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내 한인 공동체(끝)
정착, 경제적 적응, 그리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진흥
 
한길수/크리스찬리뷰

대학교 입학시험의 일환으로 한국어를 선정한 것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드니 지역에서는 4개의 다른 학교에서 학습이 이루어진다.
 
Chatswood High School(12개 수업), Rand- wick North High (2개 수업), Dulwich High (5개 수업), & Grantham High (4개 수업) (김인기, 2008b: 242-3). NSW의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한국어 교육을 포함시킨 이후, 많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역시 한국어를 교육 과정 일환으로 채택하였다.
 
2013년 12월에는 14개의 초등학교와 15개의 고등학교가 한국어를 가르쳤다. 몇몇의 학생들은 대학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기도 하였다.
 
호주 정부는 한국어를 중국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와 함께 5대 아시아 언어 중 하나로 지명했다. 시드니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있었다.
 
첫 번째로 한인 학교 협의회는 위에서 언급한 ‘한인 학교’의 연합회이다. 이 연합회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드니 내 한국어 교육 센터와 긴밀히 협력하는데 한국 정부로부터 학교의 연구 교과서와 적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두 번째로, 시드니 한국 영사관과 교육 센터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진흥하는데 중요한 지원을 제공하였는데, 한국계가 아닌 한국어 교사들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교육 센터는 또한 60여 명의 한국어 교사들과 함께 ‘Go Korea! 워크샵’을 일 년에 네 번씩 주최하기도 하였다(김인기, 2008b: 246-247).
 
문학, 시, 동양화, 그리고 봉산 탈춤과 같은 한국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1985년부터 민속 무용 학원을 운영해 온 송민선 선생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이주민 축제와 에스닉 소수자 축제에 정기적으로 초대받아왔다. 그리고 시드니에서 50개의 춤 공연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7년 동안 그녀와 함께 지낸 학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대부분은 3년에서 4년 동안 춤을 배우고 그만둔다고 아쉬워했다(송홍자, 2008a: 261). 한국 문화 진흥을 위한 다른 활동으로는 Maek(한국 연극 기업), 음악 밴드 그리고 필하모닉 합창단이 있다. 
 


호주한인문화재단은 한국 스포츠, 문화를 홍보하고 지원하고자 하는 풀뿌리 조직이며 한국 문화와 전통에 대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승하고자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송홍자, 2008b: 566). 한국문화원은 전 세계에 한국 문화와 언어를 홍보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계획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사무실은 시드니에 있다.

 
7. 시드니 내 한국 에스닉 동호회 및 조직

 
시드니에는 한인들에게 개인적, 문화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하는 수많은 사회 및 공동체 조직이 있다. 우리는 많은 한인 동호회와 협회들이 한국 정부와 한국에 있는 다른 조직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또한 한국 에스닉 정체성을 계승하는데 깊이 연관되어 있다.

 
1) 호주한인복지협회
 
이 협회는 1979년에 한인 호주 이민자로서의 삶이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것이 되기 위해 한인 이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호주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동료 한인들이 새로운 삶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어서 영어 능력의 부족함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려움과 불리한 점을 경험하는 것을 몇몇의 한인 이주민이 목격하게 된 것은 1976년이었다. 이 협회는 동료 한인들의 그러한 부정적 경험들을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1980년에 New South Wales 정부에 자선단체로 공식 등록한 이후로 협회는 1983년부터 한정된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정부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고, 이 덕분에 당시에는 몇몇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2008년 이후로 협회는 Campsie, Eastwood, 그리고 Parramatta 교외 지역에 사무실을 열고 시드니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필요를 충족하였다(조양훈, 2008c: 445).
 
협회 설립 초창기에 제공하는 일반 서비스는 새로이 이주해온 이들이 정부의 복지 지원과 여러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고, 그들이 새로운 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관련 지방 공무원들과 그들을 연결해주는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노년 부부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다른 경우에는 한인들의 초기 정착을 위해 서류를 적절히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기타 지원 분야로는 아파트 임대와 관련된 문제, 가정 폭력, 임금 체불, 노동 착취, 불공정 해고, 바람직한 지역 사회에의 정착, 아이들에게 알맞는 학교 찾기 등이 있었다. 가정 폭력 혹은 이혼과 같은 구체적인 분야의 경우 전문적 지원과 상담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협회 초창기에는 제공될 수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 그러한 전문 서비스와 상담이 여성의 공간, 그리고 정신 심리 상담소라는 개별적인 조직을 통해 제공이 가능해졌고 협회와 협력하기 시작했다(조양훈, 2008c: 446).
 
