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 편이냐?
 
김환기/크리스찬리뷰

2019년 4월 14일, 구세군 라이드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그 후 만나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다고 한다. 장롱 안에 있는 23년 전의 군복을 꺼내서 입어 보았다. 아주 잘 맞는 것이다. 23년 전의 영성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여호수아서와 타나크
 
구약은 39권이다. 모세 5경, 여호수아부터 에스더 12권의 역사서, 욥기부터 아가서 5권의 시가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17권의 예언서가 있다.
 
히브리 성경은 같은 내용이지만 책의 권수는 24권으로 되어 있고, 순서의 배열도 다르다. 히브리 성경은 율법서(Torah), 예언서(Neviim), 성문서(Ketuvim)로 나누고, 첫 글자에 따서 'TanaK'라고 부른다.
 
여호수아는 우리 성경에는 역사서의 첫 번째 책이지만  '타나크'에서는 예언서의 첫 번째 책이다. 신학적으로 여호수아는 모세 6경이라고 한다. 모세 5경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책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장 1절에는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죽고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라고 했다. 24장 29절에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가 110살에 죽는다.
 
모세의 인정을 받아 '모세의 시종'으로 사역을 시작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종'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여리고성 함락 작전 
 
여호수아서의 하이라이트는 6장의 여리고 성 함락작전이다. 1장은 요단강 건너기 전의 준비, 2장은 2명의 정탐군을 보내서 라합이란 도움을 받아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다. 3장은 법궤를 앞세워 요단강을 건너고, 4장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고, 5장은 전투를 앞두고 유월절과 할례를 한다. 6장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다. 전쟁사에 이렇게 황당한 전략은 없었을 것이다.
 
침묵하며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다가 마지막 7일째 법궤를 앞세워 양각나팔을 불며 큰 소리를 외칠 때 7번을 돌자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때 이들이 무슨 소리를 질렀을까?
 
오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의 교통수단이 말뿐이 없었다. 선교사는 말을 훈련시킬 때  '할렐루야' 하면 달리고 '아멘'하면 서게 하였다. 어느 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가 낭떠러지가 나왔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멘'이란 단어를 잊어 버렸다.
 
“서라, Stop. 정지”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선교사는 포기하고 "제 영혼을 주께 맡깁니다. '아멘'" 했더니, 갑자기 절벽 끝자락에서 말이 서는 것이다. 선교사는 너무 기뻐서 '할렐루야'했다.  
 
너는 누구 편이냐?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여리고 가까이 왔을 때에 칼은 든 사람이 여리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너는 적의 편이냐? 우리 편이냐?고 물었다. 그는 "적의 편도 아니고 너희 편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왔다"고 했다. 이에 놀란 여호수아는 그에게 절하며 "주의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합니까?"라고 묻는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다"라고 말하자,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했다.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의 장면이 연상된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세상의 신을 벗어야 한다. 교만의 신, 자존심의 신, 위선의 신, 거짓의 신 등을 벗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 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없다. 내가 엎드리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변화되기 때문이다. 시드니응답기도원에 가면 이런 말이 쓰여 있다. “기도원에 오신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요 응답입니다.”
 
남북전쟁 때 부관이 링컨에게 말했다.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면 좋겠습니다." 링컨은 대답했다. "아닐세, 나는 우리가 하나님 편이기를 원하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19/06/25 [16:3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포토 포토 포토
교회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