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분들께

김경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5/27 [16:31]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며칠 전 모친상을 당한 한 유명인사는 “어머니의 별세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머니는 병상에 계셨던 지난 2년 반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여러 차례 표현하셨습니다.”
 
한평생 장구했던 삶에 대하여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사셨다는 점도 놀랍지만, 2년 반 동안이나 되는 긴 시간을 병상에 누어 계시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이 더욱 놀랍기만 하다.
 
이루지 못한 꿈이나 현재 처한 형편에 대한 씁쓸함으로 어깨를 펴지 못하고 살고 있는 분들이 교회 안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이 시대적 배경 때문에 돌아가신 그분의 고백은 더더욱 놀랍게 마음속을 울리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놀라운 고백을 성경에서 찾게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눈앞에 두었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이쯤 되면 요즘 유행하는 ‘인생 모티베이션 강사’로 초대하여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에 대해 강연을 들어도 그럴싸했을 뻔하다.
 

물론 그런 자리가 실제로 마련되었더라도 바울 사도가 그런 초대를 수락할 리 만무하지만, 설상 수락했다 치더라도 그의 강연 내용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쩌면 청중이 당황해하거나 불쾌하게 느낄) 내용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분명한 차이점

   
바울이 싸운 선한 싸움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삶을 말한다 (디모데후서 1:1).  이 삶은 ‘주를 증언함과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이었다 (디모데후서 1:8). 바울은 자신의 삶이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삶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디모데후서 1:11) 결론적으로 말해서 바울이 싸운 선한 싸움은 ‘복음을 위하여  살았던 삶’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만의 특별한 ‘선한 싸움’이 있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선한 싸움’이라는 생각은 옳은 생각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흔한 실수는  그 선한 싸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을 진전시키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이란 이 세상에 대한 욕심에 근거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과감한 희생을 불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선한 싸움’으로 포장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이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져다 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분들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려면 바울이 겪었던 참 회개가 절대적이다. 예전에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삶의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이는 결코 바울의 최후 고백을 이해하지 못한다.
 
즉, 예수께서 나의 구주가 되셨으니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이름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경험하기 원하는 소원함이 없이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변화가 없이는 그 누구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없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