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 인내와 기다림으로 관심을 가져야

홈리스, 영어교실, 문화교실 등 사역 넓혀 일본인 관심 이끌어

글|김명동,사진|권순형 | 입력 : 2019/01/30 [10:59]
▲ 1995년 고베지진 때 NGO활동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병용 목사가 시드니를 방문,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일본 오사카 타츠미교회 이병용(63) 목사는 오사카 한인사회에서 건강한 목회를 추구해온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 목사는 일본생활을 선교사가 아닌 유학생으로 시작했다. 도쿄기독교대학과 도쿄신학대학원에서 보수와 진보신학을 공부하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를 높여갔다.
 
1991년 재일대한기독교회 목회자가 된 그는 도쿄교회, 교토교회를 거쳐 94년부터 존 매킨토시 캐나다인 선교사가 12년간 사역했던 타츠미교회를 맡아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다.
 
특히 95년 고베지진 때 NGO 활동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 목사는 1984년 한국에서 설립된 일본복음선교회(JEM)의 창립멤버이며 재일한국선교사총협의회 제4대, 제8대 전국회장, 재일한국기독교연합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일본선교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초 호주를 방문한 그를 블루마운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자와는 일본에서 한 차례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그의 39년 선교 역사를 보면 일본 선교 전략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복음화율 0.4%

 

▲ 시드니를 방문한 창신고 학생들과 함께 한 이병용 선교사 (왼쪽)     ©크리스찬리뷰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일본. 개신교 역사가 150년이 됐는데 여전히 복음화율은 0.4%에 머물러 있다. 이병용 목사는 “일본교회의 현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일본의 8,700교회 중 1/3 교회가 목사가 없는 무목교회이며 신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의 일본선교 역사는 90년을 넘어섰다. 살인적인 물가, 복음에 대한 거부 등 녹록하지 않은 선교환경이지만 현재 1천200여 명의 한인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사실 일본인들은 신뢰가 가지 않으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뜸을 많이 들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접해서 교회에 들어와 세례받기까지 평균 13년 걸립니다. 일본인들은 기독교도 많은 종교들 중 하나로 생각하고, 기독교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도를 해보면 그들은 일단 ‘예, 교회에 가겠습니다.’하고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지만 안 와요.”

 

▲ 오사카 중심가의 거리 풍경-1     © 크리스찬리뷰


 

▲ 오사카 중심가의 거리 풍경-2     ©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이 목사는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란 표현에 대해 “일본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일본선교는 인내와 기다림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단기간 열매가 없다고 선교사의 무덤으로 단정 짓는 건 틀렸다”며 “일본에 대한 관점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인정받는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일본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본인들은 박스나 폐지를 버릴 때 대충 내놓지 않습니다. 가지런히 각을 맞춘 다음 끈으로 깔끔하게 묶어 버립니다. 어떤 청소업체도 이런 요구를 하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그렇게 버립니다. 거리를 다닐 때도 조용히 하고요. 매일 아침 집 앞을 청소합니다.”
 
한국서 온 단기선교팀이 이런 현지 문화를 모른 채 저지르는 실수도 언급했다.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길거리에서 떠들면서 전도활동을 한다면 일본인들에겐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 신흥종교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기선교의 경우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배우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며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선교의 조언

 

▲ 지난해 신년하례회를 마친 후 디 아크 커뮤니티 제직들과 기념촬영. ©이병용    

 

이병용 목사의 일본 선교관은 명확하다. 한인교회 사역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일본인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고, 교회 역시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39년 동안 한인 목회를 하면서 경험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주위에 있는 한인 선교사들의 사례를 살핀 판단이기도 하다.
 
“한인들이 교회에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 일본인들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요. 한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드물죠. 그래서 어렵지만 일본인들과 직접 부딪쳐야 해요. 일본 복음화는 일본인들이 주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목사는 우선 일본인들과의 접촉점을 찾기 위해 홈리스 사역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그들을 찾아 점심을 대접했다. 그러기를 벌써 25년째다. 그는 늘 재정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홈리스들 중에 구원받을 때가 가장 보람된다고 말한다.

 

▲ 이병용 목사는일본인 선교를 위해 문화교실, 어린이 영어교실, 비즈니스 성경세미나, 레디스 카페 등의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용    


“사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힘이 안 든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하지만 모든 목적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이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해마다 세례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죠.”
 
한 발 한 발 일본인 곁으로 다가가던 가운데 이 목사는 ‘문화교실’과 ‘어린생명 영어교실’ 그리고 ‘비즈니스 성경세미나’ 등으로 사역을 넓혀 효과적인 전도를 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Lady's cafe'도 열었다.
 
