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에서 기독교 문화 사역자로
 
글|주경식,사진|권순형
▲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하다 결혼 후 호주로 이민 온 발레리나 안준영씨는 지난해 부터 God’s Image사역을 펼치며 기독교 문화 사역자에 앞장서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 원장을 쏜리연합교회에서 만났다. 그녀는 원래 김명동 기자(편집인)가 인터뷰를했다. 하지만 김명동 기자가 갑자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인터뷰 기사를 쓰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졸지에 기자가 다시 인터뷰를 떠맡았다.
 
기자도 그렇지만 인터뷰를 두 번이나 하게 된 안준영 집사(시드니새순장로교회)에게는 더욱 미안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싫은 기색 하나없이 부산 사투리를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사역에 대해 소탈하게 말하는 그녀를 대하며 참 순수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용과의 인연

 

안준영 원장은 네 자매의 딸 부잣집 둘째이다. 없는 형편이었지만 개화된 어머니를 둔 덕에 자매들은 모두 음악 하나씩은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둘째 딸 안준영은 이상하리 만치 음악에는 도무지 관심이없었다. 언니 동생들은 모두 피아노를 기본적으로 배우고 음악에 달란트들이 있어 현재 지휘자로 반주자로 교회에서 나름 열심히들 봉사하고 있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저희 엄마는 지금 시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깨어 있는 분이에요. 뭐를 적게 먹더라도 너희 시대의 여자들은 전문인이 돼야 된다. 그래서 딸들에게 예체능이나 저희가 하고 싶은 것들을 가르쳤어요.

 

▲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안준영 씨. ©안준영    


없는 형편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저희들에게 전부 피아노도 가르치고 두루두루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했어요. 집안이 아주 넉넉한 게 아니어서 저희들을 가르치려니 생활비를 아껴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반찬은 매일 안 좋게 나왔어요.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하셨어요. 그런데 언니 동생들은 전부 피아노를 잘 치는데 저는 피아노가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피아노 학원을 한 번도 안갔습니다. 대신 주산, 태권도, 미술 모두 배워보았는데 3개월을 못 넘기는 거예요.
 
그런데 무용은 너무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9살 때 엄마에게 무용을 하겠다고 해서 무용학원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무용은 한 번도 싫증내지 않고 쭉 해온 것입니다.”
 
신기했다. 다른 자매들은 모두 피아노를 배우고 음악적 재능에 관심을 보였는데, 유독 안준영 원장은 음악에 왜 관심이 없었을까? 대신 그녀는 자매들의 음악적 재능과 달리 무용에 빠져들었다.
 
“되짚어 보면, 아마 제가 무용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이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돼요. 제가 4, 5살쯤 되었을 무렵인데 지금 저희 부모님이 다니시는 가야성안교회가 40년 전 개척한지 얼마 안되었 때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발표회를 했었어요.
 
그때 제 또래의 아이들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엄마에게 나도 저기에 올라가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가 안된다는 거예요. 저는 연습을 안해서 안된다는 거예요. 저는 거기에 너무 올라가고 싶은 열망이 강했는데 안된다고 해서 서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녀의 고백대로라면, 그녀는 끼가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선보이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렸을 때 한 번씩 배워보는 피아노, 주산, 미술, 태권도 등등을 거쳤지만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유독 무용에 끈기를 가지고 빠져들었다. 

 

국립발레단, 제 실력으로 들어간게 아니에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내내 다행히 무용에 관심을 두고 포기하지 않고 무용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예체능으로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인지 알고 있다. 마음씨 좋은 아빠라도 딸이 예체능으로 대학을 진학한다고 하니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제가 눈치를 보니 아빠가 부담스러우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무용을 얼마간 그만두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무용할 때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그랬어요.

 

‘엄마,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다행히 무용을 계속 할 수 있었어요. 제가무용을 열심히 해서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는 점수가 되었지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살려면 기숙사비, 생활비, 학비 등 여러 가지로 집에 부담이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엄마와 상의한 후 부산대학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부산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녀는 부산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했다. 부산대학도 국립대학으로 내노라 하는 좋은 대학이지만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들을 가고 싶은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녀는 집안을 생각해서 자신의 욕심을 접고 부산대학을 열심히 다녔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기회를 주셨다. 서울의 내노라 하는 대학에서도 쉽게 들어 갈 수 없는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단원으로 뽑히게 된 것이다.

