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사기 포교, 호주에서도 통할 것
시드니에도 이단상담소 생기길 바랍니다
 
글|정윤석,사진|권순형

 

▲ 한동대학교를 다니며 6년 동안 신천지에 미혹되었던 김충일 전도사는 현재 총신대학원을 다니며 이단상담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김충일 전도사(상록교회, 33)는 신천지 전도교관 출신이다. 그가 했던 일은 ‘찾기-맺기-따기’ 과정을 거쳐 복음방으로 들어온 신도들을 탈락되지 않도록 관리해서 센터로 넘기고 결국 그들이 수료까지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었다.
 
2004년 겨울에 빠져 2010년 가을 탈퇴하기까지 6년 동안 신천지에서, 말 그대로 하루에 김밥 한 줄 먹고 3~4시간만 잠을 자며 그 일을 했다.
 
교통비를 아끼고 시간 절약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구입해서 타고 다니기도 했다. 2010년 3월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왼쪽 다리에 커다란 타박상을 입고 반 깁스를 했다. 헬멧을 쓴 채로 얼굴이 땅에 쓸려 얼굴이 타박상과 함께 퉁퉁 부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입원을 하지 않았다. 늘 “신천지 역사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픈 것도 죄다”라고 가르쳤는데 자신이 다쳤다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전도 책임자로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유로 담임강사로부터 듣게 될 질책의 말들도 두려웠다. 다음날부터 목발을 짚고 전도활동을 다녔을 정도다.
 
신천지를 탈퇴한 후 김 전도사는 이단상담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2019년 8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호주 시드니를 방문한 김 전도사는 정윤석 기자(본지 한국 주재 기자)와 틈틈이 대화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눈물을 지었을 때는 단 한 번이다. 자신이 모략포교에 당해 신천지에 빠진 것처럼 자신 또한 그곳이 진리인 줄로만 알고 모략포교로 신천지에 성도들을 빠뜨린 ‘죄’가 있다는 것. 지금도 나오지 못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할 때, 그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래서 더욱 김 전도사는 책임감이 크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이단 상담사역을 하고 있다. 시드니주안교회(진기현 목사)에서 8월 12일(월)~ 14일(수)까지 기초상담교육을 진행한 김 전도사는 호주에서도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상담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다음은 김 전도사와의 인터뷰, 간증, 대화를 종합해 엮은 글이다.

 
목회자 자녀, 김 전도사 신천지는 왜?

 
김 전도사는 목회자의 자녀에 모태신앙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천지에 빠지게 됐을까? 김 전도사의 형이 먼저 신천지에 빠졌다. 그 후 김 전도사도 수능시험이 끝난 후 2004년 12월, 입학 예정이던 한동대학교의 선배를 소개받아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대학생활을 해도 신앙 안에서 굳건히 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시작할 때는 정통교회의 성경공부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천지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공부였다. 나름대로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해온 김 전도사였지만 신천지의 성경공부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를 분별할 수가 없었다.
 
“목회하시는 부모님을 통해 모태신앙으로 살아왔고, 학창시절에는 큐티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신앙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신천지 성경공부인지 파악할 수 없었어요. 신천지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빠지는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정상적인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도 빠질 수 있는 게 신천지예요.”
 
오히려 체계적이고 성경적인 성경공부라는 생각을 갖고 배움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면서 어느새 김 전도사는 신천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천지에 빠졌을 때의 하루 일과

 
김 전도사는 신천지에 빠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인생 모든 걸 바쳐서 살았다. 진리를 찾았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신천지에서 요구하는 모든 모임과 예배와 봉사 및 포교활동에 참여했다. 이것은 김 전도사 삶의 최우선 순위였다. 당연히 학생으로 마땅히 해야 할 학업과는 멀어져 갔고 휴학도 많이 했다. 부모님께는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속였다. 그럼에도 신천지에 진리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중요한 것을 신천지를 위해 희생했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전대 팀장으로 활동하던 때는 수개월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만 자고 활동했다. 신천지에서 탈퇴하던 날까지 포항지역 청년부 전도 교육 및 업무를 책임지는 복음방 교관으로 지내며 최소한의 수면으로 신천지 활동을 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보통 하루 일과는 오전 6시에 새벽예배로 시작했다. 이후 전일 활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도 교육 및 모임을 가지고 바로 활동에 들어갔다. 오전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모두 복음방과 섭외활동으로 보낸 후 오후 7~8시쯤 다시 모여 당일 활동 결과를 보고받고 피드백을 해줬다. 저녁 9~10시경에는 다시 복음방 교사교육을 하고 이후 각 부서 전도책임자들이 모여 당일 활동 결과를 교회 담임에게 보고한다. 이때는 ‘깨지는 시간’이다. 
 
