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을 방해하는 장벽 허물기
 
강승찬/크리스찬리뷰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친밀한 삶의 모델이요 전형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과 함께 미소지으며 산책하는 모습, 얼마다 아름답고 친밀한 장면인가! 이들이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서로를 향한 친밀한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관리했다는 것은 일하는 중에도 친밀함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타락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후로 인간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  모세시대에 하나님이 성막을 만드실 때 지성소 앞에 휘장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친밀함을 방해하는 두꺼운 장벽이 존재함을 느낀다. 우리 인간이 가장 허물기 힘든 담은 보완이 철저한 철벽이 아니다. 수 세기에 걸쳐 40만 노동자의 핏값으로 세워진 만리장성도 아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마음의 담이 친밀함을 방해하는 가장 큰 담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담의 세상이다. 내 안에 있는 자아의 담, 적대의 담, 첨단기술의 담, 비교의 담, 거짓 친밀함의 담이 있다. 그러나 이런 담을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다. 커튼은 비행기 안에서 비즈니스 승객과 일반석 승객을 분리시킨다. 이 두 부류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며 두 부류 사이에 친밀함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 앉은 사람에게는 주문하지 않아도 승무원이 알아서 물티슈를 갖다 주고, 먹기 좋은 간식과 무료 음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커튼 하나로 구분된 일반석 승객들은 자기가 알아서 음료를 챙겨 먹어야 한다.

 

비행기를 탔을 때 그 누구도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커튼을 열어서 “ 우리 이제 그만 담을 허뭅시다. 이제부터 다 같이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잔에 똑같은 음료를 마십시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일까? 바로 자신이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안전을 포기하고 이웃과 나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던 ‘소중한 자아(the dear self)’가 세운 담으로 도망가기가 더 쉽다. 이 자아는 의무에 따라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유익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자아는 항상 나 자신을 안전지대에 묶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자아의 담이 허물어져야만 우리가 갈망하는 친밀함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매주 가정을 오픈하고 이웃과 친구들을 초청하여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의 안전지대인 집을 오픈하고, 철옹성 같은 마음의 담을 허물고, 사람들을 허그하며 환영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전 휘장을 찢으신 사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성전휘장을 찢으시고 우리와 막힘 담을 허무시며 친밀감을 회복하도록 손을 내밀어 주셨다.

 

12월은 성탄의 계절이다. 거리마다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친구들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서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 안에 숨겨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것은 마음의 담이 허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멋진 파티를 한다고 마음의 담이 허물어지지 않는다.

 

우리 마음의 담은 오직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때 허물어지고 채워진다. 내 안에 숨겨진 자아의 담을 허물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린 ‘친밀감’을 다시 회복하게 되며 외로움을 이겨내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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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5 [12:5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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