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동그라미
 
이태형/크리스찬리뷰

 

탕자의 동그라미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누가복음 15장 11~32절의 ‘탕자의 비유’에서 집 떠났다 돌아온 둘째 아들의 ‘그 후 이야기’가 궁금했다.
 
둘째 아들은 평생 탕자(蕩子)라는 멍에를 쓰고 살았을 것이다. 큰형의 비난과 박대,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 속에서 눈칫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는 실패자였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크나큰 불효를 저질렀다.
 
먼 나라로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고 돼지가 먹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정도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극적으로 성공해 돌아왔다면 모를까 결국 빈털터리가 돼 초라하게 귀향했다.
 
그러나 집을 떠나기 전과 떠난 후, 그리고 다시 돌아온 둘째 아들은 외모는 같을지라도 내면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비록 그릇된 동기였으나 집을 떠나 온갖 풍상을 겪은 그의 내면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을 것이다.
 
그는 집으로 상징되는 ‘작은 동그라미’를 떠남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었다. 수치스럽고 쓰라렸던 먼 나라에서의 경험은 그의 내면을 더 넓고 더 깊게 해 줬다.
 
실패자로 홈커밍(Homecoming)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터나 극적인 귀향을 통해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했다. 그는 그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 빚진 자의 심정으로 아버지가 주신 그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잘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영원한 본향으로의 홈커밍, 최종적 귀향을 소망했을 것 같다.
 
추락과 실패, 귀향을 통해 그의 동그라미는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이제 떠나온 집에서 다시 살더라도 그의 가슴속에는 더 먼 나라의 이야기, 더 낮은 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그득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더욱더 풍성하게 해줬고 마음의 용량을 더 넓혀줬을 것이다.
 

동생이 ‘더 큰 동그라미’의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해, 형은 결국 자신만의 ‘작은 동그라미’에 매몰돼 평생 “이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며 일상과 일생에 매여 살다 이 땅을 떠났을 것이다.

 
우리의 동그라미

 
한국 정치와 사회 문화 그리고 교회를 돌아볼 때, 우리가 그리는 동그라미가 너무나 좁고 작다. 마치 큰아들의 동그라미처럼 각자가 그 자그마한 동그라미에 얽매여 평생을 살아간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사람들은 사건을 해석하고 논리를 세우며 주장을 펼친다. 그러니 해석이 다른 동그라미 속에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포용과 존중은 사라지고 오직 배제만 있을 뿐이다. 자신들만의 동그라미에서 그저 ‘뜻이 맞는 유익한 사람들’과만 소통한다. 한국 정치계는 물론 남과 북, 남과 여, 사회와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가 작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세월 한국교회가 그린 동그라미는 더 커졌는가, 오히려 더 작아졌는가.
 
2019년에는 모든 사람이 큰아들의 좁은 동그라미를 탈피해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셨다. 그분은 과감하게 ‘영문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니 우리도 좁디좁은 우리의 진영을 박차고 더 넓고, 더 깊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그리는 동그라미가 예수님의 동그라미처럼 한없이 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동그라미 안에 큰아들과 작은아들,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람들 모두 들어와 믿음의 주이시며,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가 되기를 소망한다. 부디 한국교회의 더 큰 동그라미 안에 생명수가 콸콸 흐르기를….〠


이태형|현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고려대 사학과 및 미국 풀러신학대학원(MDiv) 졸업, 국민일보 도쿄특파원,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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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5 [16:3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