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도가 신앙을 만날 때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입력 : 2019/12/23 [10:33]

 

▲ 이백순 대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외교관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다라고 밝혔다.     © 크리스찬리뷰



이백순 주 호주대사를 만나러 캔버라로 가는 길은 연기가 자욱했다. 시드니 남쪽 일라와라(울릉공 일대지역)근처에서 난 산불로 인한 연기였다. 하늘은 구름이 많고 흐리지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자욱하고 매캐한 연기만 날리는 날씨였다.
 
캔버라로 내려가는 길 내내 산불로 인해 기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호주 최대 도시인 시드니와 인근지역에 최고 수준의 화재경보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계문명과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로 인해 지구는 갈수록 몸살을 앓고 있고 이것을 인간에게 되돌리고 있다. 인류는 이제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마저 들게 한다.

 
합리적 이성의 사회과학도

 
기자는 호주에 살면서 캔버라에 꽃 축제 등 다른 일로 몇 차례 왔었지만 한국대사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 호주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는 길에 각나라의 대사관 건물들이 차례로 서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자 일행은 약속한 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대사관 정문에서 보안검사를 간단히 하고 홍보담당 실무관의 안내를 받았다. 약속시간 정시가 되자 대사의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 주 호주 대한민국 대사관저 집무실에서 업무 중인 이백순 대사.     © 크리스찬리뷰


이백순 대사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지적인 외교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정감이 넘치고 인정이 많게 느껴지는 분이었다.
 
이 대사는 2018년 2월에 부임했다. 벌써 2년이 가까워 온다. 대사관의 위치가 캔버라에 있기 때문에 시드니 교민들과는 자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아 시드니 교민들에게는 생경할 수도 있다.
 
실제 그를 가까이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형식적인 인사를 할 때의 인상과는 달리 구수하고 유머가 많은 분이었다. 그는 부산 출생의 흔한 경상도 남자이다. 대구의 명문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부전공 외교학)를 졸업하고 외무고시(19회)를 거쳐 정통 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독실한 신앙의 어머니를 둔 덕에 어렸을 때는 주일학교를 다닌 기억이 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대구에서 하숙하며 따로 살면서는 교회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불교학생회에 가입하여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불교 동아리 친구들과 방학 때마다 한국의 유명한 사찰들을 탐방하며 삼천 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삼천 배를 하면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힘들어요. 저녁에 삼천 배를 시작하면 아침에 사찰 축대를 내려오는데 엉금엉금 하고 기어 내려와야 해요. 그 정도로 삼천  배는 힘듭니다. 젊을 때라 그게 가능했지, 그걸 방학 때마다 했었어요.

 

▲ 호주 외교부 Marise Payne 장관이 개최한 뉴콜롬보플랜 2020 출범식에 참석한 이백순 대사가 한국으로 가는 13명의 장학생들과 함께. ©주호주대사관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사회과학, 인문과학쪽을 공부했으니 신앙하고는 거리가 멀었죠. 오히려 교회를 배척했던 생활을 했지요.”
 
그는 잠깐 회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잇는다.
  
“그때 어머니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죠. 어머니는 제가 서울에서 지낼 때니까 저를 보러 서울에 올라오시면 꼭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근처 교회 목사에게 본인 소개와 제 이야기를 하신 거죠.
 
그러면 어김없이 목사님들이 저를 전도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럼 저는 안으로 모시지도 않고 문 밖에 세워놓고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문만 빼꼼히 열어놓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전도하는 말에 일일이 다 대꾸하면서 그냥 가게 만들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예의없이 문전박대한 거죠.”
 

▲ 젊은 시절 불교에 심취했던 이백순 대사는 외교관의 길에 들어선 후 미국 연수 중 주님을 영접, 평생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고백했다.     © 크리스찬리뷰



고등학교 때는 삼천 배를 할 정도로 불교 학생회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서 그는 더욱 신앙과 멀어졌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으면 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통일교 모임에서 그를 전도하려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날카롭고 논리적으로 질문했던지 통일교 사람들이 제발 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한 번은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모임에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따라갔더니 통일교에요. 집회가 끝나고 제가 질문을 막 했더니 거기 교역자가 저 보고 그만하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거예요. 그리고 저를 뒤쪽 자기 방에 데려가더니 저에게 또 자기들 교리를 막 설명하는 거예요. 제가 설복당하지 하고 오히려 예리하게 질문을 해대자 저를 포기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그는 똑똑하고 확신에 차 있던 합리주의자였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성찰하고 스스로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가 그에게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런 그가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외교관의 길에 들어선 후 미국 연수를 가게 된다.
 

