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홀리데이 비자에서 해양공학 박사까지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세계의 해양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는 호주해양대학교 원구원 김호완 박사. 그는 잠수함의 항력 계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크리스찬리뷰


타스마니아의 자연경관은 너무 아름다웠다. 깨끗한 공기, 맑고 오염되지 않은 물, 어디에서 볼 수 있는 빼곡한 나무들과 자연 그대로의 숲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자원을 품고 있는 숨겨진 보석같이 느껴졌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타스마니아를 처음 방문했다.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멜번 등은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타스마니아를 방문할 기회는 없었다.
 
시드니에서 직항을 구하지 못해 멜번에서 프로펠러 여객기를 갈아타고 2월 9일(토) 론세스톤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 타스마니아를 방문한 목적은 최영주 학장(타스마니아대학 컴퓨터학부 종신교수, 2019, 4월호 게재 예정)과 김호완 박사(호주해양대학 연구원 , 론세스톤순복음교회 집사)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이다.
 
김호완 박사(33)를 론세스톤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현재 그는 타스마니아대학교에 있는 호주해양대학교(Australian Maritime College)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 Associate)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6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혼자 시드니에 도착했다.

 
아! 저거다

 

▲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를 다니다 해병대 병 964기로 자원 입대한 마린보이 김호완(오른쪽 앞) 훈병이 무적해병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다.©김호완    


그는 부산 동아대학 토목공학과를 한 학기 다니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제대할 무렵에 왠지 학교로 다시 복학하기는 싫고 무엇을 하며 살까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오래전 보았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다루었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그래 호주 한번 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호주를 가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2006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다른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처럼 일도 하고 돈이 모이면 영어공부도 하면서 지냈는데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기간이 가까웠다.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3개월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막연하게나마 영어라도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영어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던 어느 날 그는 달링하버(Darling Harbour)에 있는 호주국립해양박물관(Australian National Maritime Museum)을 방문하게 된다.

 

▲ 김호완 박사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 동석한 부인 이수경 집사가 남편에게 사랑스런 눈길을 주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게 될 계기가 될 줄이야! 그는 여기서 우연히 호주의 한 여성이 자신이 만든 요트를 타고 세계를 항해한 후 자신의 요트를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 호주에서 공부하게 된 동기를 부여한 요트(호주국립해양박물관, 달링하버, 2006) ©김호완  


“어느 날 시드니 달링하버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한 여성이 자신이 만든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후 그 요트를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제 맘에 ‘아! 저거다!’ 내가 이걸 해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탁! 하고 들더라고요. 나도 저걸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인생은 저렇게 사는 거야! 앞으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트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수소문해서 여러 가지 과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가 여러 가지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골드코스트 TAFE에 보트 제조 과정 2년짜리 코스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여기 타스마니아 대학(University of Tasmania)의 조선공학 4년 과정이 있었어요. 골드 코스트 TAFE 과정의 입학조건은 IELTS 제너럴 5.5였어요. 그래서 목표가 생겼지요. 그래 열심히 공부해서 IELTS 5.5를 만들어 보자!”
 
목표가 분명해서인지 그는 3개월 공부한 후 무난히 IELTS 제너럴 5.5를 성취했다. 그리고 골드코스트 TAFE 보트 제조 과정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미 그 과정에는 너무 학생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타스마니아 대학의 조선공학 과정은 IELTS 아카데믹 6.0이 필요했다.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일 년을 기다려서 골드코스트 TAFE을 갈까? 아니면 다시 IELTS를 다시 공부해서 아카데믹 6.0을 받아 타스마니아 대학에서 가서 제대로 공부를 할까? 그러다가 결정을 했어요. 그래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IELTS 아카데믹 6.0을 받고 제대로 공부해 보자.”
 
그러는 동안 비자기간도 만료되어 하는 수없이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에 왔지만 목표가 생긴 그는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서 호주에 다시 오려고 부랴부랴 학생 비자 신청을 하고 급기야 2개월 후 다시 호주 시드니로 돌아오게 되었다.

 

▲ 워홀러시절 친구들과 함께 즐거웠던 야유회(앞즐 가운데 가면을 쓰지 않은 청년이 김호완 박사이다. ©김호완  


“제가 다시 올 때는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영어학원 4개월 등록하고 4개월 학생 비자로 왔어요. 그런데 다행히 2개월 후 IELTS 시험을 봤는데 기적처럼 IELTS 아카데믹 6.0이 나온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겸손하게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했다.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

 
그는 그때까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교회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돈이 없어 영어학원을 4개월치 밖에 등록할 수 없었고 일단 호주에 와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하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호주에 다시 오게 된 그는 첫 번째 왔을 때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다.
 
