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
상상수훈-복 있는 삶
 
김경민/크리스찬리뷰

애통함과 위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애통하다’는 말은 곧 슬프게 한탄하는 것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다. 이뤄지지 않은 꿈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절망감,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 그리고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원망 등이 복잡하게 엉켜 애통이라는 말이 탄생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애통한다고 말하기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애통함은 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부분의 말씀은 구약 성경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가르치신 모든 말씀들이 구약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에 대한 온전한 성취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이 말씀도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애통하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애타게 기다리면서 무너진 이스라엘의 신세를 애통하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증거로 종결을 맺는다. 모든 선지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거부하고 패역한 모습으로 일관하였을 때, 오랫동안 참으시고 인내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도록 조치하였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너진 유다 왕국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며 애통함으로 예레미야 애가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이 실추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멈추지 않았던 동족을 향한 비통함으로 썩어 들어갔다.
 
비록 유다 왕국이 귀환을 통해서 재건되었지만, 그 이전의 영광에 비교하면 보잘것없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귀환에도 불구하고 참된 위로는 아직 누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참 위로가 되신 예수님

 
어린 예수께서 율법대로 정결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 시므온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누가는 그 사람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예수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눅 2:25) 이 사람이 성전에 이끌려 오신 어린 예수를 보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다.” (눅 2:28-32)
 
시므온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애통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기다리던 자였던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이 세상의 구원자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킬 자로 오신 분이라는 걸 성령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참 위로를 얻은 정말 복된 삶을 누린 사람이었다.
 
이런 모든 것을 배경으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한 것을 선포하셨다.
 
죄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애통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통한 위로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로 그런 이들을 위로하신다.〠


김경민|세인트 앤드류스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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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0 [15:4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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