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론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5/28 [11:39]

하나님 앞에서 울다


오래전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가 저술한 책 제목 중 ‘고통에는 뜻이 있다’ 라는 책이 있다. 아들 옥성호 씨에 의하면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젊은 날 자신이 무슨 고통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을 펴냈을까 자조 섞인 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상황들을 목도한다. 제랄드 싯처 또한 이런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경험한 후 본인의 생각과 실제 경험을 자신의 생각에 담아 쓴 고백서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울다’이다.
 
그는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2살 난 딸을 한꺼번에 잃게 됐다. 음주 운전자의 자동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그의 차를 덮치는 바람에 아무 이유없이 가족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독실한 신앙을 가진 자라도 이런 엄청난 시련 앞에서는 신앙을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사고를 낸 운전자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얻어내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 울다’는 그가 3년 동안 이런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 인간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억울한 감정 그리고 겨우 살아 남았지만 마음과 몸에 큰 상처를 입은 세 자녀, 이들을 홀로 키우며 어떻게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였는가에 대한 자서전이다. 이런 예기치 않은 절망과 극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H.G 푈만의 지적대로 디캄프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냉소적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창조된 세계에서 물리적 악은 세계의 질서 때문에 필연적이다. 어떤 것은 다른 것의 음식과 보존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마치 눈이 태양 앞에서 녹아내리듯이, 어떤 것은 다른 것에 의해 변형된다. 
  

만약 모든 물리적 악이 제거된다면, 세계 전체에는 많은 윤리적 선, 예컨대 인내와 실천, 자비로운 행위, 영웅적인 덕행, 하나님을 열렬히 찾도록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다른 여러 가지 행위들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쓰나미와 자연재해, 원치 않는 악

 
우리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원치 않는 고통은 크기가 크든 작든 우리에게 심각한 상처와 어려움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쉽사리 신앙의 회의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부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고난과 고통 때문에 신정론의 회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006년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를 바라보며, 또 수없이 일어나는 자연재해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들을 던진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신앙으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을 희미하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고전 13:12)이라면, 모든 신학은 어쩔 수 없이 파편적인 생각(broken thought)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세계 안에 있는 악의 실재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려고 할 때 우리는 신학의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별히 역사적으로 구현된 거대한 악의 실재들을 직면하고 나서(1차 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아우슈비츠대학살 등 파괴적인 전쟁을 경험하고) 인류는 절망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람들은 질병, 사고 지진, 화재, 홍수 등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적 돌봄과 선하심에 대하여 회의를 가져왔다.
 

신정론(神正論: Theodicy)

 
신정론이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악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개념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은 전능하고(Almighty), 선(Goodness)하신 존재이다. 그리고 이런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악과의 관계의 도식에서 딜레마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런데도 악은 존재한다”, 이 세 가지 명제는 한꺼번에 존재할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신다면 이 세상에 악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하나님이 악을 제거하기를 원하더라도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선하시지만 전능하시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은 악을 제어할 능력은 있더라도 그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선하시지는 않게 된다. 어떻게 하더라도 악이 존재하는 한 하나님은 선하시지 않거나 전능하시지 않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즉,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명제는 삼중 딜레마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정통 신앙을 강조하면 하나님은 분명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다. 이에 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분명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신앙을 회의에 빠뜨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신정론에 대한 바른 접근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어떻게 세상에 악이 존재할까?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의 두 명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신학자들뿐 아니라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창조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선행되어야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한 세상의 구조와는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세상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변질되고 왜곡된 구조로 바뀌었다. 모든 세계는 창조질서로부터 변형되었고 일그러져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것들은 창조주의 구속과 회복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이 땅에는 끊임없이 천재지변과 불행, 불의와 죽음, 고통과 슬픔, 장애와 눈물들이 존재하는 곳이 된 것이다.〠 (계속>


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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