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함께 떠난 사진선교 여행

글|유창선,사진|유창선·권순형 | 입력 : 2019/03/29 [10:00]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CAP 대상자인 쑨 니따(왼쪽)양이 현지인 쏙찌어 전도사의 방문을 받고 환한 미소로 답하고 있다. ©유창선    

 

지난 3월 3일 오후 7시 20분, 대한민국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 후 꼬박 4일을 프놈펜에서 지낸 후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옆자리엔 박정규 장로(서울 신길성결교회)가 앉았는데, 장인어른이다. 아내와 두 딸은 서울에 남았다. 두 남자가 자리를 비운 탓에 장모님도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시게 됐다.
 
장인과 함께지만 정해진 일정은 하나도 없다. 행선지만 분명하다. 헤브론병원이다. 헤브론병원은 한국인 선교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 세웠다. 현지인에게 무료 의료를 베풀고 복음을 전한다. 한국인 의사나 스태프(staff) 모두 선교사다. 오로지 캄보디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다.

 
캄보디아를 다시 품다

  
난 기자였다. 14년 동안 한국에서 신문기자로 생활했다. 지난해 11월 잘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광야로 나왔다. 이유는 딱 하나다.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이다. 마침 아내에게도 같은 마음을 주셨다. 덕분에 그만두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지난 1월 갑자기 하나님은 아내와 나에게 캄보디아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 내가 찍어준 가족사진을 보며 기뻐하던 그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난 2004년부터 10년 동안 여름 단기선교에 참여해 사진으로 섬겼다. 캄보디아는 2011년부터 3년간 다녀왔다. 결혼한 2012년에는 아내도 동참했다. 이때부터 캄보디아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품은 유일한 나라가 됐다.
 
아내와 밤 늦게까지 얘기하다 문득 포털에 '캄보디아 사진선교'를 검색했다. “캄보디아로 사진선교 오세요”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에서 병원 식구들과 환자들을 촬영해 줄 사진선교사가 필요하단 내용이었다.
 
기사 사진 속 인물이 바로 호주 크리스찬리뷰 권순형 발행인이다. 이 기사가 권 발행인과의 만남으로 이어줄지 생각도 못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직장과 신학대학원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두 달 가까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다. 캄보디아 사진선교만 남았다. 어느새 권 발행인과 약속한 3월이 다가왔다. 그냥 순종하기로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도 말씀드렸다. 별안간 맏사위가 식구를 다 데리고 캄보디아로 떠날 수도 있다니 장인이 따라 나섰다. 장인과 동행하게 된 이유다.

 
헤브론병원, 의료를 통해 복음을 전하다

 
3일 밤 늦게 프놈펜에 도착했다. 장인과 나는 헤브론병원 인근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잠시 눈을 붙였다. 이튿날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매캐한 오토바이 매연이 낯설지 않다. 거리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풍경도 정겹다. 4년 만이다.
 
장인과 간단히 산책을 마치고 헤브론병원에 들어섰다. 오전 7시, 입구 왼편에 있는 대기실은 환자와 가족으로 꽉 들어찼다. 무료다 보니 대부분 전날 밤부터 자리 잡는다. 선착순으로 진료받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원래는 공터였는데 이들을 위해 헤브론병원에서 건물을 지어 제공했다.
 
이곳에서는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예배가 시작된다. 일 주일에 세 번 조봉기 목사(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교목실장)가 크메르어로 말씀을 전하고 찬양도 인도한다. 대기실에 있는 캄보디아 사람은 어림잡아 200여 명. 매주 1천 명, 1년이면 5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들이 복음을 듣는 셈이다.

 

▲ 환자 대기실에서 복음을 전하는 캄장신 교목 조봉기 목사(왼쪽 검은 옷)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이 설립된 지 10년이 넘었으니 적어도 50만 명은 예수님을 알게 됐다. 전 세계 어느 선교단체가 매일 2백 명에 가까운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헤브론병원의 핵심사역이 겉으로는 의료지만 실제는 선교인 이유다.
 
헤브론병원 모든 식구는 오전 7시 30분에 큐티를 한다. 의사와 간호사, 스태프 등 직군별로 모인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만 함께 예배를 드린다. 마침 월요일이라 자연스레 예배도 드리고 인사도 나눴다. 대부분 우리 둘의 관계를 궁금해 했다.
 