 

▲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후 단원들과 기념촬영(앞줄 가운데 안준영 씨)             ©안준영    


“국립발레단은 마치 무용계의 사법고시 같은 거예요. 날고 기는 사람들도 국립발레단에 들어가기 어려워요. 단원도 많지 않은데다가 매년 단원을 뽑는 것도 아니에요. 정체된 해에는 한 명 뽑는데 몇 백 명씩 지원을 하니 그 경쟁률이 어마어마하죠.

 

그런데다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모두 똑 같은 하얀색 발레 옷을 입고 서양인, 동양인도 아니에요. 똑 같은 한국사람들이 키도 비슷하잖아요. 물론 조금 크고 작은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비슷해요. 그렇게 무대 위에 쭉 서면 부모도 누가 자기 자식인지 찾기 힘들어요. 선생님도 자기 제자를 구별하기 쉽지 않아요.
 
그리고 국립발레단에 지원할 정도면 모두들 잘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똑같은 옷을 입고 시험을 보는데 심사위원들도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팔다리가 긴 것도 아니고 비주얼도 좋은게 아닌데,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뽑아 주셨을까?
 
교수님들도 자기 제자가 있고, 또 자기 제자의 제자가 있고 그런 관계들이 다 있거든요. 거기서 제가 어떻게 뽑혔을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제 실력으로 안 갔다는 것을 제가 고백할 수 밖에 없죠.

 

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제 실력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지원한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에 뽑혔다. 그리고 겸손하게 그게 자기 실력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기자가 보기에 그의 고백은 예의상 겸양지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 국립발레단 신인 단원 시절 최태진 단장(뒷줄 가운데)과 단원들. ©안준영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자기가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에 들어갈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한껏 뽐낼 텐데 오히려 그녀는 자기는 스펙이나  비주얼이나 여러모로 부족한데 자기가 뽑힌 건 기적이라고 한다.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격앙된 목소리로 에피소드 하나를 더 소개했다.

 

“제가 에피소드 하나 더 얘기할께요. 시험장에 와서는 다 토우슈즈(발레슈즈)를 외제 슈즈를 신어요. 다들 예뻐 보이려고 그렇죠. 그런데 저만 토우슈즈를 국산을 신고 온 거예요. 저는 몰랐어요. 저는 그냥 제 발에 편하니까 국산을 신고 갔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고요. 처음엔 사람들이 왜 쳐다보나 몰랐어요. 알고보니 제 토우슈즈만 국산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예쁘게 보이려고 외제 토우슈즈를 신었는데 발레는 포인트가 중요하거든요. 외제 토우슈즈가 더 예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국산을 신고 시험을 봤어도 제 발이 심사위원들에게 예쁘게 보이게 하셔서 저를 뽑히게 해주신 거죠.”
 
안준영, 그녀의 고백대로라면 그녀는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에 기적처럼 뽑히게 되었다. 실제 그녀는 부산대 출신 중에서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에 들어간 첫 번째 발레리나이다.

 

결혼 그리고 이민

 

발레리나로서는 최고의 스펙으로 인정받는 국립발레단의 단원으로 그녀는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했다. 국립 발레단 안에서도 여타 사회처럼 서로 좋은 주연을 맡기 위해서 경쟁과 시기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가 맡은 역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맡은 일에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가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사람은 단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더에게는 안준영 같은 성실한 단원이 가장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그만둔다고 할 때 단장님이 말리셨어요. 조그만 더 하라고 앞으로 솔리스트 역할도 많이 주겠다고 하셨어요. 얼마나 좋아요. 저같이 안 빠지고, 말 잘 듣는 그런 단원들만 있으면 단장님이 발레단을 이끌기가 쉽겠죠. 그래서 제가 그만두려고 할 때 많이 말리셨어요. 제가 일 년만 더 있으면 퇴직금도 더블로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두었어요”
 
국립발레단 생활을 4년을 하고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었다. 그녀는 순진하고 의리있는 여자였다. 초등학교 시절 주일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국립발레단의 잘나가는 발레리나요, 발레단과 교회밖에 모르는 착한 그녀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출석하는 잠실중앙교회의 지인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산 모교회인 가야성안교회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중매를 하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도 그녀는 그 흔한 소개팅 한 번 안했다.
 