“요즘 일본인들은 건강 문제, 식생활 문제, 언어 등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문화교실을 열었는데 ‘어린 생명 영어교실’은 국민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인본인 교사들로 모두 우리 교회 성도들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오니까 부모님들이 따라 오잖아요. 그 학부모 대상으로 아이들 공부가 끝날 때까지 옆 공간에서 ‘어린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성경 속으로 끌고 가면 거리낌 없이 따라옵니다.

 

▲ 어린이 영어 교실 ©이병용    


매달 한 번씩 하는 ‘비즈니스 성경 세미나’는 2시간 동안 강의를 합니다. 여기에서도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면서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가랑비처럼 뿌리면 자기 옷 적시는 줄도 모르고 듣습니다. 저는 이것을 ‘가랑비 옷 적시는 전도방법’으로 표현합니다.
 
일본사람들한테 ‘예수 믿으세요’ 한다든지 세미나 한답시고 성경 이야기만 하면 절대로 안 옵니다. 작년 12월까지 74회했어요. 그분들이 꾸준하게 옵니다. 전철을 타고 2시간 걸리는 곳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제는 정착이 되어 세미나 시작할 때 찬송가도 부르고 끝날 때는 기도도 합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식사를 하는데 성경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오후 늦게까지 남아서 계속합니다.”
 
이 목사는 여기에서 일본인 예배처가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교회에서 일본인들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었는데 일본사람들이 떠나는 거예요. 떠나면서 편지를 써놓고 가는데 뭐라고 하냐면 ‘목사님 좋아서 왔지만, 목사님에게 좋은 이야기 들으러 왔지만 문화가 달라서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일본인 중심인 ‘방주 커뮤니티’(The Ark Community)를 설립했어요.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 교회는 목사가 이끌어 가는 교회가 아니고 일본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저 저는 협력하는 위치에 있죠.”

 

▲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일본인 중심의 교회 ‘방주 커뮤니티’ ©이병용    


이 목사는 이처럼 “일본인에 맞는 건강한 교회와 사역모델이 있다면 일본인의 마음이 열릴 것”이라며 일본 복음화의 해법으로 문화교실과 치유사역, 스포츠 종목인 태권도 사역 등을 들었다.
 
그는 특히 “일본 사람은 관계 맺기가 어렵지만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절대로 안 깨뜨리려 한다”며 일본 선교가 힘든 건 사실이나 여기서도 똑같이 회심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와의 협력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재일대한기독교총회 70주년 기념교회
오사까 타츠미교회

▲ 타츠미교회 초대 담임 존 매킨토시 선교사    

 

타츠미교회는 1982년 11월 재일대한기독교총회 7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당시 캐나다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존 매킨토시 선교사를 담임목사로 세웠는데 지문 날인에 반대해 일본정부로부터 추방당했다. 이 일은 재일 한국인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존 매킨토시 선교사는 1961년 일본 내 한국인 선교를 위해 캐나다장로교회에서 파송됐다. 당시 25세였던 존 선교사는 오사카와 교토를 중심으로 40년을 활동하며 재일 한국인 편에 섰다. 존 선교사는 캐나다로 추방, 1년 후 별세했다. 캐나다 한인들은 존 선교사의 유해 일부를 토론토한인장로교회에 묻어 기념비를 세우고, 그의 한국인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이병용 목사가 타츠미교회에 부임한 것은 1994년이다.
 
“우리 교회의 별명이 ‘화해의 집’입니다. 제가 이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화해의 집’이 교회 이름이었죠. 점차 교회의 원래적인 기능을 강화시키고 예배를 회복시키기 위해 교회 이름을 다시 지었습니다.” 

▲ 오사카 타츠미교회. 이곳은 25%가 한국인일 정도로 한인 타운이다. ©이병용     © 크리스찬리뷰


 
타츠미교회는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있다. 이 지역은 인구 4명 중 1명이 한국인일 정도로 한인촌이다. 이들 한인들 중에서 40%가 민단에 속해있고 60%가 조총련이다.
 
“서민층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불교 문화가 강한 지역이고 최근에는 일본 창가학회, 호랑이교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그 이단의 영향을 상당히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 목사는 전도를 위해 교회 내에 두 개의 셀 그룹을 운영했다. 하나는 교회 식구들을 중심으로 제자훈련을 하는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셀 그룹으로 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그룹이었다.
 
이 목사는 이 두 셀 그룹이 다츠미교회의 미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사역자들을 길러내는 것이고, 교회 밖의 셀 그룹은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일 동포와 일본인 영혼 속에 구현시키고자 하는 꿈이었다.

 

▲ 1995년 6천3백여 명의 사망자를 낸 고베 대지진    


그래서 시작한 것이 취미교실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등을 강좌하고 피아노, 도자기, 꽃꽂이반 등을 운영했다.
 
