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인생이란 시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와 같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의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배가 있는가 하면 목적지 없이 표류하는 배도 있다.
 
항해할 것인가? 아니면 표류할 것인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항해를 원한다면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2019년 12월 31일, 어느 곳에 도착하기를 원하는가?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의 비유가 있고, 누가복음 19장에 므나의 비유가 있다. 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 각 종에게 1, 2, 5 달란트를 다르게 주었고, 므나의 비유는 10명에게 똑같이 한 므나씩 주었다.
 
시간은 므나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객관적 시간, 수평적 시간 그리고 양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에 의미가 부여되면 카이로스가 된다. 카이로스는 주관적 시간, 수직적 시간 그리고 질적인 시간이다.
 
빅터 프랑클은 의미 없는 삶을 실존적 공허라고 했다. 실존적 공허에 빠진 사람은 표류하다 난파로 삶을 마감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은 세 번 태어나야 한다.

첫째 육으로 태어남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태어났다.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육으로 태어난 인생은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구분된다. 일명 '수저 계급론'이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다.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으로부터 계급에도 속하지 않은 불가촉천민까지 나누어져 있다. 카스트의 구조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숙명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카스트 제도는 깨부수기에는 너무 거대한 괴물이다.

둘째 영으로 태어남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역할에 따라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결코 없다. 예수를 믿으면 신분세탁이 일어난다. 육의 신분에서 영의 신분으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셋째 사명으로 태어남
 
'마크 트웨인'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날을 꼽자면, 하나는 당신이 태어난 날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다."라고 했다. 사명은 인간의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목적이다.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영적인 사명을 갖게 된다.
 
육의 사람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만,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다. 자신의 뜻은 '욕망'(ambition)이고 하나님의 뜻은 '비전'(vision)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세상에 구체화하는 것이 '사명'(mission)이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창조의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하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너는 왜 베드로같이 살지 못했냐! 너는 왜 요한같이 살지 못했냐! 너는 왜 바울같이 살지 못했냐..."
 
정말, 그렇게 책망하실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마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책망하실 것이다.
 
"나는 너를 너로 만들었다. 그런데 왜, 너는 너답게 살지 못했냐?"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되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바울은 고백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고전 15:10)〠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8/12/26 [17:3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포토 포토 포토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