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보다 빛나는 죽음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5/28 [11:40]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스더 4:16)
 

생활고에 지친 분별없는 어른이 어린 자녀와 동반 자살-타살했다는 고국의 여러 사건을 5월에 접했습니다.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현충일이 있는 6월을 맞으면서, 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내몰린 코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죽음과 확연히 비교되는 ‘죽음의 무게’를 느낍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지만, 그리스도인이 영웅심에 들뜨거나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고자 하면 무모하거나 허세를 쫓는 아둔한 자입니다. 사는 길이 있는데, 굳이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의(義)와 인애(仁愛)를 위해서는 수치를 부끄러워하지도, 고난을 피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명예롭게 죽은 자’가 되지 못하고 ‘부끄럽게 산 자’가 되어 겁쟁이, 배신자, 매국노의 멍에를 쓰고 삶을 연명한들 무엇하겠습니까?
 
크리스찬은 믿음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삶과 죽음의 실체를 깊고 폭넓게 경험합니다. 사는 목적뿐 아니고 죽는 이유도 완벽하게 부활 신앙과 영생에 귀속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 양심을 따라 죽어야 할 때가 지금이라고 여기는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구하고,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리고 영생의 기쁨에 동참합니다.
 
예수님을 존귀케 하고, 복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크리스천은 수치, 고난 죽음을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기회요,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세상은 죽어야 할 때 죽고자 하는 자,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삶보다 아름답고 의미 있게 빛나는 죽음을 발견합니다. 멸망의 위기에 처한 민족을 위해 에스더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고, 인류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던졌고, 생명의 복음을 위해 바울은 자신의 목숨조차 귀히 여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도심에서 온갖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안전하게 생활하는 우리가 영웅적인 믿음의 전사가 될 필요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산제물로 삼아 삶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현대적 의미의 순교를, 순례자의 영적 여행, 어느 한 시점에 포함시켜 진지하게 실천할 필요는 그 어느 때보다 큽니다.
  
2세기 평신도 신학자 터툴리안(Tertullian)의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는 말을 알고 인용도 하는 바로 저와 같은 사람들이 먼저 예수로 밥 벌어먹지(대접받지) 말고, 예수로 밥 먹여주는(대접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복음 8:35)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현실이 항상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가 허무하게 죽고, 부끄럽게 살고자 하는 자가 승승장구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경우는 아니더라도, 특수한 상황에는 완벽하게 딱 맞아떨어지고, 부활과 영생으로 빈틈없이 성취되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나 자기 목숨 귀한 줄 알고, 더 잘 살기 위해 사는 세상에서, 단지 살아야 하니 살거나, 죽지 못해 살면서 그 자체로 죽음보다 못한 삶을 경험하거나, 살고자 하나 살 수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무게를 지닌 삶과 죽음도 있고, 때로는 삶보다 빛나는 죽음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등경 위에 둔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와 성공, 건강과 장수를 축복의 전부인 듯 찬양하는 세상에서, 혹 크리스천조차 무병장수, 무사안일의 길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타인의 청부는 칭송하면서 오늘 나의 청빈 실천사항은 무한정 유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해하고 영달과 영광을 구해 영합하지 맙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각오로 사는 자는, 가장 귀한 목숨을 이미 내놓았으니, 더 잃을 것이 없고,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니, 어찌 기쁘지 않는가?〠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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