새로이 이주해온 이들의 지속적인 정착으로 인해, 그들의 초기 정착 과정과 경제적 필요는 협회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중요한 일부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인 공동체 사회의 긴 역사로 인해 결혼 안에서의 갈등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우려와 같이 재정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인간 관계에 대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적절한 전문가의 지원과 자원이 부재한 협회는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인 공동체 안팎의 조직들과 협력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조양훈, 2008c: 446). 2007년에, 협회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세 명의 사회복지사들을 Campsie, Eastwood, Parramatta, Strathfield, 그리고 Chatswood, 이 다섯 교외 지역에 배치하였다.
 
또한 노년층 고객들을 위한 세 명의 직원과 협회의 일을 지원하는 여섯 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하였다(조양훈, 2008c: 447).

 
2) 월남전참전자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들의 호주 진출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동포사회에 대한 그들의 초기 공헌은 특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힘겨운 전장에서 이미 긴밀한 우정을 형성하였고 이들의 ‘상부상조’의 정신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삶의 원천이 되었다.
 
이 협회는 구성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야외 파티를 주최하였고 한국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으로 한국 정부에 기부금을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드니 한국 영사관과 한국 보건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사면을 통해 영주권을 얻은 구성원들의 이민을 용이하게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 협회는 1989년에 정식으로 설립되었으며 설립 20주년을 캠시 오리온센타(Orion Centre, Campsie)에서 동료 한인 300명과 기념하면서 한인 공동체 내에서 이 협회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협회의 멤버들은 한인 공동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특히 호주에서 한인 이주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왔다(조양훈, 2008c: 458-9).

 
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이 자문기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제5공화국 기간에 한국 안팎에 있는 한인들의 통일에 대한 견해를 청취하기 위해 1980년 10월에 설립되었으며 한국 내 7,000여 명의 사람들과 해외에 있는 10,000명의 한국인들로 구성되었다. 자문회의를 설립할 당시에, 통일부는 자문회의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었고 호주에 있는 한국 대사가 두 번째 책임 담당자였다.
 
자문회의는 한국 대통령과 통일부를 직접적으로 자문하였다. 자문회의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 중 하나는 한국 정권에 해외/국제 지원과 관련된 정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자문회의는 또한 해외에 있는 한인들에게 한인 에스닉 정체성을 보존하도록 장려하기도 하였다(조양훈, 2008c: 459).
 
4) 세계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Korean Women’s International Networks)
 
지속적인 사회경제적 그리고 문화의 발전 덕분에 한국 정부는 여성의 권리와 기회를 신장하기 위해서 여성 가족부를 1988년 2월 28일에 설립하였다. 첫 번째 장관 한명숙은 세계 곳곳에 있는 한국 여성의 능력을 기르고 발전시키기 위해 KOWIN을 설립하였다.
 
KOWIN은 또한 해외에 있는 한국인 여성들이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유지하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한국 여성의 리더십을 기르고, 이를 통해 한국이 국제 공동체에서 높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한국 정부는 매년 회담을 주최하였는데, 해외에 있는 한국 여성 100명과 한국에 있는 여성 250명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하였다. 2004년 1월에 KOWIN 호주 지부가 만들어졌고 80명의 등록된 구성원이 있다(조양훈, 2008c: 467).

 
5) 경제적 및 전문직 협회
 
다음은 경제적 및 전문직 협회의 범주에 해당하는 동호회와 조직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는 1982년에 설립되었다. 이는 호주 내 한인 공동체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어 중요한 효율적인 경제적 활동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비즈니스 정보들을 교환하는 한인 사업가들의 모임이다. 
 
‘World-OKTA (Overseas Korean Traders Association) Sydney’는 한인 경제 네트워크 중 가장 큰 네트워크인데, 이는 세계 곳곳에 있는 해외 한인 무역인의 조화, 성공, 그리고 통합을 가능케 한 해외 한인 무역인들을 지원한다. World-OKTA는 한국 산업 통상 자원부의 지원 하에 1994년에 설립되었다. 2007년 이래로 51개국에 97개 협회 지부와 6000명의 회원들이 존재한다(김익균, 2008a: 470-3). 다른 비즈니스 및 경제 협회로는 “재호한인실업인연합회”와 “한호 경제인 연합회”가 있다.
 
