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 되새기다
생존 선교사 및 후손 초청 창원서 열려
 
글|김명동,사진|권순형
▲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을 초청, 한호 선교 130주년 감사예배를 10월 6일 오후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앞 광장에서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    11월호/2019 커버 페이지 © 크리스찬리뷰


한호선교 130주년을 맞아 경남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오승균 목사)는 다양하고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크리스찬리뷰사는 경남성시화와 함께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한호선교 130주년 기념대회를 가졌다.
 
10월 1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 이 행사에는 호주에서 26명의 생존 선교사와 가족 그리고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도서출판예배를 시작으로 한호선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에 참석하고 1952년 부산일신병원을 설립한 헬렌 맥켄지(매혜란)와 캐서린 맥켄지(매혜영) 선교사의 묘비를 제막했다.
 
창신대학에선 데이비스 선교사를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 ‘The Light’ 공연도 관람했으며 주기철 목사의 순교기념관을 방문했다.
 
선교사와 후손들은 문창교회, 양곡교회, 가음정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으며 진주교회, 충무교회, 금포교회, 고현교회, 창원시청, 부산진교회, 양지재활원, 일신여학교, 일신기독병원, UN묘지, 수영로교회 등을 방문했다.<편집자>
 

한호선교 130주년 감사예배
18개 시. 군 교회들이 한자리에

 
경남 창원 ‘경남 선교 120주년기념관’ 광장에 지난 10월 6일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국악 장단에 맞춰 울려 퍼졌다. 130여 년 전 이국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스러져 간 조상의 발자취를 찾아 한국에 온 후손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창원 극동방송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장면을 휴대전화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부채춤을 마친 어린이들이 다가와 안아줄 때는 벽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근성 목사)와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오승균 목사) 소속 18개 경남지역 시·군의 교회는 이날 130년 전 부산 경남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준 호주 선교사들을 기렸다.

 

▲ 한호 선교 130주년을 맞아 개최된 경남 선교의 날 감사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 이종승 목사(창원 임마누엘교회 담임) ©크리스찬리뷰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이사장인 이종승 목사(창원 임마누엘교회)는 감사예배에서 “호주 선교사가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조선은 계급사회로 미신을 섬기고 가난과 질병에 찌든, 망하기 일보 직전의 나라였다”면서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해 오늘의 경남지역 교회가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오승균 목사(마산 성산교회)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            © 크리스찬리뷰


이 목사는 “130년 전 선교사들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했듯, 그 신앙열정을 본받는다면 경남복음화 100%는 시간문제”라면서 “경남이 복음화되는 날 대한민국이 되살아나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근성 목사(마산 한샘교회)는 “젊은 시절 척박한 땅에 찾아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며 복음을 전해준 덕분에 경남에서 한국교회의 상징이 된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배출했다”면서 “우리는 이런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어둠의 권세에 매여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는 서두화 목사(오른쪽)와 통역을 맡은 박웅걸 목사     © 크리스찬리뷰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오승균 목사(마산 성산교회)는 “성도들은 꽤 오랫동안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알지 못했고 무관심했었다. 그러다가 경남의 많은 교회들이 동참하여 ‘경남 선교 120주년 선교관’을 개관했고, 호주 선교사 순직 묘원도 조성했다”며 “올해는 특별히 호주 선교사들과 후손들을 초청하여 뜻깊은 행사를 갖게 되어 기쁘다. 사랑과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 창원 극동방송 어린이 합창단의 축하 공연     © 크리스찬리뷰

 

▲ 인사하는 변조은 목사     © 크리스찬리뷰


감사 인사를 전한 알란 스튜어트(93. 한국명 서두화) 목사는 “한국에서 생활하다 호주로 돌아간 뒤로는 50여 년간 한국말 사용을 안 하다 보니 한국말이 어색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귀한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우리 선교사들의 실수를 만회하고 그 정신을 영원히 살리는 분위기를 조성해 준 관대함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존 브라운 목사(86. 한국명 변조은)도 “130년간 이곳을 거쳐 간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의 형제자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면서 “호주 선교의 역사를 이렇게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며 감격스러워했다. 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복음을 전해줘서 감사하다”며 큰 박수로 응답했다.
 