"그 딴식으로 해서 천국 갈 수 있겠어?"라는 소리와 함께 욕을 먹기 일쑤였다. 신천지에는 연간/분기별/월간/주간/ 매일의 목표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줬다. 달성하지 못하면 격려보다는 책망을 하며 결과를 내도록 쥐어짜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위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기보다 책망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김 전도사 또한 하부 조직원들을 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보통 자정이 넘어갔다. 이후에 복음방 교사들의 보고서를 보며 피드백을 하고, 청년부 전도전략 회의를 하고, 일일 전도활동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보통 새벽 1-2시가 됐다.

 

▲ 동산교회에서 열린 이단대책세미나에서 김충일 전도사가 신천지의 이단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파김치가 되도록 하루를 보내고도 쉴 수 없는 때가 있었다. 교회 건축이나 신천지 교육장소인 센터설립 등 건축 관련 업무가 추가됐을 때다.
 
“신천지 센터가 탄로나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면 내부 인테리어 등 공사 일에 투입됐어요. 늦게까지 막노동을 한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돈 한푼 받지 않고 노예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불평이 없었냐구요? 아니예요. 오히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뭔가 뿌듯했어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 교관으로서 했던 일

 
신천지에선 최소 6가지 항목을 제대로 해야 구원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전도, 교리시험, 예배, 헌금, 모임, 봉사 등이었다. 여기서 꾸준한 실적을 쌓아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배웠다.
 
심지어 몸을 다치거나 아프면 그것마저 죄로 여겼다. 실제로 신천지에서 “아픈 것도 죄다”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고 또 같은 말로 가르치기도 많이 했다. 왜냐하면 아프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10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까지 신천지 활동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신호위반을 하고 달려가는 자동차를 피하면서 교통사고로 몸이 다쳐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가 쓰러지며 왼쪽 다리에 커다란 타박상을 입고 반 깁스를 했다.

 

▲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집회에서 진기현 목사(오른쪽)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충일 전도사.     © 크리스찬리뷰


헬멧을 썼지만 얼굴이 땅에 쓸려 타박상과 함께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러나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목발을 짚고 전도활동을 다녔다. 매일같이 아픈 것이 죄라고 가르쳤던 자신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고 전도책임자로서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담임강사로부터 듣게 될 질책의 말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시의 저에겐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목마름이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었습니다.”
 
포교전략을 짤 때는 철저하게 진행했다. 직통계시, 꿈, 하나님의 음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직통계시자 콘셉트’ 전략을 짰다.
 
예를 들어 김 집사란 사람이 신비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면 추수꾼이 전화를 하는 방식이다. 
 
“김 집사님, 제가 기도하는데 집사님이 오늘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조심하셔야 해요!”
 
어쩔 수 없이 하루 한 번 이상은 운전을 해야 하는 김 집사는 어깨에 담이 생길 정도로 긴장에 긴장을 하며 조심스럽게 방어 운전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뭐하는가? 이미 신천지 모략포교 전략팀의 신천지 교인이 김 집사를 뒤따라가서 뒤에서 차로 받아버리면 상황 종료다.
 
이때부터 김 집사는 추수꾼인 줄도 모르고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경고한 추수꾼에게 완전히 매료되기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를 짜는 방법이다.
 
한동대에는 선교사 자녀들도 많았다. 그중 학부 졸업 후 진로를 신학대학원으로 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 20여 명의 신천지 교인이 신학대학원 진학 동아리를 만들었다. 겉으론 신학대학원 진학을 위한 동아리였지만 20여 명 중에는 한동대학생이 아닌 신천지 교인도 적지 않았던, 위장 동아리였을 뿐이다. 비한동대 학생들은 한동대 특정 학과의 교수 이름, 학과에 얽힌 에피소드를 외웠다.
 