그녀가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겠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에서 유학 중인 친구는 그해 12월에 곧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이듬해인 1999년 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3월에 호주로 같이 들어왔다.

 

최초로 NSW 주립 발레단과 공연한 한국인 발레리나

 

▲ NSW 객원 주립발레단원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가장 잘 알려진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주연 헬레나 역을 맡은 안준영 씨 (2002. 1.)     © 크리스찬리뷰

 

결혼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시드니로 들어온 그녀는 무료했다. 남편의 권유로 운전도 배우고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파라마타에 있는 NSW 주립 발레단 연습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NSW 주립 발레단 연습실은 오픈 되어 있는 공간이라 발레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연습할 수 있는 제약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개인 연습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NSW 주립 발레단 단장의 눈에 띄고 만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해 NSW 주립발레단의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디션도 거치지 않고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데 단장님이 저를 주연으로 픽업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오디션을 통해서 공연자들을 뽑았는데 저는 공개채용 전에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발탁을 한 거예요. 제가 영어를 못하니까 남편을 데려오라 해서 남편하고 같이 가서 계약서 쓰고 NSW 객원 주립발레단원으로 ‘한 여름밤의 꿈’에서 엘레나 역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우연히 발레 연습실을 찾아 연습하던 그녀가 단장의 눈에 띈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갈고 닦은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 이억만리 호주 땅에서도 인정받게 된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그녀는 NSW 주립발레단에서 공연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자세한 기사는 크리스찬리뷰 2002년 2월 호에 게재되어 있다)

 

▲ 한국인 최초로 NSW 주립발레단의 ‘한 여름 밤의 꿈’ 공연에서 열연한 안준영 씨.     © 크리스찬리뷰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

 

안타깝게도 NSW 주립 발레단은 재정 부족으로 이 공연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호주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안준영은 NSW 주립 발레단 마지막 공연의 주연으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공연을 통하여 그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드니에 한국인이 발레를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레를 배우기 원하는 한인 학생들을 위하여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캠시에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를 개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 연말 캠시 오리온센터에서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 발표회를 개최했는데 천 명이 넘는 동포들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는 17년이나 지속되었다. 장소도 처음에 시작한 캠시 스카우트 홀에서 점차 한국인이 늘어난 스트라스필드 러시안 클럽으로 옮겼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안준영은어느덧 네 자녀를 둔 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2018년을 끝으로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에서 발레를 가르치고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치던 안준영 발레 아카데미를 완전히 접었다. 대신 그녀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생겼다.

 

▲ 안준영 댄스 아카데미 첫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후 가진 기념촬영 (1999. 12) ©안준영    

 

“제가 발레를 전공했는데 호주에 와보니까 한인이 발레를 가르치는 곳이 한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자격증도 따고 아이들에게 발레도 가르치고 복음도 전했죠. 그때에는 복음과 발레를 같이 가르쳐도 불평하는 학부모들이 한 분도 안 계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이 네 명이나 되는데 픽업도 많이 해야 하고, 픽업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고 발레 학원들도 많이 생기고 심지어 자격증이 없어도 가르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이제는 제가 그만하겠습니다 하고 재작년에 완전히 학원을 접었습니다.”

 

God’s Image 사역

 

대신 그녀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God’s Image Ministry이다. God’ Image사역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저의 큰 딸이 6학년쯤 되었을 때 K-pop, 싸이가 한참 유행했는데 아이가 너무너무 그 춤을 추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이트에 들어가 그들의 댄스를 보게 되었어요. 물론 선정적이고 자극적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가사며 춤동작이며 하나같이 어떻게 이런 걸 아이들이 따라 하게 할 수 있을까? 그날 저녁에 제가 그것을 보고 밤새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제가 딸에게 그랬어요. 엄마가 좋은 댄스를 만들어 줄테니까 그 댄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6~7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야 약속을 지키게 된 거죠.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이 사역을 피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지음 받았는데 그런 안 좋은 노래들을 따라 춤을 추면서 무의식 속에서 사탄의 춤을 추게 됩니다. 제가 무용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이 분별없이 이런 문화에 빠지는 것이 너무 너무 안타까운 거죠.
 
