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 시대의 북한 선교 어떻게 해야 할까?

북한에서 종신형 선고받고 2년 7개월간 억류되었다 석방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2/24 [16:15]

북한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간 북한 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임현수 선교사(토론토 큰빛교회)가 지난 2018년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세계선교사대회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북한 선교의 아이콘으로 평가되는 임 선교사로부터 대북선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그가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담은 고직한 선교사가 맡았다. 이 인터뷰는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이사장 손봉호 장로)에서 발행하는 ‘월드뷰’ 217호(2018. 7)에 보도된 기사로써 인터뷰어 고직한 선교사(사랑의교회 협력선교사, 청년목회자연합 상임대표, 한국유스스페셜티즈 대표)로부터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편집자 주>

 

▲ 북한에 2년 7개월간 억류되었던 임현수 목사(토론토 큰빛교회 원로목사)가 석방후 말씀을 전하고 있다.©국민일보  


- 요즘 북한 선교에 대한 두 개의 시각이 존재합니다. 평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선교는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선교는 정치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현수 목사님께서는 북한에서 영어교원 강습소를 운영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씀부터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북한 사역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효과적인 열매를 맺었던 것이 영어교원 강습소입니다. 북한에 있는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들을 훈련시켜달라고 북한에서 요청했었습니다. 한 번에 200명씩 두 달간 전국의 선생님들을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훈련시키는 일을 수년간하면서 약 1,500명 정도의 교사들을 교육했습니다. 제가 억류된 이후 계속되지는 못했습니다. 교육받은 선생님들 중에서 매년 10여 명을 선발해 캐나다에서 2년씩 어학 훈련을 한 후, 마스터 선생으로 만들어 주는 계약이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성경 이야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노아의 홍수나 다윗과 골리앗 등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미있게 듣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마음을 열면 개인 간의 접촉을 통해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오셨지요? 제가 미국에서 들었던 내용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지하교회 성도들과도 자연스럽게 교류하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150여 차례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 지하교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LA에 살며 북한을 200번 정도 다녀오신 서 권사님이라는 분께서 가족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시며, 지하 교인들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600여 가정을 찾았고 나중에 통일되면 교회로 쓰기로 약속하고 어렵게 살고있는 50여 가정에게 집을 사주었습니다.”


- 북한의 기독교인은 어느 정도로 추정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몇 천 명 정도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변방에 중국인들이 사명을 받고 북한에 들어와 선교를 하는 분들도 꽤 많아 교인들이 제법 될 것입니다. 북한 측에서도 자기들이 250개 정도의 가정교회가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바로 이런 분들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기독교인들을 파악하고 감독하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 있던 어느 날 저에게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분은 자신이 2만 명 정도의 성도를 데리고 있는 북한 교회의 지도자라고 주장한 후 명단까지 보여주며 김정일을 죽이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순간 섬뜩했습니다. 마치 히틀러를 죽이려고 했던 본 훼퍼처럼 말이죠! 그분들이 김정일을 제거하기 위해 무장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입장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장을 하고 그들의 지도자를 죽이는 것은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 혹시 그런 정보가 누출돼서 억류되신 것은 아닌지요?
 
“아닙니다. 그건 오래 전 일입니다.”
 
- 목사님께서는 그동안 150여 회 이상 북한을 방문하시면서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해오셨고 북한 측에서는 그것을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목사님을 억류했던 명분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명분은 최고 존엄 모독죄였습니다. 저는 억류되기 전에 “김일성 대신 하나님을 믿고,김정일 대신 예수님을 믿고, 당 대신에 교회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북한에 예배당을 짓기 위해 헌금 하는 것보다 우선 북한 주민들을 살려놓아야 하지 않겠나? 다 죽은 후에 무슨 전도를 하나?” 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는 4만 3천 개의 혁명사적관이 있습니다. 동네마다 주민을 교육하는 곳인데 예배당처럼 생겼습니다. 그곳에 십자가만 달면 바로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당 짓는데 많은 돈을 들일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을 살리는데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을 했던 영상을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려놓았고, 북한이 입수해서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일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수령과 인민 사이를 갈라놓았다고 주장하며 특대형 국가전복 음모죄를 씌웠습니다. 또 캐나다 본 교회(큰빛교회)에 왔던 탈북자들 중 한 사람이 북한에 돌아가 저희 교회 얘기를 전했습니다. 제가 캐나다의 수상과 장관들을 만나 탈북자들의 법적 신분 해결에 도움을 준 것을 가지고, 반동분자들을 돕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구걸했다는 죄명을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제 국적이 캐나다인이다 보니 죽일 수는 없어서 종신 노동 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또 제가 북한의 어떤 유엔 대사와 가족같이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을 전도한 것이 드러나 대사를 전도했다는 죄목까지 덧붙였습니다.
 