매혜란. 매혜형 선교사 묘비 제막식

 

▲ 일신기독병원 설립자 매혜란(왼쪽, 매혜영 선교사 자매의 흉상과 사진.     © 크리스찬리뷰

 
제2부는 1952년 부산 일신병원을 설립한 헬렌 펄 맥켄지(매혜란)와 캐서린 마가레트 맥켄지(매혜영) 자매 선교사의 묘비 제막식이 기념관 뒤편에 있는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에서 진행됐다. 묘비는 한글과 영문 2개씩 만들어졌으며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디자인에 최고의 원석을 도입해 제작했다.
 
선교사와 후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바바라 마틴(86. 한국명 민보은) 선교사는 “호주교회가 못한 일을 한국교회가 했다. 가슴 뭉쿨하다”며 감격했다.


헬렌 펄 맥켄지(매혜란) 의사
1913. 10.6~ 2009. 9. 18
 

▲ 매혜란, 매혜영 자매 선교사의 묘비 제막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     © 크리스찬리뷰


헬렌은 선교사 맥켄지 목사의 장녀로 부산에서 태어나평양외국인학교를 거쳐 멜본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938년 전문의 자격을 받았고 1950년 한국 전쟁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52년 전쟁 중 서둘러 부산으로 돌아와 동생 캐시와 함께 부산 일신부인병원을 개설하여 점점 성장시켜 매일 평균 133명의 입원 환자와 300명의 외래 환자를 맞는 큰 병원으로 발전시켰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메달(BEM)을 받았다. 1972년 병원장 직을 한국인에게 이양하고, 1976년 호주로 돌아와 2009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2012년에는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캐서린 마가렛트 맥켄지(매혜영) 간호사
1915. 11. 21~2005. 2. 10

 
캐시는 선교사 매켄지 목사의 둘째 딸로 부산에서 태어나 언니와 함께 평양외국인학교를 거쳐 1937년 호주 왕립 멜본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와서 언니 헬렌과 함께 1952년에 부산 일신부인병원을 설립하고, 1953년부터 간호 조산사 양성 과정을 개설하여 1,034명을 양성하였다.


 
1962년 영국 정부로부터 메달(BEM)을 수여받고, 1975년 나이팅겔 기장 수상, 1976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고 1978년 한국을 떠나 200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은 2009년 9월 조성됐다. 창원공원묘원 중심부에 위치한 1천 평 규모로 준공된 선교사 묘원은 3백 평의 묘역과 주변 공원부지 7백 평으로 갖춰졌다. 현재 8개의 선교사 기념비와 6개의 경남 출신순교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경남 창원공원묘원 내에 준공된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2009. 9. 10)     © 크리스찬리뷰

 

▲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예배에 참석한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20 10. 10.2)                      © 크리스찬리뷰


데이비스(Joseph H. Davies/덕배시), 테일러(William Taylr/위대연,) 알렌(Arthur W. Allen/안란), 맥피(Miss Ida McPhee/미희), 네피어(Miss Gertrude Napier/남성진), 라이트 부인(Mrs. Albert C. Wright), 아담슨 부인(Mrs. Andrew Adamson), 맥케이 부인(Mrs. James H. Mackay)이다.
 
데이비스는 호주 최초의 선교사로 부산 도착 하루만인 1890년 4월 5일 순직했고, 테일러는 진주 배돈병원 원장으로 사역했던 의료선교사였다. 알렌 선교사는 진주교회 목사와 광림학교 및 마산 호신(창신)학교 교장으로 봉직했고, 맥피 선교사는 마산 의신여학교와 유치원 경영을 주도했다. 간호 선교사인 네피아는 진주 배돈병원의 간호부장으로 오랫동안 시무했다.
 