▲ 대사관저에서 열린 2019년 주호주대한민국대사관 SNS 서포터즈 발대식 (2019. 5.31) ©주호주대사관    

 

▲ 이백순 대사는 대사관 정원에서 소나무 브라스밴드를 초청하여 가을밤 음악회를 개최했다.(2018) ©주호주대사관   

 

▲ 주호주한국대사관은 캔버라 지역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 110여 명을 대사관저로 초청하여 2019 반갑데이 행사를 개최했다.(2019. 5.10) ©주호주대사관    

 

▲ 이백순 대사는 맥쿼리대학교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심포지엄 캔버라에 참여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주호주대사관    

 

때가 차매

 
그는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 국제 정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가 1980년대 초반이니까 아무래도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기 어려울 때였다.
 
그는 처음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샬러츠빌(Charlottesville) 도시에 도착했다. 그때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준 사람은 샬러츠빌의 한인교회를 다니던 친구였다. 그 교회의 장로는 그를 전도할 목적으로 처음 미국에 도착한 그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 적었고 이 외로운 곳에서 사람들과 교제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의 생활용품 등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실질적인 이유에서 그를 전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장로의 설득에 교회를 1년간 출석해 보기로 결정한다.
 
“처음에는 이 장로가 왜 나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푸나 했지요.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저에게 교회 안 나겠냐고 그러더라고요. 한국에서도 교회를 배척한 저였지만 장로가 그러는 거예요. 이곳에서 살면 한국인도 적고 외로울 텐데 와서 운동도 같이하고 교제도 하고 또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내놓고 가는 물품들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하고, 가만 들어보니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일 년만 다녀보자 그렇게 결심을 했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친절을 베풀며 나를 전도하려고 하는 데에는 이 사람들이 뭔가 확신이 있어 그러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확신이 있어 그러나 나도 좀 한 번 알아나봐야겠다. 그래서 일 년을 다녀보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일 년간을 샬롯츠빌 한인교회를 다녔지만 어떤 특별한 부딪힘이나 종교적 감흥이 없었다. 더구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젊은 시절의 그를 변화시킬 만한 논리적인 설득력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다가올 무렵 그는 속으로 이제 마음속으로 작정한 일 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질 무렵이었다.
 
평상시 같이 모여 술도 마시고 함께 토론하던 교회 멤버 가운데 가장 안티 크리스찬이었던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는 물리학으로 박사 후 연구과정(Postdoc)을 공부하던 선배였다. 이 선배가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작정한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어요. 이제 일 년이 다 되어가니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에요.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 봤더니 그 안티 크리스찬이었던 선배가 찾아 온 거예요.

 

▲ 이백순 대사는 취임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호 양국의 우호증진과 관계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주호주대사관    


물리학을 전공하던 사람이니 얼마나 과학적인 사람이겠어요. 그런데다가 이분은 그때 ‘예수가 12살부터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30세까지는 인도에서 살면서 결혼을 하고 자녀들도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정도로 안티 크리스찬이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저한테 이형 나하고 같이 예수를 믿읍시다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가장 예수를 반대하던 사람인데 왜 그러는 거냐고, 뭘 잘못 먹었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이분이 그러는 거예요.
 
어느 날 새벽에 위경련이 왔는지 떼굴떼굴 구를 정도로 배가 너무 아파 잠은 안오고 그러는데 이러다가 죽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드는데 너무너무 무섭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테이블 서랍에 있던 기드온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 막 성경에 있는 말씀이 자기한테 확하고 들어오더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스스로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짧은 시간에 변화되고 전도하러 다니는 거였어요. 당시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랐죠.”
 
작정한 일 년이 다 되어 갈 무렵 그에게 찾아온 한 선배의 사건은 그의 과학적인 사고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백순 대사가 기자에게 그런 얘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속에서는 ‘이게 뭐지?’ 하는 의구심이 일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선배의 사건이 그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그를 변화시키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 이백순 대사가 Peter Cosgrove 호주 연방 총독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호주 3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2018. 4.18) ©주호주대사관    
▲ 이백순 대사는 대사관 직원들과 호주전쟁기념관을 방문, 1차 대전부터 호주가 참전한 10여 개국의 주요 전쟁과 관련된 설명을 들었다. ©주호주대사관    

 


하나님께서 세탁시키다

 
그가 출석하던 샬러츠빌(Charlottesville) 한인교회에는 담당하는 목사가 없었다. 그래서 인근 교회에서 돌아가며 설교자가 오거나 근처 신학대학의 한인 교수들이 와서 예배를 인도해 주던 때였다. 그 선배가 찾아오고 나서 한 2주가 지난 주일날 근처 신학대학의 한 교수가 찾아와서 설교를 했다.
 