▲ 북한에 억류된 임현수 목사가 '특대형 국가전복음모행위' 혐의로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무기노동교화형(종신노역형)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18년 동안 활동하며 굉장히 조심했기 때문에 별다른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으니까 그들은 제가 CIA와 관계가 있는지, 국정원에서 돈을 받았는지를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국정원에서 일하던 고위 관리와 통일부 장관을 제가 알고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에서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이런 죄명을 만들려고 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으니까, 결국은 죄명을 씌우지는 못했습니다.” 
 
- 노동교화형을 받아 겨울에 땅 파기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땅을 파게 하는지요? 그 밖에 구타나 가혹행위는 없었는지요?
 
“땅 파기를 시킨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강제로 노동을 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 두 달 동안 노동 강도가 엄청나서 손발이 다 망가지고, 몸무게는 23kg 줄고, 발가락에는 동상이 걸리고, 팔을 움직일 수도 없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구타는 없었습니다.”
 
- 목사님은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 고생을 해보셨기 때문에 견디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토 웜비어는 식중독이었지만 어리고 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네, 그는 두 달 만에 식중독으로 식물인간이 돼서 결국 미국으로 돌아간 지 일 주일 만에 죽었습니다. 저는 웜비어의 재판 과정을 북한 병원에서 지켜봤습니다. 하루 종일 북한 전역에서 “미국 사람 하나 잡았다”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웜비어가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와 일 주일 만에 사망하고, 그것이 미국의 여론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런 상황과 캐나다 정부의 도움이 맞물려서 목사님께서 석방되신 것은 아닐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북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첫날... 그날이 가장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 북한에 억류중 CNN과 인터뷰한 토론토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 CNN TV화면 캡쳐.    


 
첫날 들어갈 때 제게 죄수라며 고개를 들지 못하게 머리를 마구 때리고 땅만 보도록 했습니다. 옆 건물조차 쳐다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언제나 고개를 숙인 웅크린 자세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첫날 밤에 하나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놀라운 꿈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 꿈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꿈으로 저를 버티게 하셨습니다.
 
얼굴만 보이는 커다란 호랑이가 나타나 침을 흘리며 뭔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 호랑이 입 앞에 제가 아주 작은 존재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저를 잡아먹지 않고 쳐다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뒷걸음으로 한참 동안을 도망쳤습니다. 땅 속으로 한참을 도망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예수님의 손이 제게 찾아오더니 땅 속에서 저를 땅 위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숲이 울창하고 강이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는데, 제가 불그레한 황금빛 두꺼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저만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옛날 CCC 간사를 할 때 여학생 한 명을 개구리처럼 생겼다고 ‘깨구리’라는 별명을 붙여줬더니 그 친구가 약이 올라 저를 ‘두꺼비 간사’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두꺼비 간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갈릴리에 가서 고기 잡을 때 새벽에 오셔서 식사하시기 전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며 옛날 이름을 부르시며 말씀하셨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회복을 바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젊었던 시절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첫사랑의 회복을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영혼을 사랑했던 순수한 전도자로 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감옥에서 '언제까지 저를 이곳에 두시겠습니까?'하고 기도드릴 때마다 제게 주셨던 말씀이 욥기 23편 10절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였습니다.
 