라이트 부인의 원래 이름은 니븐(Alice G. Niven)으로 1905년 한국 도착 후 부산진 일신여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가 호주 선교사 라이트와 결혼, 마산과 진주에서 남편과 함께 사역했다.
 
1891년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간  맥케이 부인은 임신에 폐렴이 겹쳐 도착 3개월 만에 세상를 떠났고, 아담슨 부인 역시 한국 도착 1년 6개월 만인 1895년 11월, 심장병으로 소천했다.
 
순직이라고 표현한 것은 호주 선교사들의 별세가 과로와 풍토병 등으로 인한 죽음이기에 박해에 의한 순교와는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8명 선교사 중 5명은 부산에 묘가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유실됐고, 3명의 묘는 경남 산청군 덕산교회에 2기, 마산 공동묘지에 1기가 남아있다 이곳으로 이장됐다.
 
순직 호주 선교사 묘원 조성은 당시 창신대학교 강병도(83) 총장의 관심과 열정으로 시작됐다. 강 총장은 부산 경남지역을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선교사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이 많았다.
 
그는 호주를 수차례나 방문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10월 창신대 내에 ‘호주 선교사 순직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예배를 드려 이름까지 묻혀버린 선교사들의 존재를 다시 세상에 알렸다.
 
기념동산 부지는 창신대에서 희사했고 취지문이 담긴 기념비를 포함해 기념비 9개를 제작했다. 여기엔 호주 한인교회도 도왔다. 크리스찬리뷰사가 호주 한인교회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했고, 9개 교회에서 각각 1천500달러씩 보냈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행적과 정신을 제대로 알리려면 선교사 묘원이 절실했다. 그러다 무학산 기슭에 홀로 묻혔던 맥피 선교사의 무덤 앞에 경고문 한 장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이장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강 총장은 백방으로 자리를 물색하던 중 마산공원 내 한 장소를 발견했다. 조용했고 자리도 안성맞춤이었다. 묘원 공사는 마산공원묘원 측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신성용 이사장이 45억 원 상당의 부지를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 헌증했고, 창신대학 강병도 총장이 총지휘를 맡아 조성됐다.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유물과 자료가 사라지고 있다?

 

▲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에 전시할 유품들을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이 기증했다. 이 중에는 1897년에 출간된 한국에서 나온 최초의 한영사전을 비롯, 호주 선교사들의 보고서, 성경공부 교재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성경책들과 수예품들, 그리고 가족들이 그동안 애장하던 타자기 등 각종 유품들이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에 기증됐다.     © 크리스찬리뷰

 

경남 창원공원묘원 내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은 2010년 개관했다. 세월은 흘러도 흔적은 남고, 선교사는 떠나도 그 정신과 사역은 남는다는 것이 실감되는 현장.
 
기념관이 자리 잡은 지역은 인적이 드문 일명 ‘진동고개’로 불리는 곳이다. 진동고개는 한국 전쟁 때 부산 방어선의 최후 보루였다. 수많은 한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숨져간 피의 고지였다. 이 능선이 사수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해졌는데 바로 이 땅에 호주 선교사를 기리는 묘원과 기념관이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

 

▲ 개관 당시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에 전시된 유품들     © 크리스찬리뷰

 

 

▲ 개관 당시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에는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이 보낸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크리스찬리뷰
▲ 현재는 전시할 가치가 별로 없어 보이는 신문 기사나 교회 주보 등의 복사물 이외에 기증된 유품들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 크리스찬리뷰

 