마치 한동대학교 학부생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려면 성경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를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한다’며 위장 동아리에선 별 문제없이 성경공부를 시키면서 신천지로 미혹해가는 방법을 썼다.

 
진용식 목사, 테러 계획

 
김 전도사의 열정적 활동은 결국 학교에서 발각됐다. 학교의 교목실에서 신천지 활동을 하던 김 전도사의 정체를 알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교를 휴학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신천지 믿음을 지키기 위한 김 전도사와 아들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부모님의 싸움이 시작됐다.
 
당시 김 전도사는 신천지를 버리는 것보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선택할 만큼 신천지에 미혹되어 있었고, 이러한 김 전도사를 부모님은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6차례에 이르는 가출로 부모의 심신도 지치게 만들어갔다.
 
지칠대로 지친 아버지는 어느 날 “내가 이단에 빠진 것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너를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며 “너도 죽고 나도 죽어야겠다”며 칼을 들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할 때 일부러 찔리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 완전히 신천지 활동에 제약없이 가족의 연을 끊을 수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신천지 교인 누군가가 “칼에 찔리면 치사확률 60%다”는 말을 전해 듣고 칼에 찔리는 행동을 거둬들인 적도 있다. 
 
김 전도사와 부모의 대치 기간은 모두에게 끔찍하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전도사의 소속 지파에서 한 가지 특명을 받게 됐다.
 
내용은 “네가 지금 신천지 활동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으니 차라리 지금 상황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상록교회에 찾아가 진용식 목사를 폭행하고 테러하고 상담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이었다.
 
폭행으로 인한 법적인 처벌을 받은들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인데 더 큰 복이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지령을 받은 김 전도사는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상록교회에 찾아가 진 목사의 세미나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도 하며 테러를 시도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고 신기하게도 그의 시도는 매번 실패했다. 한 번은 테러를 목적으로 상록교회에 찾아가 진 목사와의 면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진 목사는 식사 중이었다. 밥 먹는 중에 테러를 시도할까 고민하다가, 밥을 다 먹은 후 면담시간에 테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실패했던 적도 있다.
 
당시 진 목사가 식사를 마치자마자 면담은 해주지 않고 바쁘게 다른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기 때문이다. 그때 식사 끝나기를 기다린 이유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한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밥 먹다가 맞으면 너무 불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진 목사가 한동대학교에 이단 세미나를 인도하러 왔을 때, 세미나를 인도하러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부모님을 속이고 가출한 신천지 신도들과 함께 곧장 세미나 장소로 갔다. 세미나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신천지임을 밝히며 토론해 보자고 언성을 높이다가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질질 끌려 나가게 됐고 집회 방해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그때 경찰은 세미나 진행자인 진용식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엄벌에 처하길 원하십니까?” 전화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선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탄의 자식이 왜 저런데?’라는 의아한 마음을 품었지만 돌아보면 이 일이 차후에 목사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달리하는 작은 시발점이 됐다.

 
이단 상담, 그리고 회심

 
심신이 지쳐가면서도 부모는 김 전도사에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상담소에서 상담교육만 받는다면 그 이후는 너의 원대로 해주겠다고 설득했다.

 

▲ 목요찬양집회에서 김충일 전도사는 신천지의 모략포교에 대해 설명하며 이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강조했다.     © 크리스찬리뷰


결국 지파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부모님의 요구대로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당당히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상담소에 가서 말씀으로 싸워 이기고 이왕 가는 김에 상담하는 목사들까지 신천지로 데려 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바에 상담을 안 받을 길이 없었다.
 
당당하게 이기고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상담에 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신천지 말씀에 일점일획의 오류라도 있다면 내 목을 걸겠다’고 자신했지만 점점 ‘신천지가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신천지가 틀렸을 수 있다는 조금은 열린 자세로 교육을 듣게 되자 김 전도사의 잘못된 신념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신천지가 잘못됐다는 걸, 성경을 통해 확인하자 김 전도사는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을 정도의 수치심이 들었다. 교회에 가더라도 이단 상담사들과 마주치기를 꺼려했다. 그들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고 반말도 하고 바닥에 침(얼굴에 침을 뱉으라는 지시도 있었으나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을 뱉는 등 워낙 버릇없이 대했기에 마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제 신천지가 틀린 것을 인정했으니 과거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워 수개월을 방황하며 지냈기도 했다. 그리고, 이토록 거짓과 사기로 점철된 신천지가 진리인 줄로만 알고 미혹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가슴을 쥐어짜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15층 짜리 아파트를 문득 올려다보기도 했다. ‘저곳에서 뛰어 내리면 모든 고통을 잊고 잠들 수 있을까?’ 좌절과 방황의 시간을 몇 개월을 보내야 했다.
 
