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고아·과부들의 송사를 굽게하지 말라
시티주안교회에서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 10년 넘어...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10여 년 이상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에게 법률자문을 해주고 있는 홍경일 변호사.        © 크리스찬리뷰


 첫 인상

 

홍경일 변호사(39. 시드니주안교회)를 그의 로펌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의 로펌 (H & H Lawyers)은 마틴 플레이스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시드니 시내 중심가인 마틴플레이스의 전 시드니총영사관 건물 5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사진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호주의 제법 큰 로펌 회사의 대표치고는 너무 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탈하게 인사하는 모습이나 인터뷰하는 내내 느껴지는 그의 진솔함과 겸손함이 법조인이라기보다는 그냥 로컬 커뮤니티에서 쉽게 부딪힐 수 있는 인상 좋은 젊은이처럼 편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법조인하면 왠지 예리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은 선입견을 갖는다. 그러나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그런 인상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참 따뜻하고 푸근한 사람이었다.

 
골드코스트 기숙사에 남겨지다

 

▲ 우스포트 고등학교(골드코스트 ) 시절 동생 정우(오른쪽)와 함께 ©홍경일  


때로는 무모한 결정이 인생을 바꾼다. 좀 거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홍경일 변호사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었다. 아니 그의 아버지가 내린 단호한 결정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는 1994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친척집이 있는 골드코스트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왔다. 그리고 며칠 지내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이곳에서 공부시켜야겠다는 일종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아들을 그곳 학교에 입학시킨 것이다.
 
경일 군은 가족과 함께 호주 골드코스트로 여행을 왔다가 졸지에 호주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족은 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본인과 저학년 남동생이 학교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아직 엄마의 돌봄과 가족의 자리가 클 시기인데 혼자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기자는 걱정되어 조심스레 그 시기가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 사우스포트 고등학교(골드코스트 ) 축구 대표팀 친구들과 함께 (왼쪽 뒷줄 2번째 홍경일) ©홍경일    


“다행히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런 외로움을 많이 느끼진 못했습니다. 제가 축구, 크리켓, 럭비 등 모든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호주 친구들과 운동을 통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운동이 홍 변호사에게는 좋은 탈출구였다. 호주의 교육은 특히 운동을 중요시한다. 스포츠맨십을 통해서 친구들을 사귀고, 운동을 통해서 일종의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이스쿨 시절에 열심히 한 운동 덕분에 나중에 그는 축구를 통해 젊은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을 신앙과 교회로 이끄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아무리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을 통해 친구들과 막역하게 지낸다 해도 어느 동네든 텃새는 있는 법, 그 역시 또래의 백인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위기가 있었다.
 

기도 응답의 경험

 
“다행히 제가 운동을 좋아하고 잘 어울려서 큰 이슈는 없었지만, 처음에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6개월은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때 나름대로 간증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학우들 중에 꼭 짓궂은 친구 한두 명이 있잟아요? 영어가 안되니까, 영어 못한다고 놀리는데 그 말은 다 못 알아들어도 저를 놀리는 느낌이 있는 거에요.
 
그게 되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힘들수록 신앙심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밤마다 기도를 하고 잤는데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이 친구들을 벌해 달라는 기도를 무척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고요.
 
제가 다니던 학교가 앵글리칸 사립학교였는데 매주 일요일 아침 9시에 예배 시간이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니 기도를 다르게 해야 겠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어리니까 자기들이 하는 행동을 잘 모른다. 이 친구들을 용서해야겠다. 그리고 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해달라. 그렇게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 고등학교 졸업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 홍경일) ©홍경일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바꾸니까 거짓말처럼 다음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교감 선생님이 저희 교실에 오셔서 저희 반을 보시더니 학생이 너무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른 반으로 갈 학생들 손들라고 했는데 저를 놀리던 두 친구가 기적처럼 손을 드는 거에요. 그리고 다른 반으로 옮겨 갔습니다.

 

▲ ①초등학교 운동회 ②중학교 입학식 ③아버지 홍영빈 씨와 함께 ④고등학교 친구들 ⑤교교 시절 포멀파티에 어머니 조병희 씨와 함께 ⑥ 본드대학 졸업식 ⑦대학 졸업을 축하해 준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 김경식 목사와 홍효정 사모     ©홍경일    


나중에 제가 영어가 편하게 되었을 때 그 친구들도 운동을 좋아하니까 운동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그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바로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그 기적 같은 일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기도응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가장 예민하고 힘든 시기에 그의 기도는 적중하게 응답되었다. 이것은 그가 이후에도 그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신앙적 체험이 된 것이다.

 
큰 물로 가자

 
그는 골드코스트에서 하이스쿨을 다니고 골드코스트의 본드대학(Bond University) 법학과를 졸업했다. 골드코스트에서 7년을 지내며 골드코스트 로컬문화에 익숙해져 갈 때 그를 도전하는 사건이 하나 생기게 된다. 본드 대학 마지막 학기 때에 미국 시카고에 있는 노스 웨스턴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것이다.