기념관은 3천여 평 대지 위에 75평 규모의 흰색 바탕 단층으로 지어졌다. 외벽은 통유리로 안이 훤하게 보인다. 기념관 안에는 선교사들의 사진과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선교사들은 1960년대 마산 지역의 미망인과 고아를 돕기 위해 수예품을 호주로 보내 팔았는데 당시 만들었던 수예품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실 왼쪽 ‘순직호주선교사묘원’으로 가는 통로의 양쪽 벽에는 126명 호주 선교사들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의 한국 선국 선교를 주제로 창작 뮤지컬 ‘The Light’ 공연이 창신대학교 콘서트 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참으로 망연한 심정은 유물들과 자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부 유물과 자료들을 모처에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사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지워버릴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호주 방방곳곳을 누비며 선교사들의 유물과 자료들을 기증받아 기념관에 건넸던 본지 권순형 발행인도 선교사들의 유물과 자료들을 제자리에 갖다 두라고 관계자들에게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순직자들의 얼을 받들자면 원형을 잘 보존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비석과 기념조형물을 건축한다 해도 그 옛날 우리 선교사들의 삶이 녹아 있는 유물이나 자료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잘 가꾸는 것만은 못하다.
 
물론 기념조형물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관광객이나 순례자들의 단순한 볼거리의 대상물이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영혼이 없고 얼이 빠진 유물이 그 얼마나 많은가.
 
창작 뮤지컬 공연

 
창신대학에선 데이비스 선교사를 주제로 한 창작 뮤지컬 ‘The Light' 공연이 열렸다. 현대음악과 국악이 결합된 아주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 교차되는 퓨전음악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간 중간에 태권도와 타악기 팀이 합세해 볼거리도 풍부했던 멋진 공연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조선의 해충일 뿐”- 창배
 
“주님, 저는 꿈을 꿉니다. 조선의 모든 이들이 주님의 꿈을 꾸고 사랑하는 그날을”- 데이비스
 
1890년, 어둠뿐인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들고 온 호주 최초의 선교사 데이비스.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조금씩 빛으로 해방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무당 최 씨. 최 씨는 부산으로 전도여행을 떠나는 데이비스 선교사를 저주하며 천지신명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떨어진 무당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데이비스 선교사를 몰래 독살하려고 한다.
 
사도들처럼 도보전도여행을 하며 부산을 향하는 데이비스 선교사는 부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이날 공연은 선교사 후손을 비롯해 경남지역 목회자와 성도 그리고 창신대 학생 등 1천여 명이 관람했다.

▲ 데이비스 선교사가 누이 메리와 함께 배를 타고 한국으로 항해하는 모습                     © 크리스찬리뷰


 
데이비스 선교사는 이 땅에 짧지만 큰 여운을 남겼다. 한국에 온 지 겨우 6개월 후인 1890년 4월 5일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바울의 선교 원리를 따랐다. 선교사가 전혀 없는 지역으로 가서 일하기를 원했다.
 
5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한국어 공부에 몰입한 결과,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가벼운 설교까지 할 정도가 됐다. 꽃샘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남쪽 바다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서울을 떠나 수원과 공주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길을 쉬지 않고 걸었다. 약 20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건강을 돌보지 않은 강행군으로 천연두에 감염되고 곧 폐렴까지 겹쳤다.
 
마지막 5일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는 동료 선교사의 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죽기 불과 5일 전인 1890년 3월 31일까지의 일상이 기록된 일기 속에는 그 어떤 형태의 불평도 없다.
 
“선교사는 그가 택한 사역의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법이다. 선교사의 길이야말로 내가 어릴 적부터 꿈꾸어 왔던 희망이며, 나의 청년기의 목표이며,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서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은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에 적힌 내용이다.
 
창신대학교 이성희 총장은 “하나님의 대학으로서 매주 채플을 통해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근본임을 가f르치고 있다”며 “2016년부터 ‘가스펠콘서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특별히 경남 선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호주 선교사들과 후손들을 모시고 창작뮤지컬 ‘The Light'를 공연하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창신대학교는 호주 선교사들이 세운 창신학교에서 유래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08년 순종 황제의 인가로 개교한 창신학교는 당시 호주 선교사였던 아담슨 목사와 마산 최초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선교와 신교육, 구국운동을 위해 설립했다. 90년에는 창신고등학교, 91년에 창신대학이 세워지면서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창신학교는 호주 선교사가 세운 6개 학교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학교다.〠 (계속)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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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0 [14:45]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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