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칼럼
 
김경민/크리스찬리뷰

복 대신 저주


지난 호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복을 충만이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성경이 매우 충격적인 답을 던져주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누구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여기셨기 때문에 (에베소서 2:3)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복이 아니고 에덴동산에서의 저주인 것이다 (창세기 3:16-19).
 
이 저주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복은커녕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으로 태어나 인생을 시작하여 죽음과 심판으로 삶을 마감하는 불행한 존재들인 것이다.

 
복 있는 삶-기쁨과 감사가 넘칠 수밖에 없는 삶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복 있는 삶은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삶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이다 (로마서 5:10).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가장 귀하고, 가장 놀라우며, 가장 기적적인 복이다. 이 복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오직 선물로 베푸신 복이다 (에베소서 2:4).
 
다시 말해서 복음 안에 있는 삶이야말로 가장 최고의 복을 누리는 삶인 것이다. 이것을 참 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매사에 기쁨과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무슨 일을 당하여도 자신이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쁨 속에 살아간다 (베드로전서 1:8-9).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이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고 더 이상 ‘하나님과의 화목’이 가져다 주는 복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여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 성도들도 ‘다른 복’을 찾기에만 급급하게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가장 크고 위대하며 놀라운 복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이미 풍성하게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달라고 떼를 쓰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으로 전락해버렸다.

 
복을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

 
물론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한다 (빌립보서 4:6).
 
바울 사도가 ‘모든 일에...’라고 했을 때 예외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늘의 아버지께 담대히 나가 우리의 구할 것을 말씀드릴 수 있다.
 
하지만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한 사실을 잠시 묵상해 보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3-5)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다 받았다고 바울은 선언하고 있다. 그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찌 하나님의 복이 풍성하지도, 충분하지도 않다고 불평하며 더 큰 복을 달라고 떼를 쓸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바울 사도가 연이어 기도했던 것처럼 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생각하며, 또 그 복을 이미 누리고 있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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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9 [14:2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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