“그날도 인근의 한 신학대학의 목사님이 와서 설교를 했는데 아무런 감흥도 없고 그래서 이제 마음속으로 이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한테 이제 나는 앞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인사를 해야지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가 끝났는데 자기 마음속에 오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한테 콜링(Calling)을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성도들 모두 눈을 다 감으라는 거예요.
 
저는 그 당시 콜링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예수님을 믿기 원하는 사람 조용히 손만 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속에 이분이 한국 목사들처럼 약장사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또 예수님을 믿고 싶어도 믿기지 않는 사람 조용히 손을 들라는 거예요.
 
가만 생각해 보니 이 경우에는 내가 해당되는구나 해서 옆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기도해줄 테니 손 든 사람들 다 일어나라는 거예요. 그때 속으로 다시 반감이 들더라고요. 프라이버시 지켜 주려고 손만 들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일어나면 옆사람들이 알아차릴 텐데 이분이 처음 했던 말과 다르다 그런 생각에 마음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손을 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옆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조용히 일어났죠. 그랬더니 목사님이 기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고요. 기도 내용도 별 신통한 내용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내용인데, 감고 있는 눈에 번쩍번쩍 섬광 같은 게 일어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이 나는데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서 나오는 거예요. 감당이 안되는 겁니다. 마음속으로는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왜 이러지? 내 감정하고 이성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수퍼내츄럴(초자연적)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러다가 정신분열 걸리겠다.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 1965년 한호 수교 초기부터 대사관 청사 및 관저 용도로 구입해 사용해 오던 건물을 철거하고 2층 규모의 새로운 관저를 짓기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2018. 9.11) ©주호주대사관    

 

▲ 1965년 한호 수교 초기부터 대사관 청사 및 관저 용도로 구입해 사용해 오던 건물을 철거하고 2층 규모의 새로운 관저를 짓기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2018. 9.11)    



그의 고백대로라면 그에게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본인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가슴에 와닿는 특별한 기도내용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기도내용이었는데 본인의 이성과는 상관없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눈물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보니 콧물까지 범벅이 되있을 정도로 그는 수퍼내츄럴한 종교적 경험을 한 것이다. 그의 고백을 더 들어보자.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 교회를 못 떠나게 된 거죠. 그런데 희한하게 그때 이후로 찬송이 불러지더라고요. 제가 주일학교도 다녔고 어머니가 부르시는 것도 들었고, 그러니 곡조를 알죠. 그리고 일 년 정도 다녔으니 찬송도 많이 알죠. 그래도 그동안 예배시간에 제 입으로 찬송이 안 나왔거든요.
 
아, 그런데 이후로 찬송이 따라 불러지게 되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그때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은혜가 느껴지는데 하나님을 인정 안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참 위대하시구나 하나님의 계획과 때와 장소가 다 따로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자고하고 자기 힘으로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이곳까지 부르셔서 저를 뺑뺑이 돌리게 하시고, 제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이곳에서 저를 세탁시키신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으면 안 믿으니까 미국까지 부르셔서 저를 강제적으로 예수 믿게  세탁시키셨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평생에 그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을 당해도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회의해보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실 그는 호주 대사로 오기 전에 지난 정권에서는 주 미얀마 대사로 근무했었다. 그런데 아는 분은 알겠지만,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였던 최순실 때문에 미얀마 대사직에서 쫓겨났던 국정농단의 피해자이다.
 
최순실은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미얀마에서 하기 위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이백순 대사 대신, 외교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삼성전기 전무 출신인 유재경을 미얀마 대사로 보내기 위해 외교관 가족 신상관련 인사기준을 적용 이백순 대사를 부당하게 경질했다.
 
후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외교관 가족 신상 인사기준을 적용하여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기자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부당한 일을 겪을 때에도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으리라.

