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을까?
신 존재 증명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임마누엘 칸트 이래 교회와 기독교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용어 자체에 대해 반가워하지 않았다. 칸트도 자기가 살던 시대에 존재했던 유신논증들을 자세히 살펴본 후 완전한 이론적 확실성을 가진 유신논증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논증마다 어딘가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고 단언했다.
 
이렇듯 이론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만약 신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대부분은 다 해결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아마도 인간들이 절대자 또는 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을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하고 싶은 인간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비록 신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는 것은 어려울 지라도 인류의 선조들이 신에 대해 고민하고 신의 존재를 변호하기 위해 이룩해 놓은 신존재 증명의 철학적 사유들은 나름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지난 호에 이어 신존재 증명의 남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목적론적 증명(Theological Argument)

 
신 존재 증명증 목적론적 증명이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논증이라 할 수 있다. 목적론적 논증은 플라톤의 대화록 <티매우스:Timaeus>를 통해서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 논증은 우주가 질서와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우주를 만든 설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데 우주가 그렇게 기능을 발휘하도록 창조하신 지적인 분이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목적론적 논증도 우주론적 논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시계가 그것을 만든 제작자의 존재를 증명해 준다고 하면서 우주는 그 대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면 나는 어리석은 자로 불리기를 원한다”라고 하면서 목적론적 증명을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윌리엄 패리(willia paley 1743-1805)는 그의 <자연신학 Natural Theology>에서 시계를 예로 들어 목적론적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째깍거리며 작동하고 있는 시계가 어쩌다가 땅바닥에 놓여 있다. 이 시계가 바람, 비, 태양열, 화산작용 같은 자연작용들이 우연히 합쳐져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지성을 갖춘 시계 제조공이 만들었다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답변일 것이다.
 
이와 같이 정밀하게 돌아가고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있는 우주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사실 우주가 설계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목적있는 질서로 짜여 있는 우주를 볼 때 인간은 탄성을 지른다. 지구의 크기, 공전과 자전의 정확성, 태양과의 거리, 계절의 운행, 육지와 해수의 비율 등 모든 것이 목적있게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준다.
 
A 크레시 모리슨은 그의 <인간은 고립해서 살 수 없다>라는 저서에서 사람이 자기 주머니에서 1에서 10번까지 번호를 붙인 동전을 1,2,3식으로 정확히 순서대로 꺼낼 수 있는 가능성을 100억 분의 1의 확률로 추론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는 열 개의 번호를 붙인 동전보다 무한히 더 복잡해서 생명의 모든 조건이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너무나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가설은 하나님을 믿는 일보다 더 큰 기적과 신앙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목적론적 논증은 다른 논증들에 비해 많은 긍정적인 관심을 갖게 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목적론적 논증도 우주에 어떤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는 하지만 그 설계자가 기독교가 주장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해 내지 못할 뿐더러 어떤 절대자, 신이 우주를 창조한 다음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시되고 자연 법칙에 의해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이신론(deism)에 빠질 우려도 있게 한다.

  
도덕론적 증명(Moral argument)

 
도덕론적 논증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주창되었다. 도덕론적 논증이란 호칭은 그 추론의 근거를 인간의 양심과 도덕적 본성에 두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과 자유는 도덕적 생활의 ‘전제조건들’이요, 우리가 느끼는 무조건적 도덕 의무를 해명해 주는 신앙의 문제이지 감각에 제한을 받는 일반 사변적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인간이 선과 악에 관한 의식 및 공의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 영혼에 대한 의식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보이실 참과 거짓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심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과 기준이 있다. 어떤 사회이든, 어떤 집단이든 반드시 정당한 기준과 가치척도가 있다. 왜 인간이 그렇게 살게 되었는가?
 
이처럼 인간이 정의롭고 옳바른 법의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근거와 긍극적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가 인간에게 이러한 도덕적인 체계를 따르게 했는가? 이러한 질문에 가장 타당한 대답은 최고의 도덕적인 신의 존재만이 답이 된다는 것이다.
 
플로이드 E. 해밀톤(Floyd E. Hamilton)은 “비록 죄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었지만 정의, 사랑, 혈연적인 특징 등과 같은 인류의 훌륭한 특징 등은 그런 성품이 전혀 없는 것에 의하여 생산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인간은 그의 ‘창조자가 반드시 도덕적인 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도덕적 논증은 우주에 편재하고 있는 도덕적 법칙과 인간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이 새겨져 있고 모든 인간은 양심과 같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공통된 법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려면 최고의 입법자이신 신의 존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논증이다.
 
이상의 논증들은 나름 의미들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들에게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최고의 제 일 원인자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설혹 존재한다하더라도 그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 입장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유한한 지성이 무한한 지성과 무한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지성이 분명히 유한한 지성에게 그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서 살펴보았던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계시’인 것이다.〠


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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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9 [12:4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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