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지성

호주한인교육문화센터(KCC) 권태원 운영위원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18/12/27 [17:28]
▲ 행동하는 양심가이자 시드니 노동판의 성실한 페인트 노동자 권태원 선생                  © 크리스찬리뷰


페인트 노동자 권태원 선생(58. 호주한인교육문화센터, KCC 운영위원)을 지난 12월 11일 애버츠포드(Abbotsford)에 있는 조정 클럽(Rowing Club)에서 만났다.
 
사실 권태원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7월쯤이다. 그는 이스트우드의 알디(ALDI)앞 노상에서 테이블을 펴놓고 서명을 받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었다. 기자도 마음이 일어 서명을 하고 “대학생들에게 받아 오겠다”며 서명지 몇 묶음을 받아왔다. 그리고 일 주일 후 받아온 서명지를 그에게 건네주고 그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올해 초 UTC(United Theological College) 도서관에서 그와 마주쳤다. 그런데 몇 년 전 일이라  그가 그때의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뿔사 그가 2014년 이스트우드 알디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받고 있던 권태원 선생이었다.
 
기자는 그를 권태원 선생으로 부르길 즐겨한다. 교회에서 쉽게 부르는 호칭 가운데 집사도 있고, KCC 권태원 위원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칭호는 바로 선생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까만 뿔테 안경이 그를 더욱 지사처럼 느껴지게 한다.
 
실제 그는 지사다. 행동하는 양심가이자 시드니 노동판의 성실한 페인트 노동자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약한 자 편에 서기를 좋아하는 실천하는 지성인이라 할 수 있다.
 
변방에서 거꾸로 성서읽기

▲ 애버츠포드 조정 클럽에서 주경식 목사와 인터뷰를 가진 권태원 선생     ©크리스찬리뷰

 
젊었을 때 그는 안병무, 서남동 교수를 만나기 위해 한신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가 입학했을 때에는 안타깝 게도 안병무 교수가 은퇴하고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좋은 선생들을 많이 만났다. 문익환, 서남 동, 김경재 선생들을 만나면서 기존 교회에서는 듣지 못했던 다른 시각들을 배울 수 있었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는 제가 하는 고민과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어요. 목회자에 대한 좌절감과 박정희의 독재정권 아래서 암울한 현실과 일반 민중들이 너무 고통을 당하는데 교회에서는 전혀 거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어렸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안병무 교수의 <현존> 이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어요. 사실 안병무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그의 글들을 읽으며 기존교회에서 성서가 개인의 성공과 부를 위해서만 오용되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사복음서를 즐겨 읽는다는 권태원 선생의 성경책은 얼마나 줄치며 열심히 읽었는지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 크리스찬리뷰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방적으로 주입해 온 신앙과 교회의 이중성 그리고 현실사회와의 차이 때문에 좌절과 방황을 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매일 성서를 읽는다.
 
그것도, 특히 예수의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읽는다. 그의 성서를 보면 얼마나 줄치며 읽었는지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의 성서를 읽는 방법을 보면 기존교회에서 보는 입장과는 분명 다른 시각이다. 이 땅의 대중과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고뇌하며 읽는 그의 성서 읽기는 예수께서 사복음서에 살아내신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사복음서를 즐겨 읽는 이유는 예수님은 지배자들의 불의와 비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주어서 좋아요.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아무런 힘이 없는 분인데 사회적 억압과 불의를 폭로하시는 거죠. 
 
예수님의 적나라한 폭로,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신분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는 분이예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위협을 받아요. 그렇게 사회적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사회구조와 불의로 고통당하는 민중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득권자들의 잘못을 꾸짖으시는 것이죠.
 
그 당시 종교 권력자들인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들은 헤롯 등의 정치 권력자들과 야합하여 민중들을 착취하고 약탈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분노하신 부류들은 바로 그러한 정치 권력자들과 야합해서 민중들을 착취한 종교 권력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사정없이 폭로하십니다.  그것은 그 안에 예수님의 민중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착하고 순하게 보이는 권태원 선생이 정치 권력자들과 야합해서 민중을 착취하는 종교 권력자들을 비판할 때는 투사로 변한다.
 