 

“늘 골드코스트에서만 지내다가 미국에 가서 보니 도시가 정말 크더라고요, 시카고 시가 정말 컸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골드코스트는 정말 조그마한 동네 같았습니다. 시카고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제가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큰 도시로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드대학을 졸업한 후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시드니로 TV 하나 싣고 제가 직접 운전해서 무작정 내려온 것입니다.” 
 
법대를 졸업했다고 다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 연수원에서 15주 동안 연수과정을 마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본드대학을 졸업하고 브리즈번의 사법연수원에서 연수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는 브리즈번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가 공부한 곳도 브리즈번과 가까운 골드코스트요, 브리즈번에는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골드코스트나 브리즈번보다는 더 큰 도시인 시드니를 선택한 것이다.
 
홍경일 변호사는 모험정신이 많은 사람이다. 브리즈번에서 사법연수과정을 마치고 골드코스트나 브리즈번에서 직장을 구했으면 안정되고 쉬었을 텐데 더 큰 도시인 시드니로 무작정 내려온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때가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시기였을 때라고 회상한다.
 
“무작정 내려와서 킹스크로스의 백패커에서 묵었는데 시드니는 방값이 비싸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반지하에서 살았습니다. 만약 그 가격으로 골드코스트에서 방을 구했다면 꽤 쾌적하고 넓은 곳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시드니는 값이 비싸니까 이런 곳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시티주안교회 축구부원들과 승리를 다짐하며(앞줄 왼쪽 홍경일 변호사)     © 홍경일


그때 잠시지만 다시 골드코스트로 돌아갈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법연수원을 가기 위해 킹스크로스 집에서 나와 하이드파크를 지나가는데 도심 한 가운데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드파크 때문에 골드코스트로 돌아가는 것을 마음을 접고 시드니에 정착했습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님께서 학비와 생활비 등의 보조들을 해 주셨지만 대학을 졸업했는데 부모님에게 계속 부탁하기에는 미안했다. 그래서 그는 시드니에서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다고 말했다. 
 
“다른 법학과 친구들은 방학 때마다 브리즈번이나 심지어 시드니까지 와서 법률경력을 쌓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학창시절의 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열심히 놀았죠. 그랬더니 나중에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에 뭘 써야 하는데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한 거 외에는 쓸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본지와 인터뷰 중인 홍경일 변호사 ©크리스찬리뷰


일 주일에 두 번 체스우드역에 커피숍에서도 일했고 오페라하우스나 파워하우스 뮤지엄 기념품 가게에서 야간일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체스우드 커피숍에 오시는 호주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당신네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냐? 경력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무급으로 그 변호사 사무실에서 15주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시드니에서 버텨 나갔다. 그리고 미미한 경력이지만 그것으로 다른 로펌들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ASIC 로펌을 거쳐 제법 잘 알려진 Freehills 로펌에서도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현재 그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하야시 변호사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

 
“체스우드에서 무급으로 15주 동안 일하고 경력을 쌓으면서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ASIC 로펌에서 일을 했고 그리고 지금은 Herbert Freehills 로펌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Freehills라고 하는 큰 로펌에서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야시 유키오 변호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 H & H 로펌 공동대표 홍경일 변호사와 하야시 변호사 (왼쪽). 홍 변호사는 일본인 하야시 변호사를 만난 것을 인생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찬리뷰  


그분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호주에서 일본인으론 1호 변호사가 된 분입니다. 이분이 Freehills 로펌의 파트너였습니다. 제가 그분 밑에서 2005년부터 10년 정도 일을 하고 5년 전에 파트너가 되었는데 그때 로펌 이름이 Hayashi & Hong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발음하기 너무 어렵다고 해서 H & H 로 바꾸었습니다. 제가 그분과 함께 14년 정도 같이 일을 했는데 그분에게 많이 배웠죠.”
 
홍경일 변호사의 고백대로 한다면 그가 하야시 변호사를 만난 것은 인생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하야시 변호사와 처음 10년간 같이 일을 하면서 비즈니스 법률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보다 일본 기업들이 호주에 많이 진출해 있었는데 많은 일본 기업들이 하야시 로펌을 통해 법률적인 자문과 도움을 얻어온 것이다. 그리고 5년 전에 홍경일 변호사는 하야시 로펌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로펌을 확장해서 하야시와 같이 H & H의 공동대표가 된 것이다.
 