후에 붉은 황금빛 두꺼비 이야기를 들은 한 금은방 주인이 제게 ‘목사님 요즘에 제일 비싼 금이 로즈 골드입니다’라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 꿈을 통해 저는 주님께서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저를 건지실 것을 알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꾼 이후 감옥 생활을 시작하는 첫날에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데 큰 시곗바늘의 톱니바퀴가 척 척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divine schedule)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이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제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날부터는 시간을 한 시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기도하면서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혼자 예배를 드렸는데 몇 천 명씩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혼자서 예배를 드리려니 처음에는 참 괴로웠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축복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찬송가도 그동안 PPT만 보고 부르다가 혼자 부르려니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우기 시작해서 80개 정도의 찬송가를 외워 적어놓고 700개 정도의 강의안을 외워 만들고 성경책도 써서 만들었습니다.”
 
- 성경과 찬송가를 전혀 주지 않았나요?
 
“네, 조사받는 동안은 김일성 책만 보았고 성경책은 일 년쯤 지난 후에 받았습니다. 참 긴이야기인데 그렇게 나오는 날까지 40여 년 동안 목회했던 것을 기억에만 의존하며 노동하면서 외워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종이도 없고 연필도 없어서 계속 반복하다 보니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마 여기 살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올 때 1천300페이지 정도 정리해 적어놓은 것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성경책 안에도 700개 정도를 강의안 첫 글자의 이니셜만 따서 원고를 만들어 끼워 놓았었는데 그것도 모두 뺏겼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하나님 이것은 제가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같이 소장이 그종이 한 장만은 가지고 가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다 빼앗겼지만 성경책과 그 안의 원고만은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져온 것을 돌아오자마자 정리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TMTC입니다.
 
제가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 해야 할 비전이 TMTC (Total Mission Training Center)를 만들어서 전인적 선교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평신도 선교사가 세계적으로 40만 명 정도 됩니다. 앞으로 100만 선교사 시대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금 평신도 자원은 넘쳐나는데 모두 병아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힘차게 날개짓을 할 수 있는 독수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의 교인 중에서 70명 정도를 선교사로 만들어 내보냈는데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다고 했지만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남은 생애 동안 이 일에 헌신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들포도 열매를 맺지않고 이제는 최상품의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 아주 훌륭하신 뜻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시고 얼마나 지나서 곧 풀려나지 못할 것을 아신 것입니까?
 
“몇 개월 정도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재판이 바로 시작됐고 사형 선고를 받고 얼마 후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동안 북한에 좋은 일을 했었기 때문에 제게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그리고 조사하던 최고 책임자도 당신이 한 좋은 일이 많으니 참작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러 가지 감언이설로 인터뷰 원고를 써가지고 녹화를 하기도 했지만 모두 저를 이용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잠시 묵도를 하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고난이 떠올랐습니다. 순간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잔인하고 모순된 재판에 비하면 억울한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니 엄청난 중압감이 사라지면서 가벼운 깃털 하나가 제 어깨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돌아간 날 밤에 꿈을 꾼 것입니다. 그 꿈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 캐나다 한빛교회 성도들이 임현수 목사의 무사 귀환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다.©한빛교회    


 
그렇게 감옥으로 돌아가 첫 두 달 동안 돌덩이처럼 꽁꽁 언 땅을 팠습니다. 그곳이 산속이라 굉장히 추운데 두어 달을 그렇게 했더니 손이 온통 피투성이에 손가락이 모두 망가지고 인대도 끊어지고 몸무게도 23kg이 빠졌습니다. 또 동상이 걸렸는데 양말을 4개씩 겹쳐 신고 비닐을 덮어도 발가락이 어찌나 시리던지 그것이 제일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의사 말이 조금만 늦었으면 발가락을 모두 절단했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감당치 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으셨으니 그것도 은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제가 엉뚱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땅속 1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에 엎드려 ‘하나님 이번 생일에는 제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제게 은총의 표적을 보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기도 응답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두 달 동안 있으면서 성경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잠자는 시간 외엔 성경만을 읽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이틀 후가 제 60살 생일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으면서 2천757끼니의 식사를 독방에서 혼자 했는데 딱 하루, 그날 생일날 저녁에 간수가 바깥에서 음식을 구해와 커다란 상에 진수성찬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제게 은총의 표적을 보여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 임현수 목사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에 세계각국에서 16만 5천 명이상이 참여했다.    ©한빛교회    