 ‘호주한인과학기술협회’는 1993년 10월에 한인 과학자와 기술자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이다. 이 조직의 목표는 호주와 한국 간의 과학적 교환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협회는 젊은이들을 위한 과학 경진을 주최하여 호주 대학생들로 하여금 한국 기업과 연구 기관을 방문하도록 지원하였다. 2003년에는 협회가 국제적 IT 회담을 주최하였는데 150명의 대표단이 참석하였고 10주년 기념을 축하하였다. 교민사회의 한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이 회의에는 14개국에서 온 대표단이 참석했으며 북한에서 온 과학자 4명도 처음으로 호주로 초청했다.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The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에서 온 대표단과의 교류는 기억할만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북한 대표자였던 리원시(Rhee Won-Si)는 한국의 민족적 정체성을 계승하는데 기여한 호주 한인 이민자들의 역할을 인정하였다(호주일보, 21 Nov 2003; 김익균, 2008: 482에서 재인용).
 
‘한인간호인협회’는 1988년에 119명의 회원들과 함께 설립되었으며 정보 공유를 통해 전문적 지식을 탐구하는 데에 구성원들을 지원하고자 하였다. 구성원들 간의 유대감을 증진시킴과 더불어, 협회는 한인 공동체 안팎의 공공 보건을 증진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한호한의학협회’(KAOMA: Korean Australian Oriental Medicine Association)는 대학 교육 수료 후 자격증이 있는 젊은 의료 전문가들이 모인 협회이며 2004년 1월에 설립되었다. 구성원들은 질병 치료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의학적 경험을 넓히고 월간 모임을 통해 한의학에 대한 고전 저서들을 공부한다. 협회는 동료 한인들의 건강에 기여하고 호주에서 한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다(김익균, 2008a: 485).
 
다른 전문직 조직들로는 ‘한인상담협회’(2006년 10월 설립), ‘한인호주변호사협회’(2003년 10월 설립), ‘한인 호주정보통신협회’(1997년 10월 설립), ‘한인인큐베이터신용조합’(1993년 11월 설립), ‘호주한인건설협회’(1999 10월 설립), ‘한인건설기술자협회’(1999년 10월 설립), ‘한인택시운전사협회’(1983년 11월 설립) 등이 있다 (김익균, 2008a: 486-94).
 
한국에서는 건장한 젊은 남성이 일정 기간 동안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의무이다. 육군, 해군, 공군에서 다양한 역할로 복무하는 것은 한국 국경을 넘어서도 지속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네트워크에는 ‘재호재향군인협회’, ‘해병대전우회’, ‘625참전유공자회’, ‘월남전참전자협회’, ‘한호 해군재향군인협회’, ‘한인기독교육군장교협회’, ‘예비역장교훈련단(ROTC) 협회’(조학수, 2008b: 495-507)가 있다.
 
여러 스포츠 관련 협회도 존재한다. 예컨대 ‘호주 내 한인올림픽위원회’, ‘한호태권도협회’, ‘재호주대한축구협회’, ‘한인배구협회’, ‘한인골프협회’, ‘한인시니어 골프협회’, ‘한인복싱협회’, ‘한인수영협회’, ‘한인테니스협회’ 등이 있다(조학수, 2008a: 508-28).
 
복지 단체들은 한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드니민족문화원’은 1987년에 설립되었으며, 한국 문화의 홍보 및 계승과 동료 한인 이민자들의 권리를 신장하고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5세대가 센터의 활동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았으며 한국 전통 학교, 탈춤 클럽, 무료 영어 학교를 운영하였다.
 
센터는 한인들에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국민족자료실’과 같은 도서관을 세우고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주최하였다. 자료실은 영주권을 얻으려고 하는 미등록 한인 이주자들을 도와주었고 노동자 권리의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세미나를 주최하였다. 인권과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전망 역시 자료실의 관심 주제이다(강기호, 2008: 530).


‘소수민족선교원’은 방문자와 학생에게 단기적으로 숙소를 제공하는 ‘등대의 집’에서 설립되었다. 선교원은 양명득 목사의 지도하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영향력 있는 운동을 주도했고 이는 호주 매체를 통해 보고되었다. ‘여성의 공간’은 1993년 7월에 여성들이 서로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다른 복지 단체들로는 ‘한인 돌봄 및 공유’(Korean Caring and Sharing), ‘중국호주서비스사회’(Chinese Australian Service Society) ‘한인여성복지회’,‘재호장애우모임’, ‘Life Line’, ‘여성문화센터’(City Women’s  Cultural Centre), ‘Spring Institute of Cancer Aid’ 등이 있다(강기호, 2008).
 
다른 협회들로는 문화, 예술, 학술 등에 관심을 가진 고령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또한 한인들은 학교 동창회, 향우회 등을 만들기도 하였다(호주 한인 50년사 편찬 위원회, 2008).
 