 
외교관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다

 

▲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백순 대사     © 크리스찬리뷰


그의 고백대로 그가 외교관 초년생이었을 때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그의 외교관 인생 전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식하는 신앙이 되었다. 그는 어느 곳을 가던지 국가의 공직자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최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기자는 그의 외교관 인생 전체를 회상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첫 번째 고백이 바로 “저의 외교관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지만 이후 그는 EU(유럽 연합)의 외교관으로 벨지움에 갔을 때는 그의 신앙을 더 철저하게 강화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 사랑의교회에 출석하며 옥한흠 목사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런 모든 과정이 적절하게, 때에 맞게 그를 하나님의 대사로 훈련시키는 과정이 되었다.
 
그는 외교관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며 대한민국의 외교관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하나님의 대사로 성실하게 일했다.

 
외교관 선발제도

 
이백순 대사는 외교부 인사국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그의 외교부 인사국장 재임시절 그는 한국 외교부에 괄목한 일을 남긴다. 바로 외교관 선발제도를 변혁시킨 것이다. 외무고시 같은 필기시험에 의존하던 외교관 선발제도를 변혁시킨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사회의 문제 중 하나가 암기실력만 좋고 인성과 자질이 안되는 고위 공직자들 때문에 지난 정권들에서 얼마나 많은 국가적 비극들이 양산되었는가?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은 모두 암기위주의 필기시험으로 결정된다. 기억력이 좋고 암기를 잘하는 소위 아이큐가 좋은 사람들은 이런 시험을 준비해 패스하면 고위 공직자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호주 대사 신임장을 수여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주호주대사관    


이런 필기 위주의 시험은 그들의 인성이나 자질, 공감의식 등의 덕목과는 상관없이 필기시험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몇 년 전 한 고위 교육정책 기획관이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망발을 해서 국민의 공분을 산 사람도 바로 암기위주의 행정고시 덕으로 23세에 공직자에 오른 것이다.
 
이백순 대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이 머리만 똑똑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의 인사국장 재임시절 외교관 선발제도를 외무고시 위주에서 심화교육과정으로 바꾸었다.
 
“제가 인사국장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았을 때, 물론 저 혼자 힘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에서도 인식을 하고 있었죠. 그때 외교관 선발제도를 바꿨어요. 지금은 소위 외무고시라는 게 없어졌죠.
 
당시에 행정고시도 없애야 하는데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는 바람에 행정고시는 아직까지 남아있는데 그때 외무고시를 없애고 대신에 외교관 후보생들을 뽑아서 국립외교원에서 일 년 동안 심화교육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그들의 성품과 자질과 덕목들을 관찰한 다음 그 평가 기준에 따라 선발하죠.
 
필기시험만 잘 친다고 외교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질들이 필요한데 그동안 한국사회가 그렇게 작동된 거죠.”
 
그는 뿐만 아니라 그가 북미국장 재임시절 미군이 한국의 기지들을 사용한 후 반환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환경평가를 한 후 그에 맞는 책임을 지게 하는 외교적 성과를 이뤄낸다 (JEAP, Joint Environmental Assessment Program).
 
그동안 미군은 한국에 주둔한 후 미국으로 돌아갈 때 사용한 한국 국토가 훼손되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백순 대사는 북미국장 재임시절 미군이 사용한 한국 국토가 훼손되면 환경치유를 위해 부담을 시킨 것이다.
 
또한 한국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리는 데에도 공헌을 했다. 이처럼 이 대사는 미국에 대해서도 한국의 실리를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낸 민족주의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에필로그

 
이 대사가 만약 외교관이 되지 않았으면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대학원 시절, 학자의 길에 대해서도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외무고시도 패스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공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교관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국제정치학의 전문가이다. 이미 오래전에 ‘신세계 질서와 한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그리고 금년에는 가칭 ‘대변환 시대와 한국 외교’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다. 바쁜 외교관의 인생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조국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자이자 민족주의자이다.
 
“학자들도 그런 책들을 별로 쓰지 않더라고요. 국제정치와 관련하여 외국이론만 소개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정치는 급변하는데 이런 급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길로 가야할 것인가? 또 한국의 국가운명과 미래 국가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 사랑의교회 안수집사인 이백순 대사는 은퇴 후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글로벌 선교에도 힘쓰겠다고 역설했다.     ©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한편으론 제가 고민하고 연구한 것들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은 갈증들도 있습니다.”
 
그는 은퇴하게 되면 그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것을 토대로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학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선교를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는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하나님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글로벌 선교에도 힘을 쓸 것입니다!” 
 
캔버라의 한국대사관을 나오는데 베드로 전서의 말씀이 다시금 다가온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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