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센트의 행복

김성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9/12/23 [11:24]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플라스틱 빈 물병을 갖다주면 10센트를 돌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빈 물병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빈 물병을 쭈그려뜨려서 재활용 쓰레기 통에 집어 넣었는데 이제는 큰  쓰레기 봉지에 모았습니다.

 

빈 물병을 약 100개 정도 모으면 더 이상 쓰레기 봉지에 들어가지를 않아서 빈 물병을 수거하는 곳으로 가지고 가면 10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돈을 받아오는 즐거움이 조금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빈 물병을 모으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또 모은 것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하고 또 그 빈 물병을 함께 카운팅하는 것도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빈 물병을 카운팅하는 인도 여자가 어찌나 깐깐하게 구는지 꼭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것 같아서 돈을 받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빈 물병을 모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가까이에 있는 파라마타 강가에 갔었는데  많은 빈 물병들과 여러 가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강물에 둥둥 떠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저 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물고기들에게도 저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엄청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래 가다 보면 자연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한 2,3개월 만에 빈 물병을 100개씩 만드는데 이런 것이 제대로 모아지지 않고 마구 버려진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빈 물병을 모아서 돈을 몇 푼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것이 지구의 건강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명을 가지고 빈 물병은 물론이고 빈 음료수 캔도 열심히 모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빈 물병 하나에 10센트를 주지 않아도 열심히 모을 것 같습니다.

 

2020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는 그 뭔가를 새로 해보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이익이 있어야만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삶을 참 많이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가치가 있고 좋은 일이라도 나에게 뭔가 유익이 되지 않으면, 나에게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으면 전혀 움직일 생각도 안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반대로 나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있고 단돈 몇 푼이라도 생길 수만 있다면 그 일이 무슨 일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의 몸은 잘도 반응을 했었습니다.

 

빈 물병 하나에 10센트를 달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빈 물병 모으는 일을 안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 방지나  하나뿐인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 그 일이 필요하다고 해도 어쩌면 우리는 눈도 꿈쩍 안 했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어린아이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일에 하늘의 상급을 달아놓았을까요? 왕에게나 큰 부자에게나 유력한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면 하늘의 상급을 준다는 말씀은 왜 하지 않았을까요?

 

어린아이는 자기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한 그 어떤 선행에 대하여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사람은 그 어떤 보상도 그 어린아이에게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떤 보상이나 반대 급부를 생각하지 않고 하는 선행에 대하여 우리 예수님께서는 대신하여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새해에는 어린아이 하나에게 찬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그런 선행을 한 번 시도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나의 선행에 대하여 아무런 보상이나 물질적인 이익을 안겨 줄 수 없는 그런 곳이나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선한 손을 한 번 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행이라는 것은 오른손이 하면 왼손은 물론이고 오른발, 왼발도 다 알게하는 그런 선행은 아니었던지요?

 

하나님이 계산하시기 전에 이 세상에서 상급의 계산이 완전히 끝나버린 그런 가치없는 선행은 아니었던지요?

 

월남쌈을 누구에게 대접을 해도 다음에 내가 대접을 받을 사람만 골라서 집에 초대를 하지 말고 나에게 대접을 할 만한 처지가 못되는 사람을 대접한다면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손님을 대접하면 그는 사람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그런 사람에게 천국에서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가족이 저희 교회에 새로 나왔습니다. 호주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비자는 끝이 났고 홈클리닝을 하면서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 나온지 3주 정도가 지났는데 저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홈클리닝을 갔다가 집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 짜장면을 만들어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민 경찰들이 몰려와서 온 가족들을 강제로 차에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온 가족들이 빌라우드 디텐숀 센터(수용소)에 와있다는 것입니다. 곧장 그 길로 그의 집으로 가 봤더니 아직도 짜장면을 다 먹지도 못한 그릇들이 방에 널부르져 있었고 방은 한바탕 소동이 난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빌라우드 수용소에 갔더니 부부가 제 앞에서 울고 있었고 두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약 2주간 동안 매일같이 그들의 집과 빌라우드 수용소를 들락거리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갖다 날랐습니다. 옷이며 아이들 장난감이며 심지어 여자 화장품까지 가지고 오라는 것들을 다 가져다 주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국으로 보내어졌고 저는 그들의 남은 짐들을 다 챙겨서 국제 우편으로 그들이 보내어 달라는 한국의 주소로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 이후 잘 받았다는 소식을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아마 짐은 잘 도착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약 3주간 나온 성도들이지만 그나마 그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쯤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호주에 대하여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다 씻어 버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큰 부자도 아니었고 유력한 집안의 사람들도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저는 진심을 다하여 그들을 도울 수가 있었습니다.

 

소자에게 찬물 한 그릇을 정성을 다하여 대접을 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을 해 봅니다.

 

새해가 되어서 어마어마한 목표를 세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저 소박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우리가 쓰임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시드니에는 아직도 여전히 냉수 한 그릇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파라마타 강속의 물고기들은 제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0센트가 주는 행복은 돈으로만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그 속에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아주 고귀하고 아름다운  스토리가 간직되어 있음을 저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김성두|시드니경향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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