사람인가요?
 
"간디는 모든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성경도 많이 읽었습니다. 간디는 예수님을 존경했습니다. 간디가 은혜를 받고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싶었지만, 백인들이 교회에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자,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싫어서 기독교로 전향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간디가 개종했다면 인도 인구의 3% 아니라, 70% 정도가 기독교인이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 카스트 제도란?
 
"카스트 제도는 가장 높은 계급이 ‘브라만’, 귀족 계급이 ‘크샤트리아’, 평민을 ‘바이샤’와 ‘수드라’로 나눕니다. 계급 안에도 속하지 못한 '불가촉천민'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그리고 '바이샤,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을 같은 계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계급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결혼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차별이 있습니다."

- 호주교민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호주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주에 보내주신 이유는 앞으로의 사역이 만만치 않은데 기도의 동역자를 찾으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여러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고, 많은 분들이 기도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저희 사역과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유해근 목사, 아버지의 눈물
 
"1월 11일, 판카즈 목사는 가족과 함께 인도로 들어갑니다. 아이들 교육, 언어장벽과 문화충격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특별히 부인인 이혜정 선교사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시집살이도 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행복했지만 이제부터 고난의 길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사실 그래도 너무 힘들고, 정말 어려운 길입니다."
 
유 목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사랑하는 딸을 낯설고 물설은 오지로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눈물이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8/12/26 [12:4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포토 포토 포토
고사목(枯死木)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