좌절과 방황으로 교회로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김 전도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회에 갈 때마다 상록교회 교인들은 김 전도사를 매우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토록 버릇없이 반말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그가 신천지에서 이탈한 것만으로 너무 기뻐하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 예장(합동) 총회에서 제작하여 배포한 신천지 추수꾼(이단) 출입을 금한다는 포스터. ©예장 합동 총회    


 
김 전도사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분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의 과거 잘못들을 무작정 벌하시지는 않겠구나.’ 그 따스함이 결국 김 전도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작은 용기를 줬다.
 
이제 그가 신천지를 탈퇴한 지 9년이 돼 간다. 그는 말한다.
 
“지금은 한때 흉악한 대적자였던 저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상록교회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벌써 3년째 상록교회 이단상담소에서 과거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상록교회의 귀한 청소년들과, 이단에서 회심한 새신자들을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신천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가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될 줄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목사님을 테러하려 했던 테러범이 목사님의 동역자가 될 줄을, 아무도 몰랐지만 오직 하나님만 아셨습니다. 태초부터 저를 택하셔서 흉악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며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궁금해서 질문한 게 있었다. 한국에서의 신천지 사기 포교법은 과연 호주에서도 통할까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 전도사는 신천지의 포교법은 20년 동안 될 것만 추리고 추려 핵심만 뽑아 놓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찾기’인데 포교될 만한 사람을 추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미혹대상자를 섭외할 때 핵심은 ‘친분쌓기’와 ‘신뢰 형성’이다. 아무에게나 포교하는 게 아니라 미리 상대가 거절 못할 정도의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려 드는 게 신천지의 접근이다.
 
그리고 미혹 대상자 또한 임의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신뢰가 형성된 후에도 ‘될 사람과 안될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서 구역장, 전도교관, 강사, 담임강사라는 결제 시스템을 거치고 거쳐서 포교 대상자를 엄선한다. 그래서 안될래야 안될 수 없는 게 신천지 사기 포교라는 것이다. 
 
“신천지 포교법은 2007년경, 수십 년간 축적된 미혹 전략을 통합·체계화 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과정에 빗댄 찾기-맺기-따기-복음방-센터-입교라는 그들의 미혹체계를 확립했어요. 이에 따라 신천지 신도들은 자신의 생각과 전략대로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체계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전도 교관의 승인에 따라 다음 단계로 진행해요.
 
이 방식은 한 사람이 미혹되는 과정이 신천지 전체의 판단에 따라 진행되게 함으로 개인의 판단과 실수로 실패하는 사례를 극도로 줄여주었고 지금까지도 실행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아무리 초신자라 상관없어요.
 
그들의 포교법이 통하는 이유는 수십 년간 축적된 방법으로 교육받고 그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포교 시스템은 수십 년 축적된 거예요. 그러면 그걸 실행하는 신도가 초신자이냐, 아니면 베테랑이냐는 상관없어요. 기계의 나사와 같이 전체의 한 부분으로 역할하게 되기에 미숙한 자의 실수까지도 최소화 하기 때문이에요.”

 

▲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실에서 배포한 신천지 위장교회와 모임 장소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 지난 2월 시드니에서 신천지가 주관한 시온기독교선교센터 베드로지파 109기 2반 수료식 장면. 314명이 수료했다.    


김 전도사는 호주에서도 신천지의 사기 포교법은 통한다고 내다봤다. 이를 막기 위해서 호주 교계가 할 일은? 무조건 예방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신천지 반증교육, 미리 그들의 교리 시스템을 알려 주고 반증 교육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김 전도사는 덧붙였다.〠


글/정윤석 |크리스찬리뷰 한국주재기자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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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8/27 [15:5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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