사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예수의 신성만 강조하는데 예수의 인성도 똑같이 강조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예수의 신성은 그의 인성을 똑같이 강조할 때 더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다.
 
예수는 우리와 똑같이 기쁨과 슬픔, 고통과 아픔,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사신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복음서를 보면 그러한 인간 예수는 사회적 불의와 민중들이 당하는 착취와 약탈에 대해서는 얼마나 분노하고 욕까지 해대는지 모른다.


▲ 고통의 절규 속에 죽어갔을 아이들을 기억하며 김성종 화백(오른쪽)과 함께 제작중인 ‘희망의 나라로’ 작품.             © 크리스찬리뷰


예수는 인간 영혼만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의 부조리와 불의를 바로 잡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의 사역을 처음 소개하는 누가복음 4장을 18절을 보면 이사야의 글을 찾아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사야가 살던 시대에는 예배와 제사, 종교적 관행은 넘쳐났지만 사회는 부패했다. 그래서 부가 일부 지도자에게만 집중되고 가난한 이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유대 지도층은 가난한 자들을 학대했고 그들을 더 약탈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권력과 법을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사 1:23, 3:13-15, 5:8, 10:1-2).

▲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약한 자 편에 서기를 좋아하는 실천하는 지성인 권태원 선생은 시드니에서 펼친 시민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 크리스찬리뷰


안타깝게도 예수의 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유대가 실패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시드니 서명운동
 
2014년은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이 몸살을 앓았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을 받게 된 배경에도 세월호 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304명의 희생자들이 수장될 때 박근혜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뇌사정부였다고 여론이 빗발치듯 일었다. 결국 세월호 사건은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2월 탄핵되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기자가 권태원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드니에서 서명운동을 받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그때도 노동하다 온 복장으로 꿋꿋하게 서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죠. 생짜들이 생수장 당했는데 그 부모들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그 부모들이 똑똑한 거죠.그냥 검찰에 맡기면 몇 개월 지나 흐지부지되고 말 텐데 기소권과 공소권과 조사권이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제대로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천 만인 서명운동을 한국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 생각이 들었죠. 나는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동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무언가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교회에 가서 서명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아 몇몇 목사님과 장로님들께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큰 교회에서 허락을 안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스트우드 거리에서 직접 받으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이스트우드 알디(ALDI)앞에서 서명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권태원 선생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드니에서는 처음으로 불을 붙였다. 시드니에서 서명에 동참한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선생은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관심도 없이 지나치는 분들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서명해 주면서 ‘좋은 일 하십니다’라며 커피도 가져다 주면서 힘내라고도 격려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 아직은 사람들의 정서가 메마르지 않았구나.”
 
그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이런 운동을 통해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개인의 부에만 함몰되어 있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타자(他者)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를 느꼈을 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도 확실하게 세울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시드니에서 펼친 시민운동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개표조작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는 시드니총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인물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일인시위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가 조작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거가 끝나고 허탈했죠.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개표조작이 있었다는 보도를 접한 거예요. 제가 보기에도 이상했어요. 아직 선관위에서는 개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방송에서는 이미 얼마 표로 박근혜가 이겼다고 나오는 거에요. 컴퓨터를 잘아는 분들은 컴퓨터 조작이라는 것을 얘기해요. 박근혜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정원에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언론들이 언급하는데도... 그런데 시민들도 허탈했는지 몇몇 시민단체 외에는 아무런 반응을 안 하는 거에요.”
 
그는 국내에서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 아무 것도 못할 때 오히려 해외에서 무엇인가를 하면 국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거의 7개월 동안 시드니총영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생업에 종사하는 그가, 더구나 페인트 노동자인 그는 매일 오후 3시쯤 일찍 일을 마치고 급하게 시티로 나가  7개월 동안 끈질기게 일인시위를 했다. 시티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사용한 E-Toll 비용만 하더라도 많은 돈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 시드니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는 권태원 선생. (왼쪽 2번째)                          © 크리스찬리뷰


어디 그뿐인가. 정상적으로 일을 마치려면 적어도 오후 5시나 6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어둡기 전에 시위를 하기 위해 일을 일찍 마치고 시티로 가기 위해 보았던 금전적 손해도 상당할 것이다.
 
