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론 III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신의 정당성 증명


두 번에 걸쳐 우리는 신정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다시 정리해보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서 수많은’악과 고통’을 경험한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라면 우리 인간에게 악과 고통을 주시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면 우리에게 오는 악과 고통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인데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을 마주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악과 고통이 분명히 존재하는 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성과 선하심을 부정하는 위협에 하나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론을 신정론(Theodicy)이라고 부른다.

 
악의 실재

 
이신론(Deism)은 신이 세상을 창조한 후 별도로 존재하며 피조물들이 스스로 굴러가도록 내버려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통 기독교 신앙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심을 믿고 신앙한다.
 
성경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고 계시고 섭리하심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기록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에서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주장한다.
 
섭리란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데, 그는 이를 통하여 마치 그의 손으로 붙잡으시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들을 지탱시키시고, 식물들과 풀들,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양식과 음료 등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다우신 손길로 임하도록 그렇게 그것들을 다스린다.
 
그러나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섭리로 다스린다는 기독교의 진리에도 불구하고 세상 안에 존재하는 악의 실재와 악한 현실은 창조세계를 왜곡하고 기독교 신관에 심각한 도전을 가한다. 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물인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고통과 저주의 심연으로 내몰고 있다. 악은 인간이 착각하는 환영도 아니고 사변과 가상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이론이 아니다.
 
이전 세대에는 악을 실재하는 존재로 이해하기보다는 문화가 뒤떨어짐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나, 불충분한 교육, 부적합하고 불충분한 사회계획의 결과로 발생하는 무형의 부조화 같은 것으로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계속 발전하여 우주와 인류가 낙원을 향해 진보하면 이 세상에 더 이상 고통과 악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아우슈비츠의 대 참상을 목도하면서 전 인류는 경악했다. 달과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고 과학문명이 최고조로 발달한 20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인류 간 벌어지는 전쟁과 파괴 인종학살, 핵전쟁 등을 겪으며 인류는 악의 실재를 경험하고 분명히 깨달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명한 악의 실재에 맞서, 만약 하나님께서 이세상을 당신의 섭리로 붙들고 계시고 주관하고 계시다면 사랑하는 인간들이 받는 엄청난 고통과 악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한편으론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독교신관이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악의 실재를 경험하고 악한 현실을 마주하는 인류의 질문인 것이다.

 
고전적 섭리론

 
전통적으로 신학은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실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실재를 부인하지 않고 그 둘 사이에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그의 <하나님의 도성>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개인의 삶과 역사 안에서 분명히 존재해 왔다고 피력한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로마제국의 붕괴 과정 안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을 기술하고 있다. 인간의 불의와 전제주의, 전쟁과 탐욕 등으로 붕괴되는 악한 사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라고 기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가운데 그것들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사용하신다고 보았다.
 
칼빈은 어거스틴보다 더욱 강력하게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예정과 예지를 강조할 뿐 아니라 인간의 일을 포함하여 자연과 역사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도 행운, 우연, 변덕에 의해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의지적으로 결정한 것을 제외한 그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알고 의지로 작정한 것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의 모든 과정을 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 다스린다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섭리론의 세 가지 답변

 
이러한 전통적인 섭리론의 틀 안에서 신학은 신정론에 대하여 세 가지 답변들 사이를 오고 갔던 것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로 측량하기 어려운 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도처하는 수많은 악들,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악의 구조와 악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며 인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지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까닭 모를 고통과 불행에 처했던 욥은 하나님에게 질문을 퍼부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측량하기 어렵고 인간의 유한성과 제한성만 깨닫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 위대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악의 경험을 역경을 당한 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성경에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해 주는 부분들이 보이는 것 같지만 (모세오경, 욥기) 예수는 분명히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소경된 것은 본인의 죄와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요 9:1-3).”
“실로암의 탑이 무너진 것은 실로암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니다(눅 13:4).”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며 모든 고통이 심판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도 안될 것이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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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9 [15:1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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