 
그 안에서도 나름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성경책만 보고 있으니까 저를 위협하던 교도소 간수들이 성경책 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령님을 무시한다며 저를 고사포로 쏴 죽이고 싶다고까지 했던 한 조사관은 제 앞에서 두 번이나 울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독한 김일성 신봉주의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서양에서 온 신 믿지 말고 조선의 하나님인 수령님을 믿으라.’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간수만 가는 목욕탕에 저를 데리고 가서 ‘이번 일만 아니면 당신은 내가 정말로 친구 삼고 싶은 사람이다.’라며 때를 밀어주었습니다. 그런 말을 수십 번 들으면서 이들이 변하고 있다는 증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깨질 것 같지 않던 그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진동, 충격, 분리, 파쇄의 첫 글자를 따서 ‘진충분파’라는 4자 성어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저를 조사를 하는 동안에 심양과 북경에 있는 북한의 해커들을 통해 저에 관한 모든 자료와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5년 동안의 설교 내용을 전달받아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제 죄를 캐기 위해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내용을 들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생각에 진동이 오고 충격을 받은 후 금이 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목사님께서 기적적으로 돌아오셨는데 그 무렵에는 나오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들은 저에게 절대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갖지 말라고 하면서 감형돼도 15년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공갈과 협박을 해서 낙심하기도 했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소망은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 그곳에서는 캐나다 정부와 스웨덴 쪽의 움직임은 전혀 알 수 없으셨나요? 그리고 나오시고 나서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웜비어가 죽은 사실도 나오고서야 알았습니다. 나온 첫날 괌 공군기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그날 저녁 김정은이 괌을 폭격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당시는 정신이 없었을 때라 전날까지 벌레가 우글거리는 감옥에서 자다가 갑자기 5성급 쉐라톤 호텔 특실에서 자려니 문화 충격을 받았고, 저도 모르게 북한 주민들이 생각나서 눈물을 흘렀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 사실도 북한이 얘기해 줘서 알았는데 박 대통령 탄핵을 그들이 앞장서서 선동을 하며 TV를 통해서는 입에 담지 못할 막말로 공격하는 것을 매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보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떨어지는 법은 없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에, 일단 만남이나 대화 지체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제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전제에 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않고 있는 점입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문제라든지, 아직 억류되어 있는 6명의 한국인의 석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하고, 수만 명의 국군 포로 문제 등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들이 북한의 속죄나 겸허한 반성 없이, 전제 조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남남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
 
남한에서는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김일성 우상화가 극에 달해서 지구상에 그런 종교가 없고 그런 광신도가 없습니다. 3만 2천 개의 동상을 세우고 4만 3천 개의 혁명 사적관을 만들어 놓고 주민을 굶겨 죽였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으로 주민들을 먹여 살렸다면 아무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상화 작업을 위해 350만 명의 생명과 바꾼 것입니다. 그 작업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데 그런 일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단이 없다면 절대로 남한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150회 정도 북한을 다니면서 207개 군 단위까지 거의 다 지나가 보았습니다. 평안북도 구장군에서는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제 눈으로 수백 명을 보았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아이들이 소리 없이 죽어 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 집 건너 한 사람씩 배고파 쓰러져 신음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다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평양 밖의 북한 주민들의 삶은 너무 비참하고 불쌍해 보였습니다. 어떤 날 고난의 행군 때 보았던 군대도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 정권 차원의 교류와 민간 기구의 노력과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나 북한 선교 문제를 적극적으로 민간 기구가 이야기하는 것이 정부 대표가 북한과 대화를 할 때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떠십니까? 지금 평화 회담이 진행되는 시기에 무슨 인권이고 무슨 선교냐 하는 시각이 있는데 제가 볼 때에는 그것은 균형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이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절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은 언제나 분명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은 무조건 도와야 하지만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국군 포로나 탈북자 문제에 정부가 너무 무관심한 듯한 태도에 화가 납니다.
 
