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人間論), 인간이란 무엇인가?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신묘막측하며 신비로운 존재: 인간


오래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가요 ‘타타타’의 가삿말이 그 해 한국 노랫말 대상을 탔던 적이 있었다. 노래 가사가 재미있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 난들 너를 알겠느냐? /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 다 안다면 재미없지 /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 그런 거지∙∙∙
 
인간의 인생에 대한 회한과 인간에 대한 낙관론을 노랫말에서 그려냈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실제로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부모와 자녀관계에서도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일화도 인간의 정체성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 시사해준다. 쇼펜하우어가 어느 날 인간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며 걷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쳤다. 갑자기 부딪친 사람이 화가 나서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이 염세주의 철학자는 깊이 생각에 잠긴채 “내가 누구냐고요?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인간만큼 복잡하고 신묘막측(fearfully and wonder -fully) 하며 정의하기 어려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바른 정의를 어떻게 내려 볼 수 있을까?

 
인간, 그 미묘하고 복잡한 존재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라는 속담처럼 사람만큼 미묘하고 복잡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사실 인간인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신비로운 존재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이고, 문명화되어 있는 동시에 야만적이며,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동시에 적개심 넘치는 위험한 존재이다. 
 
제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고 인간에 대한 절망과 회의는 인간 실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주의 철학도 인간의 본질에 대해 시원스러운 대답을 주지는 못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이 명제에 대해 누가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인간은 쉽게 정의하기 어렵고 복잡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라스는 “인간 그 위대한 미스테리”(The Great Mystery, Science, God and the human quest for meaning)라는 책을 통하여 인간에 대해 조망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이며 그러면서도 가장 위대한 존재임을 천명하고 있다.

 
인간의 기원

 
인간이 유인원(원숭이)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그의 가설을 설파했지만 이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가설의 맹점을 알고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종(Species)의 기원’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단세포(Amoeba)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각 종(Species)에서 다른 종 (Species)으로의 변화를 돌연변이로 설명하는데 그것이 발생할 확률은 10의 22승분의 1이고 그 확률은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이다. 결국 진화론은 인간의 기원을 아메바(단세포)로 두고 몇천만 년에 걸친 돌연변이에 돌연변이가 성공해 원숭이가 되고 그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가설은 통하지 않는다. 거의 발생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가설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동물로부터의 진화라면 동물의 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동물의 피도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에 반해 성경은 인간의 기원을 확실하고도 단정적으로 정의한다. 인간의 기원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과 식물들의 종(Species)의 기원을 하나님께서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4-27)
 
하지만 진화론이 주장하는 인간창조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종 안에서의 적자생존이론과 과학과 기술로 발견한 진화과학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좋은 주제임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

 
생각하는 인간,
유희하는 인간,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인간을 규명하기 위해 소크라테스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유(思維)해 왔고, 생물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인류학적, 다방면에 걸쳐 인간존재의 규명과 정의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인간 존재규명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했다.
 
인간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로 정의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과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호이징가(Johan Huizinga) 는 인간을 호모루덴스(Homo lude -ns)  즉  “유희하는 존재”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희’ 나 ‘놀이’는 인간의 창조 행위와 예술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 분명하다. 인간만이 예술과 문화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호모파버(Homo Faber), 즉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으로 규명하기도 한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기술을 개발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들도 인간전체를 정의하는 개념으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정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계몽주의와 인간중심적 인문주의는 인간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계몽주의의 인간 중심적 관심은 명쾌함을 주는 대신, 단지 인간에 대한 혼동만을 증가시켰고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간상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 성경과 기독교 신학은 인간 정체성에 대한 세 가지 분명한 명제를 제공한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부인하고 타락한 죄인이다. 셋째, 인간은 용서받은 죄인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고, 예수 부활의 약속된 생명의 최종적 변화를 향하여 나가는 존재이다. 〠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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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30 [16:5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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