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사건을 믿음의 여행으로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09/26 [17:3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로새서 3:1-2)

  
믿음 여행자에게 나침반과 같은 구절이다. 오직 한 방향, 그리스도가 계신 위의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길을 잃고, 땅의 것을 생각하는 치명적 함정에 자주 빠진다. 옛 그리스도인에게도 비일비재 일어난 일이다.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권면한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골로새서 2:8)를 좇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로새서 3:2). 의문이 생긴다. 그때 그 사람이나 지금 우리나 어떻게 하면 피할 것을 피하면서 바른 것을 찾고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리심을 받는 위로부터 거듭남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언제나 초면처럼 서먹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한결같이 무관심한가? 그리스도인에 둘러싸인 중에서도, 나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마치 남의 옷을 얻어 입은 듯, 이 삶의 방식이 항상 낯설어 위선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태어난 후로 성장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아예 태어나지 않았든지. 스스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리심을 받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는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히고 살아난다(갈라디아서 2:20). 이는 죄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 전 인생이 예수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 믿음의 세계,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믿는 자의 삶의 방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거듭나 주께서 교회에 더하시는 구원받는 사람(사도행전 2:47)이 되면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위의 것을 좇는 믿음 여행이 지속하여야 한다.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은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다. 거듭남의 사건이 확실히 일어나면, 믿음 여행자에게 구원은 마치 종합 선물 세트처럼 그 안에 감춰진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야고보서 1:17)온다.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골로새서 2:3), “의와 평강과 희락”(로마서 14:17),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베소서 5:9), 풍성한 생명과 삶(요한복음 10:10), 영적 참 자유(요한복음 8:32), 거룩(요한복음 17:17) 등을 받아 누리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힌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룬 구원은 단번에 믿어 즉시로 구원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믿음 생활은 구원과 함께 배달된 신령한 선물과 고귀한 가치를 사랑하면서 사건을 여행으로 계승, 승화시켜 생활로 점차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계속 힘써서 찾고, 생각, 즉 애정을 가지면 된다.
  
마지막으로, 영적 거듭남의 사건과 믿음 여행의 차이를 알라. 은사주의는 믿음의 사건을 중시하고, 복음주의는 믿음의 여행을 중시한다. 사건과 여행은 다르다. 사건은 단회적이고, 여행은 지속적이다.
 
위로부터 거듭나는 단회적 경험이 사건으로 일어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비로소 믿음 여행이 시작한다. 믿음 여행 중에 자신을 연단하는 의도적 훈련의 필요가 강하게 찾아올 때가 종종 있다(디모데전서 4:7-8).
 
믿음의 경주 한번 제대로 해보려면, 기꺼이 받아들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과 더불어 응원하고 계신다(히브리서 12:1-2)는 사실로 격려받으라.
 
그러나 골로새의 이단이 전파한 율법적 의식주의와 금욕적 고행주의는 피하라. 거듭나는 사건의 감격스러운 경험이 여행 내내 생생히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화의 종착지에 도달할 때까지, 구원의 모든 과정이 물 댄 동산처럼 풍성하게 된다. 구원의 사건이 믿음의 여행으로 지속되는 큰 은혜를 모두 누리기 바란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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