우리 국군 포로가 6만 명이나 되는데도 그들의 생사 확인도 전혀 못한 채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미국 정부는 5만 명의 미군 전사자와 8천 명이 넘는 행방 불명자의 뼈라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지불하며 유해를 사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미국 시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임현수 목사(왼쪽)는 북한 농민들에게 특수작물과 고소득 작물을 심어 먹고 사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 북한 땅에 블루베리를 심었다. ©국민일보   


 
그런데 심지어 김대중 정부 때는 남한에 남아있던 비전향 장기수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북한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한에 대해서 쓴 책을 읽어봤습니다. 그들은 전국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남한에 대한 흑색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조건 없이 보내주면서 왜 억류되어있는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는 풀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이런 인권 문제들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김정은의 생명’이나 ‘북한 주민 한 사람의 생명’이나 결국 모두 같은 귀한 생명인데 어떻게 수십만 명의 주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지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저는 2005년 7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제1회 ‘북한인권 국제대회’에 참석했었습니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 때라 사회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 문제는 기독교인인 제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믿는다면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국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예전에 비해 북한 인권 문제가 열려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국 안에서는 북한 인권법 등이 제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같은 평화적 분위기 속에 북한과 해결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산가족 문제가 무엇보다 먼저 다뤄져야 합니다. 이것처럼 시급한 인권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독재 왕조국가입니다. 이들은 세계를 속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마귀가 하루 아침에 천사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 북한에 억류된 임현수 목사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며 기독교시민단체협의회가 통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2015. 3.19) ©국민일보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속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경이 전달되기 전 10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제가 그들에게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책을 요청해서 100권 정도 읽었습니다.
 
‘인민들 속에서’라는 책은 김일성의 8천640일 동안의 현지 지도 기록인데 이것을 보면 그리스도의 흉내를 얼마나 잘 만들어 냈는지 완전히 적그리스도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김일성처럼 위대한 인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 보면 오직 김일성 외에는 그 누구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김일성의 사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혁명의 이름으로 처단해 버리는 무서운 집단입니다.
 
책 100여 권과 다큐멘터리 300편 정도를 보고 나니 북한의 80년 역사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에 관해 알게 되었습니다. 김형직은 숭실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선교사를 몰아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는 철저한 안티 크리스찬이었습니다. 그는 아들 김일성에게 권총 두 자루를 유산으로 물려주면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북한의 통치철학은 그 반대로 무장하는 것 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선군정치 철학이 나왔고, 그것이 대대로 이어지는 유훈 통치 철학이 되어 오늘날 원자탄까지 만들게 된 것입니다.”
 
- 그렇다면 김형직이나 부인 강반석은 기독교인은 아니었나요?
 
“강반석의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기는 했지만 그리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칠골교회 장로였고 목사도 그 집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김일성 회고록에 보면 자기 어머니와 저녁예배에 참석했을 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당시 십 대의 소년이었던 김일성이 예배시간 내내 졸고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나요?’했더니 그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기는 뭘 믿니?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하니까 잠 좀 자려고 예배당에 온 거지.’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김일성의 어머니는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은 황장엽 선생이 탈북한 이후에는 주체사상을 주민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지만 70년 동안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주체사상만을 주입시켜 사고 자체가 제 기능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 지금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근본적으로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이 접촉할 수 있는 매스컴이라고 해봐야 북한 중앙 방송 1개 정도이고 하루 10시간 정도 방송을 하는데 TV를 보는 것이 너무 지겨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김일성 찬양만 서너 시간씩 매일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정보도 거의 없고 중국이나 장마당을 통해 외부의 소식을 전달한다고는 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반화되지도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국경 근처에서 좀 정보가 오고 가지만 그것도 아주 조심스러워합니다. 대부분 주민들의 눈과 귀가 막혀 있습니다. 거의 정보가 차단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 신천지나 통일교 등은 통일을 대비해 벌써 북한에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 교회의 북한 선교 전략과 함께 한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교회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극히 제한적입니다. 한국 교회들이 많은 일을 했는데 결국 이것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중앙 노동당을 도운 꼴이 됐습니다.

