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를 위해 시드니를 찾은 박종호 장로

인터뷰[단독] 사선을 넘어 다시 돌아온 CCM 가수 박종호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입력 : 2019/01/30 [10:50]
▲ 죽음에서 돌아온 가스펠 스타 박종호 장로가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 1월 4일 박종호 장로가 시드니를 찾았다.
 
'테바 공동체'(TEBAH)의 대표로 사역하는 박원준 목사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 왔다. 테바공동체는 비영리단체로서 한민족(북한, 고려인, 조선족)을 돕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 목사는 멜본에서 사역하다 은퇴하고 뜻을 정하여 동북아시아의 소외된 한민족을 돕기 시작했다. 박 목사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에 감동받은 박 장로는 작은 힘이지만, 재능기부를 위해 호주를 찾게 되었다.
 
박 장로는 시드니 집회를 필두로 캔버라, 브리즈번, 멜본 집회를 마치고 1월 17일 호치민으로 떠났다.

 
한국의 가스펠 가수

 
박 장로는 1962년 5월 5일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다. 1970년 KBS 동요 경연 프로그램인     '누가 누구 잘하나'를 통해서 데뷔했다. 선화예술고등학교에서는 장학금을 주는 조건으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1980년 전국 학생 음악 경연대회에서는 콩쿠르 특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MBC 학생 음악 콩쿠르에서도 특상을 수상했다.

 

▲ 기도하는 박종호 장로 ©국민일보  


그는 서울대학교 음대 4학년, 이태리 유학을 준비하는 1984년에 성령으로 거듭났다. 그는 이태리 유학을 포기하고 찬양 사역자의 길을 선택했다. 친구의 소개로 광화문 구세군회관에서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예수전도단' (YWAM) 집회에 참석했다.
 
그날 한국 예수전도단을 설립한 오대원 목사의 설교를 듣고 큰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회관이 무너지도록 뛰는 찬양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으나, 곧 찬양의 물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예수전도단'의 일원으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에 이끌리어 사역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목소리를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주옥과 같은 찬양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예수의 이름'(?)으로 ‘평가절하’했다. 어느 날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집회에서 찬양하는 박종호 장로     © 크리스찬리뷰



"박종호 씨, 조수미 씨와 함께 서울대의 전설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가 복음성가 가수가 되었나요?"
 
그는 너무 화가 났다. 귀싸대기를 올려 주고 싶었다. 질문한 기자가 크리스찬이었기에 더 그랬다. 복음성가 가수는 일반가수보다 한 단계 급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다. 일반가수로 활동하다가 인기가 떨어지면, 복음성가 가수가 된다는 착각도 있다. 사실 박 장로는 그 기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자신을 초청한 교회에서조차도 비슷한 태도로 자신을 취급할 때는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2000년 미국 유학

 
2000년 그는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박종호 고별 콘서트를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많은 갈등을 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메네스음악대학원에 입학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뇌졸중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 반 동안 고생하다가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특별히 어린 3남매가 무엇보다 눈에 밟혔다. 다행히 뇌혈관은 터지지 않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 시절은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쉼표를 찍는 시간과 같았다.
 
2002년 대학원을 졸업하는 해에 예수전도단 선배, 정병삼 선교사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모슬렘 선교사로 뇌종양에 걸렸다. 숨골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도 불가능했다. 일평생을 선교사로 헌신한 그가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장로는 피를 토하면서 하나님에게 대들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이 일을 계기로 박 장로는 예수전도단의 선교사를 위하여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14만 불씩 보냈다.

 

▲ 박종호 장로 서재에서 ©국민일보    

 

2016년 뜻밖의 손님

 
2016년 2월 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간암이다.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을 받아야만 하는 상태였다. 그는 바쁜 사역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동료들은 전 세계에 중보기도 요청을 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호주 등지에서 그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소리를 높였다. 수술비도 여러 곳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가난한 중에서도 예수전도단의 후배들도 마음을 같이 하여 2천만 원을 보내 주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22억을 보냈는데 너희는 겨우 2천만 원 보냈냐?"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너희들이 보낸 2천만 원은 나에게는 200억과 같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호주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작지만 큰 교회, 시드니예일교회이다. 성도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송상구 목사는 모금하여 그에게 전달했다.

 

▲ 지난 2016년 5월, 간 이식 수술을 앞두고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박종호 장로. ©국민일보    


절망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실험실의 생쥐가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하늘을 향해서 열린 뚜껑마저 닫힌 것 같았다. 오래 전 불렀던 찬양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별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를 많이 불렀다. 입술로는 찬양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30여 년간 하나님을 찬양한 결과가 간암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찾아왔다. 박 장로가 수영을 가르쳐준 친구다.
 
"종호야, 너 나에게 수영 가르쳐 줄 때 물과 싸우지 말고 물에게 맡기라고 했잖아. 힘 빼라고 했잖아. 이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너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어"
 

그의 말은 희망 그 자체였다.

 
2016년 5월 간암 수술

 
5월, 수술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두 딸이 아버지를 위해서 간을 기증하기로 했다. 박 장로가 필요한 간은 1kg 정도이다. 아주 건장한 사람의 간 무게는 1.2~1.5kg이다. 간이 이식할 수 있는 최대치는 2/3이다. 수치상으로 1.5kg의 간을 가진 사람이 2/3를 기증하면 가능하다.
 
박 장로의 집도를 담당한 의사는 세계적인 간 수술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의 간을 잘라서 한 사람에게 이식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두 딸은 금식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병실에 같이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막내 간이 커서 먼저 집도했다. 죽음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 전 박종호 장로. ©박종호    



박 장로는 16시간, 막내 딸은 12시간의 수술이 끝났다. 다행히도 막내 딸의 간이 커서 큰 딸은 수술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술 후 박 장로는 모르핀을 맞지 않고도 통증을 느끼지 않았지만, 강한 모르핀을 맞고도 아파하는 막내 딸을 보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면역억제제'란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이 자기 장기가 받은 장기의 거부 반응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먹는 약이다. 이 약은 장기뿐 아니라 다른 면역체계도 낮아지게 한다.

 

▲ 박종호 장로는 간암 수술 이후 몸무게가 40kg이나 빠졌고 허리는 50인치에서 35인치로 줄어 요즈음엔 기성복을 사 입는다고 말했다. ©크리스찬리뷰  


박 장로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무대에 서면 불이 된다. 1월 10일 시티 구세군 회관에서 열리는 주안교회 목요찬양집회, 그의 강력한 메시지와 은혜로운 찬양은 참석한 모든 이에게 '비전과 도전’을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그곳을 '성령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간암 회복에 대한 간증을 하면서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은혜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팠다가 치료되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드라마틱한 것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라고 원하기는 절망하는 자가 제 간증을 듣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병든 자가 제가 기도할 때 치유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는 자가 제 찬양을 듣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내내, 그의 아픔에 공감하며 나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대답을 들으며, 베일 속에 숨어 있는 위선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당황하기도 했다.
 
그는 최고였다. 그가 자신의 최고를 배설물로 여기자, 하나님은 그 배설물을 통해서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마치 바울이 세상의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기자,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써내려 갔던 것처럼.〠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인, 호주구세군 본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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