“변호사는 주니어 변호사로 시작해서 시니어 변호사가 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로펌의 파트너가 되는 것이 많은 변호사들의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하야시 변호사에게서 많이 배웠죠. 일본 기업들의 자문을 많이 하시니까 그분이 한 10년 동안 일본 기업들 자문하는 것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5년 전에 파트너가 된 이후 한국 기업들과 공관들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했습니다. 같이 힘을 합쳐서 아시아인이 하는 좋은 로펌을 만들어 보자. 지금은 중국 변호사들까지 초청하여 한·중·일 아시아 로펌을 만들자 이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 H & H 로펌 사무실     © 크리스찬리뷰


H & H 로펌은 홍경일 변호사가 하야시 유키오 변호사를 만남으로 탄생된 것이다. 홍 변호사가 그런 고백을 하진 않았지만 여기에는 운명을 넘어선 섭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워홀러들의 변호사

 

▲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틴플레이스 사무실로 출근하는 홍경일 변호사                  ©크리스찬리뷰

 

그는 시드니에 온 후 시티에서 일했기 때문에 시티에 있는 교회를 찾았다. 그 당시 청년들이 많이 다니던 교회가 형제사랑교회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 가보니 그 교회는 형제사랑교회가 아니라 시티 주안교회였다.
 
아무튼 그는 주안교회를 열심히 섬겼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가 좋아했던 운동은 워킹 홀리데이로 온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고 친해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그들을 픽업해서 피쉬 마켓 앞 공터에서 축구를 했다. 그러다가 차츰 청년들이 홍 변호사가 자기들과 같은 워킹 홀리데이 청년인 줄 알았는데 변호사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이 제가 변호사라는 것을 절대 믿지 않았거든요. 토요일에 축구 하러 나가면 제가 수염이 많은 편인데 면도도 안하고 호주 경기복 입고 나가서 같이 축구를 하니 제가 자기들과 같은 워킹 홀리데이 청년 인줄 알았대요.
 
심지어 한 청년은 저를 보고 워킹 홀리데이도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면 저 형처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주일에 양복을 입고 교회에 가서 통역도 하고 변호사인 것을 알고나서 하나 둘 자기들 비자 문제 때문에 저한테 물어 오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의 문제는 절박하다. 홍 변호사는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의 세컨 비자 획득 문제며, 시간당 받는 임금이나 밀린 임금 받는 문제, 같이 쉐어 살면서 발생하는 이슈 등 당시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의 실제 삶과 경제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법률 자문을 해주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해주기 시작하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기적으로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했다.

 

▲ 미팅룸에서     © 크리스찬리뷰


이 대목에서는 홍 변호사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그냥 그들과 축구를 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홍 변호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의 현실적인 문제에 공감을 했고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공감의식뿐만 아니라 따뜻함이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 : 교회와 가정생활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 변호사. ©홍경일    


더구나 그의 겸손한 고백은 기자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그가 무료법률 상담을 하면서 오히려 본인이 이민법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기 발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교회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하면서 오히려 역으로 많이 받았어요. 사실 제가 이민법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워킹 청년들이 물어오는 게 반수 이상이 이민에 대한 법률 자문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이민법에 대해 알아보고, 찾아보게 되고 공부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민법 전문가 되었더라고요.
 

▲ 홍 변호사 가족 사진. 아내 최연진과 태희, 준희, 재희 3남매 ©홍경일    


이것을 하면서 또 총영사관에서 하는 무료법률상담이 있거든요. 거기도 가서 도와주다 보니 그곳에 계신 분들이나 상담 받으신 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저를 추천해 주셔서 자연히 마케팅도 되고 따지고 보면 제가 오히려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첫 번째는 신명기 24장 17절에 있는 말씀이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잡지 말라”(신 24:17)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은 호주의 객들이다. 그들의 송사를 들어주고 그들의 절박한 상황들을 합법적으로 조언해 줌으로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위로를 받았겠는가? 그를 거쳐간 청년들은 줄잡아도 몇천 명이 넘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청년들을 도우면서도 그는 이러한 봉사가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 되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의 이런 겸손한 마음이 참 아름답다. 

 

▲ 재판 준비로 복잡한 서류들이 가득한 그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홍경일 변호사.     © 크리스찬리뷰


누가복음에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 6:38) 라는 말씀이 있다.  그는 자기가 한 것이 별로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작은 봉사를 어여삐 여겨 크게 주셨다고 믿는다. 
 
그는 무료법률상담 때문에 교회를 옮겨가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이 커가자 청년들이 주 구성원인 시티 주안교회에 계속 출석하는 것이 부담이 된 것이다.

 
이것은 제가 계속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옮겨야 하는데 교회의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이 눈에 밟힌 것이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교회는 옮기지만 매주 첫 번째 주일은 여전히 시티 주안교회에 출석해서 계속 무료법률상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의사들이 의료 선교를 나가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법조인이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시티주안교회에서 무료법률상담을 10년 넘게 해왔다. 이것 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문제가 너무 고민되었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약한자들을 향한 그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다가왔다.
 
그는 세상말로 하면 성공한 사람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제법 큰 로펌의 공동대표이다. 그러나 그가 교회 워킹 홀리데이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다 그들과 헤어져 교회를 옮기는 것이 마음이 아파 매달 첫 번째 주일은 가족을 놔두고 시티주안교회에 출석해 무료법률상담을 계속 이어 오고 있다.
 
매달 첫 번째 주일이 되면 그를 기다리는 많은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러 오늘도 홍 변호사는 드럼모인(Drummoyne) 집에서 시티(City)로 향하는 것이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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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7 [16:0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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