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종교

손봉호/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1/29 [17:58]
▲ ©Victoria Fellowship Church    


이슬람은 기독교를 유대교, 이슬람과 함께 책의 종교라 부르면서 다른 종교들과 구별한다.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된 책으로 믿고, 특히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규범이며 권위로 수용하기 때문에 ‘책의 종교’란 별명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문자가 없다면 대부분의 정보는 입과 귀로 전달되고 기억 속에 보관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수 있을 만큼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관하고 전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계시는 사람의 깨달음이나 경험과는 다르기 때문에 기억만으로 보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문자로 정착된 정보는 긴 시간 동안 정확하게 보관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어서 전파효과도 매우 크다. 만약 성경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처럼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는 세계적인 고등 종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계시는 책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수되었고 권위를 가진 객관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은 기본으로 기능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으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검토와 재검토가 가능하고 그 옳음과 그름은 언젠가는 드러날 수 있다.
 
그 덕으로 신학과 전통은 더 정교하게 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 종교개혁 때 루터가 제시한 95개 조항도 그때 마침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때문에 전 독일에 확산되었고 그것은 종교개혁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 문자와 책은 복음 전파와 기독교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로 믿고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하고 특히 개신교는 처음부터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은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책의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성경은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의 문자습득과 독서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영국에서는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이, 독일에서는 루터의 번역이 영국과 독일 문어의 성격을 결정했다 할 수 있다. 흠정역과 루터의 번역을 전제하지 않고는 영국과 독일의 문학과 문화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한글 성경이 결정적 공헌을 했다. 해방 후 한글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일제시대에도 성경을 읽었던 기독교인들이 다수였다.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성경이 기록될 수 있었지만, 성경이 있었기 때문에 문자와 책이 보급되고 확산될 수 있었다.
 
문자가 있고 책이 읽혀지는 문화와 그렇지 못한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이란 단순히 정보를 마구 던져 넣어놓은 바구니가 아니라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서 중요하고 유용한 것들을 선택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며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할 정도의 지적 능력과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며 세련되고 정교한 감수성조차 요구된다.
 
그런 성취는 독자들에게 전수되고 축척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 그치지 않는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훈련받고 창조적인 생각을 자극받으며 사물을 더 깊이 그리고 넓게 보는 능력을 같이 얻는다.
 
그러므로 책을 쓰고 읽은 공동체는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개신교인의 87%가 선진국 혹은 중진국에 살고 있다 한다.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개신교인이 많아졌기보다는 개신교인들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했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책의 종교는 사회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교육이 일반화되어 모든 사회에 책이 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기독교인들의 독서량이 상대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비해서 그 비교우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이 돈이 되자 읽을 가치가 없는 책, 읽으면 오히려 해로운 책들까지 양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는 좋은 책을 올바로 읽도록 힘써야 할 때가 되었다. 그저 그런 책 열 권을 읽기보다는 고전 한 권을 열 번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 고전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검증을 받은 것들이므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긴 역사를 가진 기독교는 위대한 고전을 많이 생산해 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칼뱅 (J. Calvin), 루터 (M. Luther), 아캠피스 (Thomas A Kempis), 번연 (J. Bunyan), 카이퍼 (A. Kuyper), 바빙크 (H. Bavinck), 도여베르트 (H. Dooyeweerd), 루이스 (C. S. Lewis), 니버 (R. Niebuhr), 본훼퍼 (D. Bohnhoeffer), 쉐퍼 (F. Schaeffer), 월터스톨프 (N. Walterstorff), 프란팅가 (L. Plantinga) 등 기라성 같은 저자들이 쓴 깊이 있는 책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좋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다. 읽고 이해했다면 그것이 신앙과 인격 성숙에 도움이 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가치가 있다.〠


손봉호|윤리학자이며 사회운동가. 철학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과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2011년에 나눔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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