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

글|김환기,사진|권순형 | 입력 : 2019/07/29 [14:40]
▲ 환갑에 은퇴하고 필리핀 선교사와 한국 농어촌 교회를 섬기다 두레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송춘현 목사. ©크리스찬리뷰    



그는 환갑에 대형교회를 사임하고, 필리핀 선교사로 4년을 사역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농어촌교회를 섬겼다.
 
2019년 6월, 시드니두레교회에 부임한 송춘현 목사를 만났다.
 
참, 궁금했다. 
 
"왜, 조기 은퇴했을까?"
 
"어떻게, 시드니 두레교회에 오게 되었을까?"
 
지난 6월 28일 그를 만났다. 호주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행함과 말함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는 선교를 위해서 다양한 나라를 다녔다. 개인으로 갈 때는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면서 다녔다. 영연방 국가는 운전 방향이 한국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한다.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길안’을 주신 것 같습니다. 한번 다녀온 길은 거의 다 기억합니다."
 
- 어떻게 시드니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비상 호출을 받은 것이죠. 한국에 휴가 차 오신 임성일 장로님의 연락을 받고 일 주일 만에 왔습니다. 지인을 통해서 연결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이 서서 바로 결정을 했습니다. 비행기 표도 특가로 구입하여 아내와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 60세에 사임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주일에 3천여 명이 모이는데 교회를 사임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교단에서도 중견의 목회자로 명예를 버리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마지막 순간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저에게 선교에 대한 비전이 더 컸기에 과감하게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인천 청천교회는 크고 좋은 교회니 어느 후임이 와도 잘할 수 있을 것을 믿고, 저는 과감하게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친구 목사들이 만류하였지만 저는 사명따라, 소명따라 갔습니다. 아무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자비량으로 갔습니다.
 
저는 청천교회에서 25년을 시무하였습니다. 많은 곳에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선교사를 보내지만 말고 네가 직접 선교사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결단을 내리고 장로님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저는 이 교회를 이제 사임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나갑니다.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로님들이 너무 황당해하셨죠. 하지만 제 결심이 너무 굳건하니 만류하지 못하고 후임자를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후임자 선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청천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고 교인들에게 말했죠. ‘앞으로 저는 청천교회 목사가 아닙니다. 저에게 전화도 걸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하셔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저는 청천교회의 창립기념일과 장로님이 소천하실 때 외에는 오지 않겠습니다.’
 
정들었던 많은 교인들이 야속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은퇴하고 창립기념예배 때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덕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 후로 가지 않고 있습니다.”
 
- 선교의 비전은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신앙 가정에서 가족 중에 처음으로 예수를 믿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은혜를 받고 모든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설날과 추석은 잘 먹는 날인데 저에게는 굶는 날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거든요. 주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 어른들이 밥은 주지도 않고 물어만 보더군요. 참, 어른들이 무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이들을 보면 물어보기 전에 먼저 사줍니다. 그때 친구들이 거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집안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도했을 뿐 아니라 끝까지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본을 보여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지금 다 갚아 주셨어요. 그때부터 선교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보내는 선교사로서 역할을 하다가 ‘너는 안 가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조기 은퇴하고 필리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를 담임하니 명예, 정치, 돈 등의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가졌던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자', 한걸음 더 나가 '목사가 되었으니 목사답게 살자'입니다. 사람이 되지 않고 목사가 되면 교인들이 정말 괴롭습니다.
 
총신대학교 이사로 재임할 때 졸업식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학생들에게 ‘목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고 설교했습니다. 교수들은 다 동의를 하는데 학생들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저는 내세울 게 없습니다. 글을 쓸 때 두레교회가 앞으로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만 써주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구제사업도 많이 했고, 선교도 많이 했지만 절대로 제 개인 이름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청천교회도 교세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많이 놀라죠. 외적으로 무명하지만 내적으로 너무 좋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 필리핀에서는 무슨 사역을 하셨나요?
 
“오래 전부터 간접적으로 필리핀의 학교와 교회를 통해서 다양한 사역했습니다. 직접 가서는 한인교회를 담당해서 목회를 했습니다. 원로목사란 딱지를 띄고 사찰로서 4년간 섬겼습니다. 주일은 목사고 나머지 날은 사찰이었죠. 목사는 말씀만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섬기는 사람입니다.
 
두레교회에 와서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말씀 증거할 때는 목사지만, 일단 강단에서 내려오면 친구와 같이 지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 두레교회 주일예배에서 힘차게 말씀을 전하는 송춘현 목사.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에는 얼마나 계실 예정입니까?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있으라면 있고 가라면 가는 것이지요. 개인적인 비전은 먼저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고, 교회를 통해서 다민족을 선교하는 것입니다. 호주는 다민족 국가이며, 특별히 시드니는 백인보다 다민족이 더 많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주 노동자인 스리랑카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선교사로 파송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전도해서 본국으로 파송하면 선교비는 한국 선교사의 1/10정도 뿐이 들지 않습니다.”
 
송 목사의 차분하며 여유있고 소신에 찬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겸손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송춘현 목사를 통해서 시드니에서 이루실 하나님의 새 역사가 기대된다.〠


글/김환기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본부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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