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 전사의 용맹으로 정의를 외치다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표창원 의원은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게 되었다”고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밝혔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 2월 1일(금)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시드니를 방문했다. 호주민주연합(대표 김종국)에서 초청한 행사였다.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인 2월 2일(토) 표 의원은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라트비안 강당(Latvian Theatre)에서 시드니 동포들을 대상으로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350여 명의 동포들이 참석하여 강연을 듣고 질문도 하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데, 강연은 ‘호주 동포들과 꿈꾸는 대한민국 100년’이 주제였다. 
 
샤프한 외모와 친절한 매너가 몸에 배인 그는, 그가 표현하는 대로 신사의 품격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슈들이 혹시라도 활자화되어 본인의 의도와 맞지 않게 오도되어 나가게 될 경우 서로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되도록이면 정치적 질문들은 자제했다.

 
이소룡을 좋아했던 소년

 

▲ 표창원 의원 ©국민일보    


표창원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평안남도 출신의 실향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을 두 번씩이나 갔다 온 해병대 출신이었지만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베트남에 간 후 연락이 두절되어 어머니가 두 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다. 막내인 표창원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분노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월남전에 두 차례나 다녀오셨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도 아버지는 월남에 계셨어요. 근데 그 시기에 아버지와 연락이 끊어져서 어머니께서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아버지와 연락이 두절되니 송금 오는 것도 끊어지고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서 아들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녔어요.
 
허드렛일도 하시고, 장사도 하시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에 불화의 원인이 되었죠. 저는 어려서 자세히는 몰랐지만 이런 것들로 인해 두 분이 자주 다투시고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막내인 표창원은 호기심도 많았고 이소룡 영화에 심취한 개구장이 소년이었다. 말썽도 자주 피우고, 어릴 때부터 억지로 시키는 것들에 대해서는 유독 반항감이 많았다. 그래도 어렸을 때 표창원은 정의감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불의하고 악한 자들을 잡아넣기 위해 경찰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도 많이 하고 정의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옳지 않다고 느끼면 두세 살 많은 형들이라도 그냥 덤벼들고 그랬어요.”
 
이러한 불만 많던 표창원의 폭력적인 성격을 잠재우고 지혜를 불어넣어 주었던 것은 바로 책이었다. 그는 많은 책들을 읽으며 폭력이 아닌 지혜와 신사적인 언어를 통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히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는 폭력이 아닌 두뇌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를 보고 그에게 매료되었다.
 
홈즈는 폭력보다는 감정을 조절하고 두뇌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었다. 그가 후일에 경찰대학에 진학하게 된 배경에는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교수직을 포기하다

 

▲ 광화문광장에서 백기완 선생(왼쪽)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표창원 의원(가운데) .©국민일보    


그는 많은 경력들을 거쳐 드디어 경찰대학 교수가 되었다. 적어도 그가 2012년 12월 국정원 여론조작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경찰대학에서 잘나가는 행정학 부교수였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희망하는 대로 경찰대학에 입학하고 영국으로 국비 유학까지 다녀와서 경찰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다시 바꾸어 놓게 된 비운의 2012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은 2012년 12월 대선 시 국정원 소속 정보요원들이 국정원의 지시를 받아 인터넷에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던 것을 야당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밝혀지게 된 사건이다.
 
이때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는데 댓글을 퍼나르던 오피스텔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자 경찰과 국정원 소속 정보요원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표창원 교수는 국가적 대사인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국가의 안녕과 공공의 질서를 파괴하는 옳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때 그는 공개적으로 오피스텔에 강제 진입을 해서라도 야당의 흑색선전인지 아니면 실제 국정원이 댓글 공작을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개인 SNS에 올릴 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출연하여 공정하고 바른 수사를 위해 피력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정치적 이슈에 발언권이 없는 경찰대 교수가 그렇게 하려면 경찰대학 교수를 포기하고 하라는 여론에 휩싸였다. 그는 깊은 고뇌 끝에 정의를 선택하기 위해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철밥통 교수직을 포기한 것이다. 
 
“제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늘 어려웠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때는 아무래도 2012년 12월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으로 인해 제가 경찰대학 교수직을 포기할 때였던 것 같아요. 
 

고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내가 교수직을 포기하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몇 날 며칠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잠깐 그때 그가 제출한 경찰대학 교수 사직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 …. 하지만, 2012년 12월 19일 실시되는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경찰대학 교수로서의 직위’가 이용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경찰대학과 학생들의 숭고한 명예와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에 부당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방지하고, 경찰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등에게 혹여 자유롭고 독립적인 견해를 구축하는 데 있어 부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사직하고자 합니다. “
 
그는 현실보다는 정의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많았던 그였지만 인생의 이러한 중요한 결정의 시기에 그가 현실과 생계보다는 정의를 선택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 표창원 의원은 호주민주연합 초청으로 ‘호주 동포와 꿈꾸는 대한민국 100년’을 주제로 라트비안 강당에서 토크 콘서트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그가 경찰대학 3학년 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다.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군부정권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고 전국적인 데모가 연일 이어졌다. 이때 경찰대학 대학생이었던 표창원에게도 갈등이 일어났다. 자기도 대학생이기에 데모행렬에 동참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불타올랐다. 
 