‘God’s Image 사역’은 미국 LA에서 30년 전에 한 목사님 사역자 부부가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에는 깨어진 가정, 버려진 아이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 중독에 걸린 아이들도 많고요. 이런 아이들이 ‘God’s Image’에 가서 회복되고 바르게 고침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 시드니성시화운동이 개최한 크리스찬 댄스 페스티벌에 찬조 출연한 안준영 씨 (2008. 3 힐스센타)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성시화운동이 개최한 크리스찬 댄스 페스티벌에 특별출연한 안준영 댄싱팀의 워십댄스.     © 크리스찬리뷰


제가 오래 전에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 제부의 아이가 거기에 가서 변화된 것을 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목사님에게 이것을 호주에도 세워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저보고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몇 년 동안 미루어 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사역을 하라고 하시는 것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God’s Image Ministry 홈페이지(www.godsimage.org)를 들어가 보았다. 그곳의 역사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God's Image는 미국 한인 교포 2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구성된 찬양과 댄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뮤직 미니스트리다.

 

▲ God’s Image Ministry 호주지부 팀원들과 함께한 안준영 원장(앞줄 중간)     © 크리스찬리뷰


1990년 변은경 (Sandy Byon)사모 지도 아래 12명의 아이들이 추수감사절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고 그 후 발전하는 가운데 2000년도부터 주정부에 등록된 정식 선교단체로 서게 되었다.
 
변용진 목사의 지도 아래 어린 영혼들이 음악이란 도구를 통해 주님을 증거하며 또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님의 일꾼으로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청소년 음악 사역 단체이다.
 
God's Image는 그동안 수많은 해외공연 및 미주 순회공연을 가졌고 또한 그곳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는데 힘써왔다. 그 결과로 이젠 미주와 해외 지부들이 탄생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청소년들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다.”

 

▲ God’s Image Ministry 호주 지부 팀원들을 지도하는 안준영 원장     © 크리스찬리뷰
▲ God’s Image Ministry 호주 지부 단원들의 연습 장면     © 크리스찬리뷰

 

▲ 미국에서 활동 중인 God’s Image Ministry 팀의 공연 장면-1 ©GIM     © 크리스찬리뷰

 

▲ 미국에서 활동 중인 God’s Image Ministry 팀의 공연 장면-2 ©GIM     © 크리스찬리뷰


오랜 세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잘 안다. 그리고 이 땅의 방황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또 한편 세상의 어두운 문화를 접하며 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이 사역이 부담스러워 자기의 사명이 아니라고 피하기도 했지만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세상은 나날이 빠르게 변해 가는데 크리스찬 문화는 아이들에게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혼탁한 세상의 문화에 생각없이 빠져들게 되고 사탄의 춤을 추게 됩니다. 이게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고 춤추고 해야 하는데 그럴 때 우리의 춤과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데 인도자가 없으면 아이들이 그것을 못 깨닫고 악한 세상에 그냥 방치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사역은 부모가 먼저 깨달아야 해요.
 
우리 아이들이 무의식 가운데 따라하는 세상의 춤과 동작들을 통해 그들의 영혼이 악한 것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춤과 찬양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God’s Image 사역은 2019년 정식으로 호주에서 시작했다. 현재 4명의 High School 학생들과 1명의 대학생 그리고 1명의 6학년 학생, 이렇게 6명이 정기적으로 모여 말씀과 비전을 나누고 찬양과 댄스들을 배우며 공연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안준영 집사는 인터뷰 말미에 ‘아이돌’ ‘K-Pop’ ‘BTS’에게 영혼을 빼앗긴 자녀들, 호주의 방황하는 아이들, 춤과 댄스와 노래로 하나님을 경배하기 원하는 청소년들 이들 모두 ‘God’s Image 미니스트리’에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녀들을 보내고 싶은 분들, 사역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 후원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문의처로 연락하면 된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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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24 [12:5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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