첫 번째 왔을 때는 정말 막연히 왔다면, 두 번째 왔던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도 교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도 교회란 곳은 꿈도 꾸어 보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어떤 누나에 의해 교회를 소개받게 된다.
 
“저는 교회라는 곳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같은 학원에 다니는 누나가 한번 교회에 같이 가자고 권면을 하더라고요. 라면도 주고 전골냄비도 준다고 저를 꼬시는 거예요. 그 말에 혹해서 라면도 얻고 전골냄비도 받으려고 가기 시작했어요. 정말 교회에 가니까 라면을 주더라고요.”
 
그는 믿음이 있어서 교회에 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먹을 것도 주고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 교회를 출석했다. 그러나 교회를 출석하며 듣게 되는 설교말씀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선배의 충고처럼 들어왔다고 한다.

 

▲ 연구실에서 작업 중인 김호완 박사. 컴퓨터 뒤 벽면(왼쪽)에 “할 수 있다! 하자! 2019! 오늘이 최고의 기회다. 감사 겸손 근면”이라는 표어가 눈길을 끈다.     © 크리스찬리뷰
▲     ©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평일에는 본다이 정션(Bondi Junction)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뉴스 에이전시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학원을 다니고,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가운데 2달 만에 원하는 IELTS 점수가 나온 것이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다 하나님의 은혜!” 였다고 고백한다. 기자가 듣기에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원하는 IELTS 점수를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 이후 과정은 더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점수가 나와 타스마니아 대학 조선공학과에 원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등록금도 문제였지만 계속 공부할 수 있다는 일 년치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재정증명이 필요했다.
 
“4개월 학생비자 만료 전에 IELTS 점수가 나와 다행이었지만 막상 타스마니아 대학에 등록하려니까 여러가지가 난관이었어요. 겨우겨우 한 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해서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일 년치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재정증명 서류가 필요한 거예요. 갑자기 2만5천불 이상 되는 돈을 예치한 증명을 해야 했는데 막막했어요.”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재정증명이 필요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돈이 없어 고작 4개월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4개월짜리 학생비자를 받고 들어온 상황이 아닌가?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 등록금은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호주 국립대학교를 등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어로 공부할 수 있다는 수학능력을 포함하여 재정증명 등 여러 가지 증명이 필요했다. 그런데 IELTS 점수는 받아 놓았지만, 재정증명 때문에 막막해 하던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뉴스에이전시 사장님(시드니새생명교회 이제혁 장로)께서 재정증명을 해주신 거예요. 저는 말씀을 안 드렸는데 어떻게 제 사정 이야기를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을 통해 듣고 알게 되신 거예요. 그리고는 은행에 같이 가서 그 큰 돈을 선뜻 제 계좌에 입금하고 재정증명을 해주셨어요.”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요즘같이 서로 사람을 못 믿는 세상에 그 큰 돈을 상대방의 계좌에 선뜻 입금해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고작 몇 주 같이 일한 아르바이트 학생을 도와주고 싶어 사랑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의 은혜! 였다는 그의 고백은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타스마니아대학 조선공학과

 
자기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공부를 해본 사람은 다 이해할 것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영어로 공부를 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3학년 1학기를 마칠 때쯤 그는 그의 삶에 뭔가 다른 동기부여를 만들고 싶어 학교를 휴학했다. 요트를 만들기 위해 조선공학과정을 시작했지만 실제 학교의 공부과정은 이론 중심으로 그가 꿈꿔왔던 요트 만드는 과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졸업을 한 한기 남겨두고 휴학한 후 그는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 한국에 온 후 그는 우연히 요트 만드는 회사의 구인광고를 보고 거기에 인턴쉽으로 지원하게 된다.

 

▲ 김호완 군과 이수경 양은 론세스톤순복음교회 최병희 목사의 주례로 론세스톤 게이트웨이 침례교회에서 조촐하게백년가약을 맺었다.(2016. 2.8, ) ©김호완    


“다행히 한국에도 요트 만드는 회사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자기와 같은 열정을 가진 동료들과 3개월여를 열심히 요트를 만들어 봤어요. 처음 설계부터 마무리하는 단계까지 다 해보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전문가가 아니어서인지 뭔가 엉성하고 원하는 만큼 작품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 ©김호완  


그리고 그는 3개월 후 요트회사를 나오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요트를 만들어 세계를 항해하고자 했던 꿈이 얼마나 알맹이 없는 욕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요트를 직접 제작해 보기도 하고 실제 부딛쳐 보니 제가 생각했던 이상과 많이 달랐어요. 제 이상은 요트를 통해 제 열정을 담아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실제보니까 요트는 돈 많고 럭셔리한 사람들이 인생을 엔조이하는 것이고, 그 안에 무슨 알맹이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세계 일주를 한다 하더라도 그 후에는 뭘까? 생각해 보면 미래가 없더라고요.” 
 