표창원뿐만 아니라 경찰대학 학생들 가운데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이기 이전에 우리는 중립적인 경찰이라고 데모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이러한 갈등의 시기에 우리의 입장이 어떠한 것이 타당한 것인지 지혜가 많은 현인들에게 의견을 구한 다음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다섯 명의 대표가 각기 종교인, 정치인, 교수, 언론계, 시민단체 등 현자 선배들을 찾아가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모든 동료들이 받아온 대답은 현재는 열심히 공부하고 나중에 너희가 사회에 나왔을 때 정의를 구현하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표창원이 찾아간 사람은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주임 신부였다. 그러나 그에게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그를 평생 따라다닌 부채 의식이 되었다.

 
세례명‘이보’표창원

 
어린 시절 늘 가난했던 표창원은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교회를 통해 위로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와 연락이 두절된 어머니는 두 아들을 혼자 키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교회를 의지했다.
 
“혼자 두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는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역곡 근처의 계수리에 농사일 같은 것을 도와주기 위해 그곳에서도 살았습니다.
 
그때 거의 교회에서 지냈습니다. 목사님 아들하고 교회에서 놀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또 몇 번 이사를 통해, 우이동과 마포를 거쳐 동두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무슨 연유였는지 모르지만 성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바오로라고 주임신부님이 계셨는데 젊고 열심이셨습니다. 여기서 한바오로 신부님으로부터 ‘이보’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저 하나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싸움도 많이 하고 정의감도 많고 하니까 많고 많은 성인 중에 저에게 걸맞는 세례명을 특별히 골라 주신 것 같습니다.
 

‘이보’라고 하는 성인은 정의의 상징이면서 그 당시 가난한 자들의 변호사라고 불리우는 분이었습니다. 판사로서 주로 힘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주난민들을 도와주었으며 사제가 된 후에도 구호소를 세워 병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위해 애쓰셨던 법률가의 성인입니다. 그래서 너도 이와 같이 살아라 하는 의미로 저에게 ‘이보’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거의 모태신앙 수준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녔고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늘 교회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동두천에 정착한 이후에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어린이복사까지 하면서 모든 가톨릭 교회 활동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전도도 하고 신앙생활을 했다. 
 
심지어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곤지암으로 피정을 갔다가 그곳 기도실에서 신비한 영적인 체험까지 했다고 간증한다. 기도를 하는데 하얀 빛 같은 것이 자기 몸 속으로 들어오는 신비한 체험까지 경험했다. 이처럼 그는 고등학교까지는 그의 표현대로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 스스로를 ‘냉담신자’라고 한다. 개신교로 표현한다면 ‘가나안(안나가)교인’이다.  그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종교의 위선과 대 사회적 침묵

 

▲ 김인화 작가의 능숙한 사회로 진행된 표창원 토크 콘서트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가 가운데 진행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그의 고백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까지는 누구보다도 열심이 많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많은 친구들을 포교를 통해 성당으로 데려왔고 심지어 신부가 되라는 주위의 권고를 들을 만큼 교회일에 열심히 많은 학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고3말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종교적 의문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해 시원스럽게 대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면서 신앙의 회의에 들어서게 된다.
 
“뭐 그런 거지요. 고3말이 되면서 누구나 가지게 되는 그런 의문,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가나? 물론 계속 선교를 하지만 아직 전도를 못 받은 사람들, 그 이전에 기회도 없이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이런 질문에 대해 신부님들이나 수사님들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못 주시는 거예요.
 
또 이런 것도 있지요. 열심히 믿긴 하는데 나쁜 일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회개하면서 그대로 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믿으니까 천국에 가나? 그러면서 제가 겪은 많은 모순들, 학교와 사회를 보더라도 많은 불의와 불공평, 그런 것들을 보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왜 계속 세상을 불의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시고 방치하시나...? 
 
물론 신부님께서는 이것은 시험이고 불안전한 인간에게 던져진 유혹으로 인해 발생한 것들이고 이런 것을 우리가 이겨내야 한다. 뭐 이런 말씀들을 주시긴 하셨지만 이전에는 이런 것들이 그냥 믿어졌지만 이제 머리가 커지니까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냥 믿고 따르기만 할 수는 없었어요.
 
이걸 머리로 납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철학이나 사회과학쪽으로 옮겨간 것 같아요. 그때 제가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이문열의 당신들의 천국 같은 책들을 읽으며 무척 고민했어요.”
 
이렇게 그는 대학에 들어서면서 형식적인 미사와 종교적인 활동들에 대해 점차 마음이 식어졌다. 특히 보수적인 종교인들의 위선과 사랑을 외쳐야 할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더 차별하고 사회적 정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들을 보면서 ‘냉담 신자’로 굳어져 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다만 종교적 현실에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부패, 사회적 불의에 침묵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다만 그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정의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택한 것뿐이라고 한다.
 