많은 협회 중에서도 교회는 시드니에 사는 한인 이주민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행사했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주요 종교였으나, 불교는 호주 한인 공동체에서 영향력이 그리 크지는 않다.
 

시드니 지역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들과 잡지들을 분석해보면 한인 불교 사원은 한인 활동의 중심지가 아니며 스님 역시 사회 지도자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8. 종교, 한인 이민자 그리고 호주 공동체로의 통합

 
호주에 처음 세워진 사원은 홍법사로 1986년에 설립되었고 시드니 지역에는 현재 4개의 절이 존재한다. 반면 첫 한인 교회는 1974년에 설립되었고 그 이후로 그 숫자가 증가하여 오늘날에는 약 300여 개에 달한다. 불교가 호주에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편이고 한국에서 불교는 승려들에 의해 제도적 확장을 크게 보이지 못한 반면 한국에서 개신교는 많은 수의 신학대학 졸업생들에 의해 빠르게 성장했다(Han, 1994: 104-5).
 
소수 이민자의 주변인적 지위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시드니 내의 한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인교회는 한인 이민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어려움, 영어 능력의 부족함, 사회에서 승인 받고자 하는 노력 등을 보상해주거나 해결하는 사회적 기관의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많은 수의 신학대학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그들 중 대부분이 호주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종교적 그리고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에 대해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Han, 1994, 2004).
 
크리스찬리뷰(August 2014)는 시드니에서 발간되는 월간지인데 시드니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있는 170개의 교회 목록을 기록하고 있다. 각 교회는 2명 이상의 신학대 졸업생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수 백여 명의 교인들이 있다. 교회는 호주에 있는 한인들의 에스닉 활동들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어왔는데, 한인들은 자신의 에스닉 정체성을 유지하고 한국식 생활방식을 편안하게 지속하도록 독려받고 있다.
 
교회 내에서의 조직 활동과 운영, 그리고 의사 결정권은 대개 이민자 1세대 남성 회원들에 의해 관리된다. 1.5 혹은 2세대 혹은 여성 회원들은 소외되는 경향이 있으며 한인 교회 내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제한적이다.
 
한국교회들이 진정으로 그들 자신의 종파 내에 있는 ‘비한인교회’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여부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이다. 한인 교회는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조직 구조, 즉 일반적인 지도자의 선발, 그들의 교회에 대한 재정적 기여, 교회 조직체의 운영을 위해 참여하고자 하는 평신도들의 높은 열망과 관계되어 있다(Han, 2004: 119).
 
교회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한인들은 다른 한인들과 긴밀하게 교류하고, 그들의 에스닉 문화를 실천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한국 문화를 계승하도록 장려한다.
 
한인에게서 나타나는 분절 동화(segmented assimilation), 예컨대 후손들로 하여금 한국인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라던가에 대해 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Portes, 1993). 그러나 여성이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교회 생활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제한하는 것은 조직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문제이다.
 
한국 이민자들이 더 넓은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 있도록, 더 넓고 세계적인 문화에 통합될 수 있는 충분한 수단이 있다면 민족 정체성의 유지는 바람직하다. 만약 한인의 민족 정체성의 보존이 세계화의 보편주의에 반하는 방향에서 추구된다면 이는 재고되어야 한다. 지금껏, 유럽계-호주 교회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한인 교회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움직임을 관찰하지 못하였다.
 
또 하나의 의도하지 않은 교회의 암시적인 역할은 다른 종족 간의 결혼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인과 결혼하는 것의 편안함과 미덕은 교회 소속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가치 있게 여기고 강화되었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한국 순혈통주의는 한인교회와 같은 디아스포라적 한인 종족 조직들 내에서 쉽게 또 무비판적으로 고취되는데 이는 모국과의 연계에 대한 의지 표명이기도 하다. 교회가 종족 간 결혼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1세대 남성 지도자들이 한국적 가치를 장려하고 한국적 종족성이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공간으로써 교회는 한인들 사이의 전통적인 결혼 관행을 옹호한다.
 