이 목사가 이렇듯 일본인들과 만남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었다. 그는 지난 95년 1월17일 새벽에 발생해 6천4백여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고베 대지진 직후부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사카에서 성도들과 함께 생필품을 들고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고베시에 들어가 천막을 치며 이동하면서 피해자를 위한 구호활동과 지진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카운슬링을 하는 구제활동을 벌였다.
 
특히 그는 불법체류 하다가 지진피해를 입어 일본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들을 돕고 사망자들의 생사확인을 통해 고국에 알리는 일을 했다.
 
“제가 부임한지 3년 만에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제의 대상자들이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소외된 피해자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들이 바로 우리의 형제들인 한인 밀입국자들이었습니다. 체류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갖은 노동착취를 당하면서 있었던 그들은 똑같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일본 관서지방 선교사 연합회 야외예배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병용 목사(왼쪽). 연합 야외예배는 매년 5월에 열린다. ©이병용    


 
이 목사는 그때부터 불법체류자들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일부는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일부는 체류를 위한 법적이고 실질적인 조건들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에는 구제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고 있었다.
 
결국 이 목사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베에 ‘신고베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가 타츠미교회가 세운 첫 지역교회였다. 이 목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고베와 이쿠노구 사이를 오갔다. 새벽 3시에 고베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다시 본 교회 새벽예배를 인도했다.
 
“이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교인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부임할 때 10여 명이었는데 교인이 순간 7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한국교회에선 신자 70명이 그리 많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숫자만큼의 신자를 모으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당시 이 목사의 고베지진 구호활동은 일본 전국방송에 두 번씩이나 자세히 보도되어 일본사회에 적잖은 울림을 안겼다. 외국인 목사로는 최초로 유명해진 이 목사는 고베 구호활동 후 96년에 기독교사회복지단체인 NUM (New Union Mission for Christ)선교회를 조직하고, 문화 활동, 노숙자 돕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조총련선교와 종합선교센터건립이 꿈

 
재일 한국인 선교사들은 한국교회가 깜짝 놀랄만한 일을 벌였다. 한국교회도 이뤄내지 못한 연합기구의 통합을 성사시킨 것이다. 2016년 12월 공식 출범한 재일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한기연)가 바로 그 열매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 한인선교사회는 ‘재일한국기독교선교협의회’와 ‘재일한국기독교교회연합회’가 따로 활동해왔다.
  
당초 하나의 조직이었는데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갈라졌다. 견해차 때문에 쪼개져 10여 년 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조직이 다시 뭉치기란 쉽지 않은 일. 이병용 목사가 연합하는데 산파 역할을 감당했으며, 그 결과 만들어진 재일한국기독교연합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통합 과정에 어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곁길로 새지 않게 만든 것 같아요. 사실 분열은 조직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갈등과 반목을 조장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교환경이 척박한데, 우리부터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하다니’ 현실을 개탄하는 분위기가 재일선교사들 사이에 번졌습니다.”
 
이 목사는 “두 단체가 합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이란 인식 아래 2년간 협의한 끝에 통합이 성사됐다”며 “그동안 단체가 달라 어려웠던 선교사 간 교제와 정보교환이 가능해지고 선교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분리됐던 선교단체가 다시 통합된 것은 흔치 않은 일로, 다른 나라에 있는 한인 선교사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한기연의 당면 과제로 선교사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선교역사 정리를 꼽았다. 일본 기독교회의 데이터 북을 보면 서양 선교사 관련 데이터는 상세한 반면, 한인 선교사 데이터는 매우 부실해 이를 업데이트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몇 년이 걸리더라도 문서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선교연구소(JMI:Japan Mission Institute)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 목사는 “일본선교연구소는 일본 상황에 맞는 선교정책과 목회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팀 목회 등 일본선교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각종 컨퍼런스 등을 통해 발표하고 있고 일본을 위한 중보기도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목사의 꿈은 조총련선교이고, 종합선교센터 건립이다. 그는 조총련 동포를 ‘복음의 황무지’로 표현하며 북한선교 역시 일본의 조총련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이 목사는 “일본선교의 총체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며 “앞으로 세워지는 종합선교센터가 이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복음성가 가수박종호 장로와 시드니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만나 환담하는 이병용 선교사(왼쪽)     © 크리스찬리뷰


 
이 목사는 “세계교회가 그동안 일본선교를 위해 막대한 자금과 열정을 쏟아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포기하고 한국교회만이 유일하게 남아 일본선교에 열정을 쏟고 있다”면서 일본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선교가 어렵다고 포기하지만 일본 속에 섞여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배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섬기는 진정한 선교준비자들이 필요합니다. 일본에 살면서도 ‘거류민’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채 살아가고 있는 조총련을 포함한 재일 한국인의 가슴이 바로 선교의 땅 끝이 아닐까요?”
 
이 목사는 “선교는 당내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려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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