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심을 가장한 이기심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6/26 [11:27]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시편 119:36)


호주의 5월 선거 후에 저를 찾은 어떤 형제가 질문했습니다.  “요즘은 집 한 채 없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변 대다수 사람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데, 노동당이 집권하면 집값이 하락하리라는 전망 때문에, 예상과 달리 자유당에 유리하게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한기총의 요즘 정치적인 개입이나 발언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들의 주장이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기독교 정신과 어긋나지 않나요?”
 
저는 “집값은 싼 것이 좋고, 한기총은 부끄러울 따름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체 개신교 10% 미만의 교세에 불과한 단체의 막말 대표가 마치 개신교 전체를 대변하는 듯 설치니,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하락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의 지난 대선에 보수 기독교가 크게 일조한 일도 자랑스럽지 않은 이 시대 기독교의 민낯입니다. 제자와 종으로 스승이요 주(主)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한결같이 따르는 일과 사회적 현상으로써 종교가 된 기독교를 믿는 이의 선택 사이에는 갈등과 괴리가 여전합니다.
  
몇 년 전 집값이 많이 오를 때, 어느 당회에서 저는 장로님들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집값 오른다고 집 있는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데, 교회는 교회의 입장이 있습니다. 제가 집 있는 장로님들의 입장과 다른 이야기를 하더라도 섭섭히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도 여전히 집이 없는 사람이 많고, 집값은커녕 방값도 내기 힘든 사람도 있으니, 집값이 오르면 렌트비도 동반 상승하니, 의식주의 하나인 방값, 집값은 일단 싸야 합니다. 집은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보금자리가 걱정거리가 되면 곤란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민의를 표현하고 반영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한 표를 행사하는 투표는 민주시민의 권리이며 의무일 뿐 아니고 특권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크리스찬들이 자기에게 유익되는 이기적 투표를 극복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몫이 더 돌아갈 수 있게끔 이타적 투표를 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물론 선거는 많은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모두 특정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크리스찬이라면 ‘선(善)의 범위와 차원’에 관해, 공시적 통시적 고찰을 거쳐, 나, 또 다른 나인 가족, 그리고 내가 직접 소속하고 관여하는 그룹만을 위한 속 좁은 선을 추구하지 말고, 하늘 뜻이 지상에 펼쳐지기를 사모하는 통전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태생적으로 DNA에 새겨진 가족애나 학습된 애국심도 능히 극복하고 보편적 인류를 위한 우주적인 선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차원을 승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드러내 놓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이타심을 가장한 채 이기심을 숨기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표면적으로 자신만을 위해서는 살지 않아 보이니,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혈연, 지연, 학연 등 다방면으로 구축한 개인적 사회 안전망(?) 속에서, 나, 가족, 지인을 위해 인맥,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면의 마그마는 이기심으로 들끓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데, 외면은 휴화산처럼 쿨 하게 충분히 진정되어 멋져 보이는 사람, 혹 이타심을 가장한 이기심으로 무장하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닌가요?
 
하늘의 가치를 받아들여 높이 받드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줄기차게 지향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주 바보 같은 사람이며, 바보인 줄 알면서도 바보의 길을 가는 사람이니 정말 바보지만, 그래서 하늘 아버지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종교에 중독되어 깊은 잠에 빠진 크리스찬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행복을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제자라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평등을 부정하고, 특권을 누리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하는 진리로 깨어 있는 존재, 참 자유자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탐욕을 향하지 말고, 공적 정의와 공공의 유익을 앞세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