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召命)과 사명(使命)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삶과 죽음은 사명과 관계가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이제 사명을 마쳤다는 것이다. 모세는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소명을 받고, 요단강 동편에서 사명을 마치고 느보산에서 죽었다.
 
그의 나이 120세, 눈은 흐리지 않고 기력도 쇠하지 않았다.(신 34:7) 모세는 늙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명을 마쳤기에 하나님께 간 것이다. 마치 십자가상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신 예수님 같이.

 
소명과 사명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이다. 소명(召命)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을 써서 소명이다.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이다. 사명(使命)이란 '심부름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사명이다. 사명이란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이다. 소명과 사명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부르심은 은혜와 관계가 있고, 보내심은 은사와 관계가 있다. 은혜란 자격없는 자에게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고, 은사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신약 27권 중 바울은 13권을 썼다. 서신서의 첫 구절은 대부분 '소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부름 받은 바울은 열방을 위한 선교사로 보냄을 받았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은혜의 복음

 
사도바울은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중,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것이 '환영과 환대'가 아니라 '결박과 환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고 했다.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福音)이란 ‘좋은 소식’(The Good News)이다. 무엇이 ‘좋은 소식’인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식이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복음서에는 ‘예수’란 단어가 많이 나오고, 사도행전과 서신서에는 ‘그리스도’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예수의 부활을 기점으로 용어가 바뀐 것이다. 예수는 '겸손과 고난'의 인성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리스도는 '부활과 영광'의 신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삶과 죽음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인생은 살아야 될 이유와 죽어야 될 이유가 동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 앞에 섰을 때 비겁해 지고, 살았던 삶에 대해서 후회하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인생은 삶과 죽음의 협주곡이고,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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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7 [16:35]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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