 

▲ 31개월 동안 북한에 강제 억류당했다가 풀려난 캐나다 국적의 한국인 임현수 목사가 2017년 8월 13일(현지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의 큰빛교회에서 열린 일요예배에 도착해 신도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예를 들면 어느 장로교 측에서 수십억을 모금해 봉수 교회를 짓는다고 하면서 헌금한 것도 결국은 노동당에 돈을 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김일성 대학교에 신학교를 지어 준다고 하면서 돈을 대주었고, 어떤 교회는 심장 병원을 지어 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북한에 방문할 때마다 가보면 10년째 골조만 올려놓고 진행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평양에 병원을 지어 놓으면 지방 사람들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평양을 맘대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느라 돈을 퍼주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것을 탈북자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양에 이런 시설을 해봐야 평양 밖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통제가 엄청나게 심한데다 지역을 벗어날 수도 없고,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자기 집을 조금만 벗어나면 통행증을 받아야 하니 북한 전체가 감옥처럼 불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평양 바깥으로 나가면 지금도 목탄차가 시속 10km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북한 실상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의 증언이니 굉장히 공감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가 심지어 교회까지도 남남 갈등이 엄청나게 심합니다. 그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무엇이든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본질성이 변질되기 시작하면 교회도 별짓을 다하게 됩니다. 교회가 사상과 이념이라는 정신적인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있으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어느 날 부활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가 이때니이까’하고 물었을 때 ‘그것은 너희 알 바 아니다’ 하시며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꿈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정치에 민감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혼 구원은 아닙니다. 지금 천만 기독교인이 본질인 복음은 전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깜짝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비디오를 통해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에서 아주 유명한 남한의 목사님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이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짜를 위한 가짜가 없듯이 우리가 가짜를 분별할 수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목사라고 다 믿을 수 없고 엉터리 선교사도 많아 이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름을 내세워 무엇을 한다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결국 복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 없이 기독교인을 가장해서 종교를 마치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기독교 단체들은 북한 선교를 마치 007작전처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반대합니다.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인데 북한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아주 작은 성경책을 만들어 몰래 전달하는 행동은 도리어 의심을 사는 것입니다. 선교는 떳떳하게 해야 하고 담대하고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임현수 목사가 13일(현지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의 큰빛교회에서 열린 일요예배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다.©AFP 연합뉴스     © 크리스찬리뷰


북한 당국자가 제게 아주 작은 성경책을 가져와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몰래 합니까? 그러니 우리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성경책을 못 읽게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라고 했지만 그러나 복음을 숨어서 몰래 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하 조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몰래몰래 숨어서 숨죽이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내어 놓고 복음 전하다가 때리면 맞고 감옥에 넣으면 들어갔고, 천사를 통해 끄집어내면 다시 복음을 외쳤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나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믿음을 갖고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에 대해 타협하기 시작할 때 능력이 거세되기 때문입니다.”
 
- 목사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TMTC라는 단체를 통해 평신도 들에게 선교사 훈련을 시켜 활동할 계획입니다. 제가 감옥에서 나오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하와이, 토론토,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아이티, 한국 등 7~8군데를 거점으로 각 지역에서 6개월 정도 합숙을 하면서 농사, 그러니까 자연 농업을 제대로 가르쳐 선교지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자비량 선교를 할 계획입니다. 교회가 월급을 주며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70명을 대부분 자비량 선교사로 보냈는데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또 60, 70, 80대 시니어들도 많이 필요합니다. 자녀를 모두 키워 놓고, 인생의 경험도 풍부하고. 개발도상국 시대를 살았던 황혼기 분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 GTS (gold age, twilight age, silver age)라고 이름 붙여 노년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헌신하는 운동을 일으켜보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시니어 운동을 통해 도전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
 
분명한 것은 교회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부터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는 성도들이 생겨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여러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 역행하고 있습니다. 이교단의 벽을 깨야 합니다.
 
지금도 평양 신학교를 차지하겠다며 다투는 교단들이 백 개가 넘습니다. 이런 성경적이지 않은 것들과 싸우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북문제도 풀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북한 선교 단체들이 너무 많아 정리가 필요합니다. 교회들이 단체를 만들 때 자신들 교회의 목사님을 대표로 세우지 않으면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습니다. 내 이름을 내려고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 보니 돈만 갖다 바치고 결국 이용만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자기 이름을 앞세우려 하지 말고 이런 활동을 잘하는 단체들을 통해 지원하면 됩니다. 월드비전이나 컴패션, 유진벨 재단 결핵병원 같은 곳을 통해 지원하면 됩니다.”
 
- 네. 오늘 북한 복음화를 위한 올바른 방향에 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세계에 있는 디아스포라 교회들과 같이 잘 감당하셨으면 합니다. 긴 시간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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