금전적 손해도 손해지만 얼마나 피곤하고 고단했을까? 오전 7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그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개월을 지치지도 않고 생업인 노동을 오후 3시나 4시에 바쁘게 마무리한 후 총영사관 앞으로 달려갔으니 그의 정신력 또한 대단하다. 이것이 어디 정신력 하나로 될 일인가?
 
그에게는 <정의 의식>이 있다. 성서의 많은 부분이 <공평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한국교회에서는 <공평과 정의>에 대해 들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 한다. 교회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 관심이 없다. 오히려 불의로 권력에 오른자들을 찾아가서 조찬기도회를 열고 축복기도를 한다.
 
성공이 장땡이고 돈이 그들의 실제 하나님이다. 이사야 시대나 예수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것이 없다. 권 선생의 총영사관 일인시위는 미국과 캐나다 해외 동포사회로 이어졌다. 시드니에서 타오른 정의의 횃불이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동포사회까지 번져 나간 것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약자편

▲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율동하는 권태원 선생(분수대 왼쪽 앞).     ©크리스찬리뷰

 
세상은 무조건 크고 강한 것 좋은 것만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타자는 내가 짓밟아야 할 경쟁 대상이지 함께 배려하며 같이 사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도 이런 의식들로 팽배하다. 
 
무조건 크고, 화려하고, 우수한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작고, 초라하고 부족한 것들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끊임없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라고 기도한다. 어떻게든 성공하고 부자 되라고 부추킨다.
 
실제 교회 안에서 대접받는 사람은 돈 많고 잘 배우고 폼나는 사람이지 가난하고 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은 어깨를 펴기 힘들다. 이렇게 작금의 한국교회는 강한자들이 칸막이를 치고 편을 나누어 약자들을 무시하고 나와 다른 자들에게는 금을 긋고 정죄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 되라고  복 빌어주는 것이 목회의 현실이고, 사영리나 복음에 대한 교리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한국교회는 성서를 다시 읽어야 한다.
 
사실 성서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성서의 하나님은 무조건 약자 편이다. 성서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 시대의 가장 약자의 대명사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약자들이 불의한 악으로 고통받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불의한 지배 권력과 사회구조에 대해 분개한다.  권태원 선생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다.  그런데 큰 딸의 이름이 권너울이다. 딸의 이름을 ‘너울’로 짓는 것을 보더라도 그의 의식에 저변에는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깊게 사무쳐 있나 확인할 수 있다.
 
“제가 딸을 얻었는데 너무 기쁘고 좋아서 이름을 우리 정서, 우리의 문화에서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여자가 태어났을 때 어떤 모델상이나 여성의 전형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찾아 보았죠. 그러던 중 제가 존경하는 백기완 선생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너울레’‘가시네’‘버들레’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다른 이야기는 지금 다 잊었는데 ‘너울레’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너울레는 옛날에 머슴들이 긴긴 겨울밤에 무료하고 희망 없이 지낼 때 희소식을 가져오는 전령이었어요. 그 희소식이 뭐냐하면, 그때 너울레가 희망없고 배고픈 머슴들에게 먹을 것, 먹을 것이 없으면 김치국이라도 가져오는 거죠. 그래서 너울레는 머슴들이 반기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 딸도 이 땅의 배고프고 힘없는, 머슴 같은 약자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가져다 주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권너울’로 지었어요.”
 
권 선생의 마음이 순진하고 예쁘다. 예쁘다 못해 너무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이 땅의 대다수인 민중을 힘없고 약한 민초라고 표현한다. 그는 지금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자기보다 어려운 자들을 보면 그들에게 다 털어주고 자주 집으로 돈을 안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도 가족을 통해 전해 들었다. 
 
권 선생이 2014년인가 다른 일로 나흘 동안 한국을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밀양 송전탑 사건을 접한 권 선생은 농민들이 밀양 송전탑 꼭대기에 올라가 반대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들을 돕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그 짧은 일정에 밀양에 내려가 그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부채의식이 있다. 약자들에 대해 부채의식이 있다. 어떻게든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말의 종교에 머물고 있는 현실 속에서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지성인 노동자인 권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예수인으로 기자에게 비쳐졌기 때문이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 비전국제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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