큐티 후에는 각자 업무 자리로 간다. 의사들은 병실이 있는 2층에서 회진을 한다. 마침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심장수술팀이 봉사활동을 나왔다. 이영돈 부원장 주도로 심장병 수술환자를  중심으로 둘러봤다.
 

본격 진료는 오전 9시부터다. 한국에는 심장병 수술 중심으로 소개됐지만 정형외과, 부인과, 소아과, 치과 등 다양한 진료가 가능하다. 헤브론병원장인 김우정 선교사도 소아과 의사다. 부족한 치과 진료를 위해 5월부터 박양제 박사(치의학)가 합류하기로 했다.
 
현지인 의사도 여럿이다.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해지면 현지인에게 넘겨준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다.
 
정오가 되면 오전 진료가 끝난다. 환자들은 익숙한 듯 흩어져 식사를 해결한다. 김 원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하나 둘 1층 로비로 모인다. 기도회로 오전 진료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기도’를 뜻하는 ‘아티탄’이란 말이 울려퍼진다. 크메르어로 찬양하고 기도도 한다. 현지인을 위한 배려다. 짧은 말씀이나 광고는 문선연 원목이 맡는다.
 
기도회를 마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다. 오후 진료는 낮 2시부터다. 3시간 진료 후 로비에 모여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낮게 뜬 태양이 홀 내부에 비치면 하나님도 이들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캄보디아에서의 하루는 숙소에서 장인과 나누는 대화로 마무리한다.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각자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하는 게 소소한 기쁨이 됐다.

 
사진으로 전하는 복음

 

▲ 헤브론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진을 촬영해 주고 사진 밑에 사도행전 16: 31을 크메르어로 적어 사진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한다.     © 크리스찬리뷰



나는 방문 기간 대부분을 권 발행인과 보냈다. 권 발행인이 병원 3층에 마련해 놓은 스튜디오가 작업실이자 사랑방이었다. 스튜디오에 있는 노트북과 프린터, 조명, 배경용 블라인드 등은 모두 권 발행인이 사비를 털어 일일이 실어왔다.
 
권 발행인은 앞서 사진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환자와 가족들과 직원들 사진을 찍어주고 인화도 해준다. 물론 무료다. 우리에게는 흔한 사진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잘 나온 가족사진 한 장 갖기가 어려워서다.
 
실제로 사진 한 장에 연신 ‘어꾼’(감사합니다)이라며 기뻐하는 그들을 보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 오전 진료를 마친 후 로비에서 열리는 마감기도회.왼쪽 김우정 원장, 오른쪽 유창선 집사와 장인 박정규 장로.          © 크리스찬리뷰



A4 용지 크기의 인화지 하단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라는 말씀이 크메르어로 적혀 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말씀을 한 번이라도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업그레이드됐다. 권 발행인이 투명 코팅지를 입히는 라미네이팅 기기를 들고 왔는데, 시드니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는 테너 김재우 님이 후원했다고 했다.
 
습한 지역이다보니 사진이 쉽게 변색돼서다. 나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필요를 공감했다.
 
나는 권 발행인을 도와 코팅작업을 했다. 한 장씩 코팅하다 보니 여간 번거롭지 않았으나 떠날 때가 되니 선수가 돼 있었다. 익숙지 않은 스튜디오 촬영이지만 나름 조수 역할을 잘 해냈다. 물론 틈틈이 병원 내부도 찍고 회진시간도 따라다녔다. 시간이 날 때는 병원 앞 헤브론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 바리스타인인 한국인 선교사 양순식 목사가 운영한다. 뒷 맛이 향긋한 커피가 일품이다.

 
끝까지 돌본다 Care After Program

 
방문기간 중 하루는 장인과 차승연 선교사를 대신해 ‘캐어 애프터 프로그램’(CAP) 대상 아이들을 찾아갔다. 보건교사인 ‘싸디’와 전도사 ‘쏙찌어’가 동행했다.
 
CAP는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한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도록 보충수업(Extra School) 교사를 붙여주고, 영양제나 학습자료 등도 주기적으로 건넨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토록 해 신앙까지 책임져준다. 현지인 전도사가 함께 가는 이유다.
 
오늘은 ‘쑨 니따’와 ‘허언 위어스나’를 만날 예정이다. ‘깜뽕스프’란 곳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쑨 니따의 집이 나온다. 거리는 60여 km 정도지만 도로 사정이 열악해 2시간 넘게 걸린다.
 