“여전히 갈등이죠. 신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눈에 보이는 성전, 교회, 또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는 성직자들, 그들이 절대적인 존재인가?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대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모습이 너무나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 우상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우상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그것을 개혁하는 길은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에서 불의한 것들을 곧게 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렇게 하는 것을 제가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해야 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350여 명의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라트비안 강당에서 열린 토크 코서트에서 주제 강연하는 표창원 의원.     © 크리스찬리뷰


표창원은 스스로를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크리스찬이라고 공적으로 밝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많은 사이비 기독교와 이단들이 있고 이런 사이비 기독교가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그는 무섭게 분개한다.
 
실제 그가 밝힌 ‘2012년 국정원 대선 댓글공작에 개입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십알단’의 윤정훈 목사 같은 사람도 있었다. 목사라는 자가 돈에 눈이 어두워 불의한 방법으로 국정원 대선 댓글 공작에 개입한 것이다. 또 우리는 박근혜의 국정농단 배후에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이비 목사와 그 딸 최순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저도 가톨릭 신자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권력자와 부자들과 야합하는 자들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하고 억울하고 피해입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예수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그는 제대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신사의 품격, 전사의 용맹

 
원래 표창원은 정치를 싫어했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정치현실이 그렇게 모범적으로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가 싫어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미 그가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현 정부의 입장에 서야 할 경찰 공무원이 ‘정의’를 선택했을 때 이미 정치가로서의 입문의식을 거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정치를 하려는 이유는 바로 ‘정의’이다.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서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위에 돈, 권력자들의 부패와 비리, 적폐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사법적폐와 많은 불의가 아직도 기생하고 있다. 이것을 뿌리뽑고 근절하기 위해 그는 정치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완전한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만큼의 ‘정의’는 제대로 된 국가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정의’가 무너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제가 정치에 직접 나가게 된 주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한국사회의 권력적 부패와 비리들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다. 실제 그의 삶은 이러한 부조리와 비리들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제가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일선 파출소장으로 일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 새파랗게 젊었지만 파출소장이라는 직급 때문에 지역 유지들하고 자주 어울렸죠. 그리고 지역 유지들이 관행이라며 떡값과 뇌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과 관계가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표창원은 정치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피력한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 ‘국정원의 불법 여론 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도 당하고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그가 포기하지 않고 밝히고 싶었던 것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진실’이 밝혀졌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표창원은 현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자문위원이기도하다. 그가 앞으로 인양하고 싶은 것은 바로 ‘진실’이다.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되었는지? 침몰할 때 방제시스템이 왜 학생들을 구해내지 못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그냥 바닷속으로 수장되도록 방치했는지,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강조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어렸을 때 반항기 가득한 개구장이 싸움꾼에 말썽장이 소년이었다. 그래서인가? 그는 유독 ‘신사의 품격’을 강조한다. 진흙탕의 정치판에서 아무리 더럽고 지저분한 현실이라도 이쪽에서 상대를 존중하면서 ‘신사의 품격’을 지키면 언젠가는 반드시 변할 것이라는 소신이 그에게는 있다.
 
그에게 왜 험난한 정치판에서 ‘신사의 품격’을 강조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반성이 컸구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신앙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교회와 성당을 오래 다니며 들었던 성경말씀을 보면 제가 쉽게 빠져들었던 폭력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감정대로 행동하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래서 조금 더 깊이 성찰하게 되고,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거죠. 그리고 다른 한편은 독서가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현실이 너무 어려웠고, 가난했고, 집안에서는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고 그래서 너무 아프고 힘들었는데 책을 통해서 가르쳐 준 일관된 메시지, 그것은 너무 멋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감정을 절제하고 오래 기다리고, 인내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품격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면 멋지게 이기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용기는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약자와 여자를 배려하는 품격있는 신사, 그런 것들을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는 품격있는 신사 정치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상대가 아무리 막말하고 몰상식으로 일관하고 뻔한 거짓말을 하더라도 상식과 합리, 매너와 배려로 끝까지 존중하면 먼저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면 언제가는 깨닫게 될 것이라는 믿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불의 앞에선 결코 타협이나 물러섬이 없이 단호하고 결연하게 ‘전사의 용맹’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한다.

 

▲ 품격있는 신사 정치인이 되기를 소망하는 표창원 의원. 크리스찬인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 크리스찬리뷰


 
표창원 의원과 동행하며 그와 사적인 대화들도 폭넓게 나눴고 이곳에서 다 풀어 놓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그에게는 경찰관, 교수, 범죄 프로파일러, 방송인, 저술가, 정치인 등  많은 타이틀이 있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기자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주고 싶다. 그는 ‘정의에 목마른 선지자’이다.  
 
굳이 마이클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의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라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또 성경 구약에서 일관되게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이 ‘정의와 공평’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를 인터뷰하며 혹시 하나님께서 조국 대한민국에 ‘정의’를 하수같이 ‘공평’을 물같이 흐르게 하기 위해서 표창원 의원을 부르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표창원 의원이 초심을 잃지 않고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아모스가 되어 정의를 실현하는 바른 정치인이 되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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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6 [11:5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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