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교회 시대에 꿈꾸는 작은 교회
 
서을식/크리스찬리뷰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린도전서 12: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로마서 15:7)
  
공공의 공감 없는 막말과 지지 없는 시위나 일삼는 별종으로 한국 사회에 투영되는 조국 교회는, 소금 같은 희생, 빛 같은 선행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누가복음 13:21)의 파급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부흥시대에 추수한 많은 영혼은 수평이동으로, 자원해 몰려가거나 진공청소기에 흡입되어, 대형(창고)교회에 곡식으로 쌓였습니다. 혹자의 지적처럼, 교회가 미국으로 건너가 비즈니스가 되고, 한국으로 건너와 재벌이 됐다면, 재벌의 전횡과 폐해가 이슈이듯, 대형교회 역시 논의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압축부흥기에 선배의 크게 뛴 발자국이 건너뛴 소외 영역을 발견하고,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성찰하여,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압축쇠퇴기의 새로운 교회상을 정립해야 할 과제는 이제 오롯이 후배가 감당할 몫이 됐습니다.
 
전통교회의 기존 시스템, 성직자 중심의 권위적 문화, 강요하는 믿음, 사회적 이슈에 대한 좁은 선택, 자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내몰리는 피로감, 목회자나 교우에 대한 잦은 실망, 침묵하는 교인의 맹종과 방관에 실망한 개념 있고 깨인 자가 안타깝게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 가나안 성도가 됩니다.
 
초대형교회를 모델로 ‘성공하는 목회’의 우상을 좇는 어리석은 부자, 허황한 꿈을 비전이라 믿고 현란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벤처사업가, 한바탕 신명 나는 춤과 노래로 카타르시스의 경험을 제공하는 콘서트 기획자와 같은 교회꾼(?)이 회개하든지, 안되면 앞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자신을 굳게 세우고, 영적 순례가 이뤄지는 삶의 자리에 함께한 이웃의 친구와 가족으로 자신을 내주어 섬기는 이가 교회 안에 남아 ‘실패하는 목회’에 착념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교회에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오는 크리스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되는 사람(dechurched or unchurched people)의 출석(attending)을 강요하는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더하여(adding) 몸에 속(belonging)하게 하셨기에, ‘교회에서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는’ 자발적인 크리스찬의 교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될 수 있습니다.
 
시드니는 제한된 교민 숫자라는 적은 수요에 비해 어이없게 많은 신학교와 교회라는 초과 공급으로 저울추가 소비자 쪽으로 지나치게 기운 왜곡된 시장이 됐습니다. 예배(service)가 아닌 여러 봉사(services)가 주 임무가 되면서 건강한 목회가 어려운 조건입니다.
 
하지만, 이민자로 경계인의 삶을 사는 장점을 잘 살려, 기성품을 대량 생산하는 맥도날드 교회에 메뉴 약간 변경한 헝그리 잭 교회 하나 덧붙이려는 ‘따라하기’를 멈추고, ‘나름하기’를 시도한다면, ‘창조적 선교적 상상력'(creative missional imagination)으로 대안을 제시, 설득, 실험, 도전하는 긍정적 기여가 가능합니다.
 
선교적 대안교회, 작지만 강한 강소교회, 지역사회의 필요를 섬기는 다문화 동네교회, 믿음의 다양한 표현을 추구하는 FxC(fresh expressions of church)교회 세우기로 눈을 돌리면, 역설적으로, 악조건은 건강한 목회를 위한 최선의 토양이 됩니다.
 
탈교회 시대의 크리스찬 교회에는 탈문자주의, 탈권위, 탈성직, 탈직분, 탈성장, 탈성별 등의 ‘탈운동’이 잘 어울립니다. 이런 다양한 도전은, 각성한 대형교회가 효율적 봉사와 선교, 인적 자원의 분배, 묻힌 다양한 은사의 활용, 후방 성도의 전방 배치를 위해 자발적 해체와 분립도 불사하는 사례와 함께, 성령께서 살아있는 생물인 교회에 허락한 자가치유 운동입니다.
 
성령은 하나이나 은사는 여럿이듯, 우주적 교회는 하나이나 지상의 교회는 다양하게 존재하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듯, 서로 받아들이면(로마서 15:7)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작으나, 이제부터 커지려는 교회’가 아니고, 이미 충분히 작으나 더 작아지려는 교회만이 ‘작아서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에 저는, ‘교회가 죽어야 성도가 살고, 성도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본질에 충실하고, 비본질에 유연한 부드러운 균형과 함께, 다변화된 맞춤 서비스로 소량 생산하는 역동성을 멋스럽게 갖춘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 선, 작아서 아름다운 이민교회와 척후병(아방가르드) 성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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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29 [15:2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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