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박성남 지상전

본지 아트 디렉터 박성남 화백, 사랑의교회 초대전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2/26 [11:22]


일시: 2020년 2월 22일(토)~4월 4일(토)
장소: 사랑아트갤러리 (남측 B5) & 특별전시관 (B4, B5 복도)

 

▲ 작업실에서 박성남 화백. ©박성남    



본지 아트 디렉터 박성남 화백의 초대전이 서울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 사랑아트갤러리와 특별전시관에서 지난 2월 22일부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사랑의교회가 주최하고 이윤아트(주)가 주관하는 이번 초대전은 ‘나팔 불 때’ 층이 빛으로 빛이 층으로」를 주제로 77여 점의 작품들이 4월 4일까지 전시된다.
 
오정현 목사는 전시회에 앞선 인사말에서 “좋은 예술은 삶을 치유한다. 아름다운 자연도 사람들을 치유한다. 그러기에 좋은 예술과 아름다운 자연에는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오 목사는 “박성남 장로의 그림을 보면 소박함과 따뜻함이 점과 선으로 역동하면서도 소외되지 않는 삶의 일상들이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여지고, 들려지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며 “한국인의 소박한 정서를 동서양을 초월한 신앙적 고백처럼 울림있게 그려진 작품들이 너무도 귀하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박성남 화백의 전시 작품 중에서 선별하여 작가노트와 함께 지상전으로 소개한다.<편집자>  


한국인이 가장 공감하는 화가는 박수근이다.
어렵고 힘든 시대다.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이루었다.
잎들이 다 떨어져도 벽공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
나목처럼…
현실을 버티며 부정도 아닌 저항도 아닌
한숨 그대로 겪는 자들의
삶 터를 생생하게 그림에 녹여냈다.
거칠었는가? 투박도 했다.
상처는 단순한 밥그릇처럼 아물어져 갔다.


여는 글 [작가노트] :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 층_생명의 강가로 122x93cm | 2020 ©박성남    



그의 아들이 박성남 화가이다.
피하려 해도 봄은 온다.
그 역시 독학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리려는 것은 무얼까?
그는 말한다. 아버지는 밀레와 같은 화가.
가슴속에 따뜻하게 품어내야 했다.

 

▲ 여호와의 복_헐몬산의 이슬 191.5x1863cm | 2020 ©박성남    


최근 나는
이 시대의 정신과 나만의 조형을 영적으로 재해석 ..
18세 소녀처럼 빛의 예찬 원형질에 들떠있다.
달항아리까지에서다.
전방위적이다.

 

▲ 층이 빛으로 빛이 층으로 165x133cm | 2010 ©박성남    


박진감있게 영성으로 마띠에르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움푹 파인 곳에 자리 잡은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상처가 있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현장이다.
구원까지에로다.
샬롬이다.

 

▲ 층_열방을 향하여 119x90cm | 2010 ©박성남    


한국사 일제강점기에서 보리고개에 이르는 격동기 때다.
아버지 박수근은 어땠을까?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그 이르름 영혼의 강점기 미증유의 시대다.
중심 없는 흑암과도 같은 시대다.
공허 안에 내용이 없어서다.
혼돈 안에 형태가 없다.
흑암 안에도 생명이 없다.
그 모두 주인공은 중심 없는 다원주의가 그 중심에 있다.
이에 반듯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팔을 불 때이다.
어느새.... 나의 그리움..
움푹 파인 곳 원형질에 빛이 마음으로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층이 빛으로 빛이 층으로다. 나는 또 다시 행복해진다.
이 시대의 산 소망이요.
인생의 해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다.


달항아리 [작가노트]

▲ 그리움_층이 빛으로 65.5x71cm | 2020 ©박성남   



인간의 온도는 36.5'이다.
나의 기도 온도와도 같다.
때론 가열찬 나의 찬송도 담아준다.
우유빛 달항아리에서다.
달빛으로 마음 모아 오각을 곱게 갈아 본다.
둥글게 빛난다. 달항아리가 된다.
달항아리는 크게 두 축의 구조다.
찬찬이 보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 층_마르지 않는 샘273x651cm | 2007 ©박성남    


천,지,인 셋이 하나의 구조로 부상한다.
달 떠오름처럼 말이다.
상부는 하늘을 열고 하부는 몸 전체를
땅으로부터 지탱해 준다.
상부는 하늘 지성소로 향해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도형 타원이다.
내가 좋아하는 큰 이유다.

 

▲ 찬양_부활의 산소망 180x161cm | 2020 ©박성남     © 크리스찬리뷰



또 하나는 하부 구조다.
이름하여 굽이다. 역시 타원이다.
상부와 하부 두 개의 커다란 대접 타원을 이어
봉합하면 달항아리 몸체가 탄생된다.
이것이 세 번째 구조로써 나를 반긴 까닭이요,
이 과정이 나를 긴장시킨다.
3층천 하늘 아버지 집으로
반색하는 이유도 된다.
하나련? 가시화된 일체련?
움푹 파인 상처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로다... 고인다.
눈물겨워낸다.
하늘 아버지께로다.
그리움의 다른 언어일까보냐?
나에겐 달항아리이다.
더욱 곱게 층이 빛으로 껑충껑충 뛰어논다.
달항아리에서다.
어린양 표상이다.


층을 그리면서


문풍지가 떤다. 효시로 온화한 달빛 한뼘
가즈런히 비켜내면 한겨울 맹추위가 온다.
구원자 사사로 창호지가 겹겹 나선다.
안방 문에 바른 창호지 한 장으로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한겨울을 보쌈해 이겨낸다.
옛 추억이다.
숨돌린 달빛이다. 한 모금 응시 이쯤되면 우리 가족은 앳된 병아리도 된다.
달빛 그리운 창호지에서이다.
영역표시다.
뻗어 올라가는 연속문양 벽지를 타고 보면 얼룩얼룩
풀기운 늘어진 플렛폼 천장이 나타난다.
대동여 지도같이 방대하다.
근대의 맹아로 은근슬쩍 현시로 나타난다.
쥐 오줌이 그 범인이다. 그뿐이랴?
된풀로 짓이겨 바른 콩기름에 바랜 타다 남은
누런 장판지에서다.
아랫목 한 숟갈 묻어 논 밥그릇도 만만치 않게
눈길을 끌며 뜨문뜨문 가세한다.
이 모두 우리 시대 표층, 삶의 아우라다.
아버지의 손자국을 거칠게 지워낸
익명성 순교자들인 셈이다.
그 시절 단칸방은 이렇게 하루하루 저물었다.
이 모두 나에겐 주마등 같고
그리움의 이정표 뱃고동 소리
같은 표상층의 메타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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