어떤 한인들은 자신들이 대학 시절이나 전문직 관계를 통해 구축한 관계를 통해서 종족 간에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 모두가 한인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으며 다른 이들은 한인 정서와 잘 맞지 않는 ‘혼혈’에 대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국제결혼이 장려되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cf. Kim, 2000a), 문화, 언어의 차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와, 더욱 중요한 것은 더 넓은 사회 안으로 통합되고 호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여하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
 
유교 문화 가치는 한인의 정신에 깊게 배태되어 있으며 한인 교회에서도 실천된다. 교육 열풍, 특히 고등 교육에 대한 열의는 해외 한인 공동체에서 만연한 일이다. 서울의 명망 있는 대학의 졸업생들은 취업의 기회에 있어서 남보다 유리한 출발을 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 문화가 사회 역사적으로 강하게 뿌리 박혀 있기에 한인은 힘과 권위라는 관점에서 매우 구조화되어 있는 위계질서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 공동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의 한인 이민자만이 화이트칼라 직업군에 종사한다(Han, 2004: 120).
 

이러한 경향이 소통지향적인 한인 공동체를 구축하는데 긍정적은 요소인 것은 아니며, 또한 한인들이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 혹은 다른 호주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 잠재적인 장애물이 될 수가 있다.
 

점차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열풍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필자는 교육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은 사회적 능력과 여타의 개인적 발전의 측면들과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바이다.
 

필자는 한인 이민자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모국의 문화를 재생산함으로써 개인적 특성이 양육되도록 충분히 조력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써 한인 이민자가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호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성은 충분히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를 필요 이상으로 자주 방문했으며,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 오명을 남기고 많은 학교에서 한인과 다른 학생들 사이에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는 뇌물을 통해 교사들에게 청탁을 하기도 하였다. 사실, 한인 교회의 신도들이 어떻게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문화적 관습을 초월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인들이 어떻게 유능한 일원이 될 수 있는지는 호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설날, 광복절, 추석, 제헌절, 개천절, 현충일과 같은 한국 축제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며 교회 신자뿐만 아니라 교회 신자가 아닌 한인들도 이와 같은 행사에 참석한다. 그와 같은 행사에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일반적이며 이는 눈물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몇몇 구성원들은 한복을 입고 떡, 잡채, 불고기와 같은 한국 음식을 나눠먹기도 한다(Han, 2004: 121).
 
한인 이민자가 한국 민족성을 유지하고자하는 노력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타당한 많은 이유들이 있으며 필자는 그 이유들에 대하여 동조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한인 이민자들은 정착 사회에서 사회적 혹은 구조적 배제에 직면한다.
 
많은 연구들은 비영어권 국가 이민자들의 삶의 기회를 제약하는 여러 가지 장벽들에 관하여 설명한 바 있다.(Han, 1999b; 1999a; 2000c; 2000a; 2000b; 2002; Min, 1996a; Light and Rosenstein, 1996).
 
예컨대, 호주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의사와 치과 의사는 변호사처럼 전문적인 네트워크에의 가입이나 멤버쉽 유지 등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며, 높은 수입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법조계보다는 치과 또는 의료계 종사자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지 한인이 전문직 활동에 있어 네트워크를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한인 이민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잠재적 장벽에 관한 것이다(Han, 2004: 121).
 
한인교회들은 한인 공동체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직인데 이는 높은 비율의 한인들이 교회 서비스에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인 교회들은 어떻게 한인 이민자들이 사회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호주 공동체에 유능한 일원이 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체이다. 목표는 평판 좋은 호주의 다문화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종족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좀 더 포용적인 사회로 발전하며, 뿐만 아니라 한인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와 신념에 대한 관용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포용해야 하는 다른 가치들로는 관용, 평등, 정의, 공정,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Han. 2004: 121). 필자는 한인 공동체가 이러한 제안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호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더 넓은 지역 사회에 ‘손을 뻗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몰두하면서 내부적인 일에 초점을 둔다.
 
한인교회들이 물질만능주의에 몰두한 모국의 교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보인다(Han, Han, and Kim, 2009). 교회들 자신의 ‘잔이 넘쳐흐르기’ 전까지 그들은 더 넓은 공동체에 제공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9. 결론

 
특정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한인 이민자들은, 특정한 자원, 노동, 기술 또는 투자가치를 지닌 이주 인구를 찾는 호주에 정착했다. 사면, 기술/독립 그리고 비즈니스 이주민은 그들이 지니고 온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호주에서의 삶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정착하였다. 그들의 지리적 정착은 다양한 집단의 사회적인 필요와 경제적 관여에 의해 결정되었다. 한인 이주민이 시드니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착 패턴은 여전히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시드니의 한인 이민자들은 다음 세대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적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을 잘 구축하고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은 그래서 한인 이민자들이 다문화 호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그들이 여타의 호주사람들과 얼마나 더 밀접하게 상호 작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한인 이민자 교회는 그러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을 촉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끝>


한길수|멜번 모나쉬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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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6 [11:3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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