그후 그는 호주로 돌아가서 남은 과정을 어떻게 빨리 마칠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때 또 그에게 ‘한국 선급’이라는 선박 감리회사의 인턴쉽 구직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한국선급은 큰 선박이 만들어지면 그 배가 규격대로 잘 만들어졌나 감리하는 회사입니다. 이러한 선급회사는 각 나라마다 하나씩 있어요. 마침 한국선급에서 인턴쉽을 뽑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원해 봤지요.”
 
그는 한국선급에서 5개월 인턴십 과정을 했다. 인턴십 과정이긴 하지만 그가 배운 조선공학의 이론을 통해 선박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 년간의 휴학기간이 끝나자 그는 다시 타스마니아로 돌아왔다. 이제 한 학기 남은 시점에서 졸업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몇 개월 직접 요트제작을 통해 요트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졸업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 이것이 당장 그에게는 급한 고민거리였다. 깊은 고민을 하는데 한국선급에서 일했던 것이 기억나면서 막연하지만 그런 비슷한 환경에서 앞으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다.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과 연관된 일을 하시는 것을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 일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한국선급에서의 인턴쉽 과정은 그에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막연하나마 하나님의 소명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다시 타스마니아로 돌아와서 전 세계에 있는 선급회사들에게 구인광고가 있던 없던 이메일을 보냈어요.
 
“내가 당신 회사에서 일해 보고 싶다.”
  
그런데 일하라고 연락 온 곳은 아무 데도 없었어요. 어떤 곳은 아예 답장도 없고 어떤 곳은 우리가 지금 사람을 뽑지 않고 있다. 나중에 사람이 필요할 때 다시 연락해 주마. 이 정도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 고민했죠. 이제 졸업하고 취직을 못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마침 저희 교수님이 박사과정을 제안하시는 거예요.”

 
해양공학 박사과정

 
고민을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다른 결정에 대한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학비면제에 생활비 보조까지 주어지는 혜택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담당 교수의 제안대로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다행히 저희 조선공학(Naval Architect) 학사 과정은Honours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과정이어서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이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죠!”
 
그는 생활비 보조를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전에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할 때와 비교한다면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는 론세스톤순복음교회(담임목사 최병희) 집사이다. 그전에도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지만 박사과정을 하면서 더욱 열심히 봉사했다. 청년회 회장도 여러 차례하고 신앙도 깊어져갔다. 그가 박사과정에서 리서치한 것은 ‘잠수함의 항력계산’이다.
 
맨 처음 그가 조선공학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된 요트를 보고 본인도 요트를 만들고 싶었던 꿈 때문이었다. 그 요트는 다시 조선공학으로 이어지고 조선공학은 ‘잠수함의 항력계산’으로 열매 맺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잠수함의 항력계산을 리서치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특별한 것 없어요. 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마침 학부 과정에서 팀 프로젝트로 잠수함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특별히 호주는 해양국가이기 때문에 잠수함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는 좋은 수퍼바이저를 만났기 때문에 리서치를 끝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4년간의 고된 연구 끝에 2018년 4월에 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박사과정을 하는 가운데 그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정말 다 하나님의 은혜에요. 제가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하시고, 맨 처음에는 운좋게 IELTS도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다 하나님의 은혜였죠. 논문을 제출하고 나서도 맘을 많이 졸였죠. 기도 엄청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큰 수정없이 통과 되었어요. 다! 하나님의 은혜죠!”
 
그 숱한 세월 동안 왜 마음의 고생이 없었겠는가? 또 끈질기게 앉아서 연구했던 그의 세월과 노력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겸손하게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렸다.
 

▲ 평소 존경하던 타스마니아대학 컴퓨터학부 종신학장인 최영주 교수와 함께 한 김호완 박사.     © 크리스찬리뷰



앞으로의 꿈을 물어보았다.
 
“지금의 포스닥 리서치 과정이 끝나면 유엔 산하의 국제해양전담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sation)에서 일하고 싶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막연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일과 관련된 일을 저에게 준비시키시는 것 같아요.”
 
그는 세계의 해양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구의 2/3는 바다이다. 그러나 이 바다가 갈수록 오염되어가고 있다. 이 바다는 인간의 삶의 터전이자 아름다운 자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자원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야 말로 그 어떤 일보다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2006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처음 호주를 방문해서 해양공학박사까지 이뤄낸 김호완 박사. 그의 도전 이야기가 한국의 많은 청년들에게 도전의 큰 꿈을 키워주기를 기대해 본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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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6 [11:4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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