처음 본 니따는 가슴에 수술 자국을 빼면 건강한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외할머니, 외삼촌네 가족과 같이 산다. 니따 부모는 태국에서 일한다. 1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른다. 그럼에도 구김이 없다.
 

아쉬운 점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뒤쳐진다. 한국 나이로 10살이 됐지만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두 자릿수 덧셈도 버겁다. 아팠던 탓에 공부를 제 때 못했다. 대신 꿈이 생겼다. 의사와 교사다. 이유를 말해주진 않지만 왠지 알 듯하다.
 
짬을 내 근처에 사는 보충수업 교사 집을 방문했다.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레 모인다. 평상이 있어야 할 자리엔 의자가 줄지여 놓여있다. 평일에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주일에는 가정교회로 모이기 때문이다.

 

▲ CAP 대상 가정을 방문, 쑨 나따 양에게 선물을 전하는 싸디(오른쪽) ©유창선    


아쉬워하는 니따를 뒤로 하고 위어스나를 만나러 갔다. 위어스나 집은 여기서도 30분 가량 더 가야 한다. 마침 보충수업 중이라 교회로 갔다.
 
헤브론병원에서 왔다는 소식에 위어스나가 냉큼 달려왔다. 잘 생긴 얼굴과 달리 체구는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작다. 한국 나이로 아홉 살이지만 언뜻 봐서는 예닐곱살 정도로 보인다. 키를 재어보니 110cm에 불과하다. 4개월 동안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크메르어를 곧잘 읽어낸다. 보건 교사인 싸디가 제시하는 단어에 막힘이 없다. 수학은 더 잘 한다. 30개 문제를 모두 맞힌다.
 
그런데 어머니에 따르면 요즘 위어스나 몸이 좋지 않다. 열이 자주 나고, 쉽게 지친다고 한다. 얼마 전 근처 병원에 갔더니 백혈구 수치가 높다며 어머니가 덤덤히 말한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듯하다. 정상적인 신체 반응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검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알려줬다. 

 

▲ CAP 대상자인 위어스나 군 가정을 방문한 헤브론병원 팀과 기념촬영  ©유창선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헤브론 병원을 찾기도 어렵다. 병원비는 무료지만 왕복 140km가 넘는 거리를 다녀오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위어스나 아버지는 직업이 일정치 않아 수입이 적다. 하루 종일 일해도 1만 원을 못 벌기 일쑤다. 어머니는 위어스나를 돌보려고 최근 공장일을 그만뒀다. 위어스나를 비롯해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까지 먹고 살기 빠듯하다.
 
그래서인지 위어스나는 꿈이 없다. 어머니는 위어스나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만도 버겁다. 아이 공부를 챙길 여력이 없다. 아이 둘과 하루를 살아내는 게 숙제다. 꿈도 건강해야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위어스나가 건강한 꿈을 꾸길 기대해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 with 헤브론

 

▲ 호주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백금자 권사(왼쪽 두 번째)와 주방을 섬기는 선교사들과 현지인 직원들.     © 크리스찬리뷰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처럼 헤브론병원에 들어맞는 구절이 또 있을까. 헤브론병원의 핵심 사역은 분명 의료다. 무료 진료로 캄보디아 사람을 치료해주면서 복음을 전한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닮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헌신하는 협력 선교사가 총무, 인사, 대외협력, 시설관리, 주방 등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저마다 교단과 교회, 직분, 직업, 나이도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캄보디아 복음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 그대로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긴다.

 

▲ 호주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백학 장로(왼쪽)와 시설관리를 맡은 현지 캄보디아 직원들.     © 크리스찬리뷰


방문 당시 멀리 호주에서 백학 장로 내외가 일 년 동안 섬기러 왔다. 백학 장로는 시설관리, 아내 백금자 권사는 주방 봉사를 맡았다. 두 분 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름심에 응답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왔다.

 

▲ 환자 가족들에게 사진을 전하고 기념촬영. 왼쪽부터 박정규 장로, 권순형 발행인, 환자 가족들, 유창선 집사, 문선연 목사(헤브론병원 원목)     © 크리스찬리뷰


 
부족하지만 내게도 할 일이 있다. 글과 사진으로 섬길 곳이 분명하다. 장인어른도 또래 선교사들의 사역을 보며 적잖이 감동했다. 늘 선교 사명을 주시길 기도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부르심이 남았다. 내 생각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삶의 마지막까지 쓰임받는 그 사람이 나이길 기도한다.〠

 


글/유창선|전 전자신문 기자, 인천산곡감리교회 집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유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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