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불타고 있다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아침부터 뿌연 연기와 매캐한 공기가 코를 찌른다. 시드니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어디서 날라 왔는지 자동차와 뒷마당 건조대에 걸어둔 빨래들에도 회색 재들이 앉아 있다. 
 

▲ 불길 속을 달리는 소방차. 호주 전역에서 산불이 일어나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뉴사우스 웨일스(NSW) 주에서만 12월 17일 현재 108건의 화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뉴사우스 웨일즈 주에서만 190만 헥타르(1만9000㎢) 약 57억 평 이상의 면적이 불에 탔으며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된 국립공원중 12곳이 산불피해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 달 넘게 호주 전역에서 화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불탄 재들이 시드니 해변으로까지 밀려들어 해안가마저 검은색으로 물들어 수영객들을 막고 있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산불로 인해 시드니 지역의 대기오염 상황은 극히 나빠져 호흡기 질환이 있는 자들의 외출을 경계하고 있고, 국내의료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외치며 정부당국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산불,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난 12월 11일에는 성난 호주 시민들이 2만 명 넘게 시드니 타운홀에서 모여 “뉴사우스 웨일즈주가 불타고 있다. 시드니가 질식당하고 있다” “언제까지 산불을 계속 놔둘 것인가?”등의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했다.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해 긴급한 정책을 수행하라고, 기후변화에 대해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스콧 모리슨 총리와 정부도 12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산불과 기후온난화는 관계가 없다’는 정당적 입장만 고수하다가 지난 12월 12일 “덤불의 건조함이 산불의 가장 큰 요인이고 기후변화가 산불 재앙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NSW주와 QLD주의 산불 현황 (2019. 11.15)    


이것은 호주 전체에서 수백 건의 산불이 발생해 220만 헥타르 이상의 토지가 불타고 시드니 도심이 화재 연기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2만 명이 넘는 화난 시민들이 랠리를 하는 것을 보고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호주 동부에서는 산불로 3명이나 죽었고 수천 명이 대피했으며 150채 이상의 주택들이 소실된 상태이다.  도대체 이 산불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비가 오지 않는 한 쉽게 잡힐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 호주 최악의 산불 사태로 인해 시드니는 최고 단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AAP Image    


호주 정부는 진작에 군대라도 투입하여 산불을 진압했어야 했다. 뉴사우스 웨일즈 주는 산불로 인해 지난 11월에 이어 12월에 두 번째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 스콧 모리슨 총리는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심지어 키리빌리의 총리 관저에 초등학생까지 가세해 “하와이는 공기가 좋더냐” “소방대원들은 언제 휴가가냐” 등의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풍경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위에 참석한 한 여성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내용이 사뭇 섬뜩하다.
 
“Scott Morrison, Your support of coal will kill your children too!” 스콧 모리슨 정부가 기후 온난화 정책에 미온적이고 심지어 산불 피해는 기후변화와 상관없다는 경제중심의 정책을 비판하며 이런 근시안적 태도는 분명 너의 자녀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이라는 경고인 것이다.

 
교회와 산불이 무슨 상관인가?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말은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이 한 말이다. 기독교 역사 초기에 터툴리안 교부는 동시대를 살았던 클레멘스 교부와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클레멘스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생각한 반면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계시를 벗어난 진리의 가능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그때 클레멘스의 주장에 반대해 “예루살렘이 아테네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것이 후에 기독교세계에 통속되며 “교회는 세상과 담싸고 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 자연과는 상관없이 복음에만 천착해야 한다”는 말로 오해되어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구원이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만물도 구원을 고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자연만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얼마나 목마르게 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19-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자연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21)
 
이것을 볼 때 인간과 자연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 원래 생태계(Eco-system)의 ‘eco’는 그리스어 ‘oikos, 오이코스’에서 왔다. 오이코스는 집, 가정,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한 지붕 아래 함께 존재하는 가족인 것이다. 인간만 가족이 아니라 자연도, 동식물도 공기, 흙, 물 같은 무생물까지도 함께 존재하는 한 가족인 것이다. 그것이 ‘eco-system’ 즉 생태계인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구조는 하나님–인간–자연이 완전한 질서 속에서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원론적 신학과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과 자연을 이원론적으로 분리시키고 자연은 인간에 의해 경작 당하고 위계 질서적으로 착취당하는 구조로만 보았지 돌보고 가꾸고 함께 어울려 상생해야 할 존재로 보지 못해왔다.
 

▲ 대형 산불 연기 때문에 황토색 먼지 폭풍이 시드니-뉴카슬 간 M1 고속도로 시야를 가리고 있다.    


창세기 1장 28절의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잘못된 번역의 표현은 안타깝게도 자연에 대한 태도를 우리가 바로 관리하고 가꾸고 봉사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다스리고 정복하라.”라는 표현은 “안전하게 보살피고, 관리하고, 봉사하라”는 의미이다. 자연을 잘 섬기고 돌보라는 ‘문화명령’을 주신 것은 자연을 정복하여 파괴하고 우리가 마음껏 유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연은 우리가 정성껏 가꾸고, 돌보고, 봉사해야 할 우리의 이웃인이다.
 
그동안 기독교가 창조를 바로 보지 못하고 회개, 중생, 칭의 등 인간중심의 구원관만을 강조한 채 자연을 착취한 결과 오늘날 우리는 반발한 자연을 통해 엄청난 재앙들을 되돌려받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산불을 통해 자연이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기후 온난화와 자연 파괴에 대해 인간이 그동안 벌여온 착취와 오염과 파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책임 있는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한국교회도 이런 심각한 자연 재해와 산불 피해에 대해 교회적 이슈를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다. 의례적인 기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전 교인이 기후 온난화와 자연 파괴에 대해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거나 토론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이 있다는 보수 기독교인일수록 이 같은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고 간다.
 
심지어 얼마 전 호주의 유명한 럭비스타 이스라엘 폴라우(Isarael Folau)는 호주 산불이 동성결혼과 낙태를 허용한 호주정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말할 가치가 없어 생략하지만, 이제 교회는 호주 산불을 바라보며 자연이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는 절규를 들어야 한다. 
 
이제 교회는 인간에게만 집중했던 눈을 돌리고 자연을 바라보고 속죄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문명의 이기가 파괴한 자연을 어떻게 회복시키고 가꿀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만약 인류가 자연을 계속 이렇게 방치하고 파괴한다면 2050년이 되면 지구 스스로 멸망할 수 있다고 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작게는 쓰레기를 줄이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교회에서부터 일회용품, 플라스틱 비닐 등을 사용하는 일들을 줄여야 할 것이다. 개인용 컵들을 가지고 다니고 장볼 때도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플라스틱 비닐봉지 사용을 없애야 할 것이다.
 
물과 전기 사용도 줄여나가는 것이 우리가 작게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작은 실천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행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자연이 우리의 한 가족이라는 공감의식을 가질 수 있다.
 
물고기와 고래 등 해양생물들이 인간이 버린 일회용품,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바닷가로 떠내려오는 장면을 보지 않았는가? 교회에서 자연도 우리와 한 가족이라는 것을 목회자들이 선포하고 인간의 구원에 대해 안타까워 하듯, 자연의 구속에 대해서도 동일한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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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3 [14:25]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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