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3/29 [09:5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한복음 6:9-10)
 
춘궁기
 
일제 식민 통치의 수탈, 미 군정의 혼란, 한국 동란의 파괴, 자유당 정권의 부패를 거치며 피폐해진 한민족은 식량이 부족해 늘 배고팠습니다.
 
가을에 수확해도 소작료, 세금, 이자 등을 떼고 남은 양식을 금이야 옥이야 아껴가며, 싸라기 쌀이나 만주에서 들여온 좁쌀로 버티다가, 6월까지 지속하는 극심한 춘궁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4월이면,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를 탓하며, 초근목피라는 말 그대로, 소나무껍질, 칡뿌리, 솔잎 등으로 연명하거나 흰 찰흙을 죽에 섞어 먹기도 했습니다. 부황에 걸리고, 걸식하는 걸인, 유랑민이 흔했습니다. 
 

잔인한 희망의 달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데, 이 표현이 한국민의 귀와 입에 친숙한 이유는, 보릿고개의 비극이 깔린 민족의 정서와 함께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처럼 많은 생명을 앗아간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유난히 4월에 자주 발생했고, 이를 해마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한국인의 눈물과 함성이 울분과 분노로 뒤범벅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지만, 보리의 히브리어는 ‘쎄워라’인지라, 마치 보릿고개의 배고픈 슬픔의 세월이 세월호에 잔뜩 끼어 있는 인상입니다.
 
그러나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 엘리엇(T. S. Eliot)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생명 있는 그 무엇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서구인들의 황폐한 정신세계와 상실감을 묘사한,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장편 시의 서두에 사용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은, 전쟁, 황폐함, 탐욕, 무지, 절망 등의 잔인함보다, 그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라일락과 마른 구근(알뿌리)의 부활이 더 잔인하다고 노래함으로써, 봄과 함께 찾아오는 생명과 희망이 가장 잔인한 강인함을 지녔다는 역설적 표현으로, 허무와 슬픔의 상실감을 넉넉히 딛고 일어설 만큼 더 강인한 생명에 대한 찬가인 셈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는 4월의 잔인함을 엘리엇이 본디 말하고자 했던, 잔인한 현실을 뚫고 나오는 가장 잔인한 희망으로 극복해야겠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 
 
예수님께서는 한 소년이 바친 보리 떡 다섯 개로 허기진 군중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 주변을 맴돌다가 영육의 허기를 채우려는 배고픈 군중과 이들을 위해 기꺼이 다시 축사하시고 배부르게 먹이실 예수님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기꺼이 자신의 보리 떡을 예수님께 건네 드리는 아이와 같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한 떡을 자신들의 발과 손을 통해 고루 나눠 모두가 배부르고 남는 풍요한 세상을 꿈꾸는 제자도 부족합니다.
 
자기 명성을 위해 자기가 직접 축사하고 나눠주려고 하는 무모한 사람과 남은 조각을 거둔 열두 바구니를 챙겨 들고 뛰려는 타락한 종교인이 가끔 보일 뿐입니다.
 
4월은 부활의 달입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천지에 움트는 생명 탄생의 아우성이 사방 하늘과 땅에서 들려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로 먹이고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한 세상이 모두에게, 특히 척박한 땅을 일구는 농부와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듯 이국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사는 여행자들에게 희망과 부활의 기쁜 소식으로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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