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깽이 사랑
 
김성두/크리스찬리뷰


그 해 겨울 방학은 참으로 심심하기 짝이 없는 지루한 방학이었습니다. 개구장이 친구들 몇 명이 고드름이 아직도 다 녹지 않고 달려있는 조그만 양철 지붕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딱지 따먹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놀이도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서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다 낡은 얇은 쇠줄을 발견했습니다. 그 쇠줄을 보자마자 저는 미친 사람처럼 그 쇠줄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두 나뭇가지 사이에  네 가닥으로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긴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쇠줄 위를 그어대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뭔가 고운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세게 쇠줄을 그어대어 보았지만 그 쇠줄은 지익 지익 하는 둔탁한 쇳소리만 날뿐 제가 기대했던 소리는 나지를 않았습니다.
 
옆에서 그때까지도 딱지 치기를 하던 친구들이 “성두야 니 임마 지금 뭐하노?” 라고 했지만 “아니 심심해서 그냥 해 보는기라” 하고는 더 세게 쇠줄을 그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깽깽이가 갖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동네에서 바이올린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당시 먹고 살기도 힘든 시기에 깽깽이를 가진다는 것은 사치 중의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깽깽이를 생각하면서 앙상한 나무 가지에다가 쇠줄 네 가닥을 걸어 본 것입니다.
 
사실 음악책에서 바이올린을 사진으로만 보았지 실제로 바이올린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바이올린을 갖고 싶었고 내가 직접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제가 서울에 올라가서 대학을 다닐 때 어느 사장 집의 쌍둥이 아들들에게 과외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과외를 했는데 그 당시 만 오천원을 과외 교습비로 받았습니다. 저는 그 돈을 가지고 그 날 곧장 청계천 악기상으로 갔고 제일 값싼 바이올린 하나를 샀는데 가격이 만 오천 원이었습니다.
 
악기상 주인이 공짜로 준다면서 바이올린 교본을 하나 주었는데 그 표지에는 당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정 경화 양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들고 악기상을 나오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날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눈을 맞으면서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저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녁 밥도 먹지 않고 바이올린을 꺼내어서 교본에 있는 대로 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나무에 걸었던 그 쇠줄에는 지익 지익 소리만 났지만 신기하게도 이 깽깽이는 제대로 된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날 밤 저는 교본을 보면서 바이올린 네 줄을 통하여 기본음을 찾게 되었고 그 다음 날 새벽녘에는 제가 아는 노래를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기뻤던지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들었으면 귀가 괴롭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만 그토록 갖고 싶었던 깽깽이를 가졌다는 만족감과 그토록 듣고 싶었던 깽깽이 소리를 내가 직접 낼 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 당시는 제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몇 달간 바이올린과 함께 먹고 잤을 정도로 바이올린에 미쳐 있었습니다. 악기상이 준 교본에는 거의 마지막 장에 슈만이 작곡한 “트로이 메라이”(꿈) 라는 유명한 명곡 악보도 있었습니다.
 
몇 날에 걸쳐서 그 곡을 연습하고 혼자서 외워서 연주를 했을 때 저는 정경화 양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깽깽이가 이렇게 신비한 악기인 줄 그때 새삼스럽게 알았고 이 깽깽이만 있으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한 6개월 정도 지나니 바이올린이 시들해졌습니다. 바이올린 케이스 위에 뽀얀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월이 흐르면서 깽깽이 사랑이 통기타 사랑으로 변하더니 또 얼마 후에는 피아노 사랑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아이들 몰래 아이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으로 혼자서 “트로이 메라이”를 연주해 봅니다만 그때 그 시절의 뜨거웠던 아름다운 감성은 돌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깽깽이 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랑은 또 다른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가치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은 한평생 이 세 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살다가 죽는 것 같습니다.
 
말은 다들 그럴듯하게 하지만 더 많은 육신의 정욕을 탐하고 안목의 정욕을 즐기면서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내가 너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삶인 것 같습니다.
 
내가 너보다 나아서 무척 기뻤는데 나보다 더 나은 또 다른 상대를 만나면 한순간에 불행을 느껴버리는 이상한 구조를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이 귀한 교회들도 언제부터인가 교회 앞에 이상한 단어들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냥 교회가 아닌 ‘대형 교회’ 그냥 교회가 아닌 ‘개척 교회’ 이런 단어들을 갖다 붙여서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은연 중에 과시를 하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 병에 빠진 교회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비추어진 우리 교회가 더 중요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도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성도의 모습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그런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은 그 누가 나를 알아주나 못 알아주나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고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가치관에는 그 어디에도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크리스찬이라고 하면서도, 성도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일시적이고 퇴폐적이고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가 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의 가치관이 예수님을 닮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가 없는 일에 매여서 그 귀한 세월을 낭비할 수 밖에 없음은 명약관하한 일입니다. 그 언젠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았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고 얼마나 많은 재미를 보았고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을 누르면서 폼나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은 자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물으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시지 내 이름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으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것”을 기억하시지 내 이름을 내려고 내 자랑으로 삼으려고 허세를 부린 일들은 전혀 하나님의 계산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를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올인(all in)을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잠깐 동안 존재할 일시적인 가치에 시간과 정열과 물질을 허비하지 말고 그 언젠가 하나님이 칭찬하실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 보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까지 많은 세월을 가치가 없는 일에 투자해 왔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에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기울여 보시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새해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어린 철부지처럼 깽깽이 사랑에만 매여 있겠습니까? 그때는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삶의 의미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꺵깽이는 케이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늘 바뀌어져야만 하는 것은 진정한 가치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가치는 늘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새해에도 우리가 여전히 깽깽이에 꽂혀 있어야 할까요? 내가 원하는 가치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올 한 해를 사용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부디 올 한 해가 그 언젠가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시는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성두|시드니경향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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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26 [17:3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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