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安息)

이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3/31 [12:0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대 혼동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는 중국과 한국을 넘어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미국을 삼키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현실화된 가운데 현시대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마스크 두 장을 확보하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린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 지 수주가 흘렀다. 언제까지 지속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실제 현장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날이 퍼지고 있다. 언제든지 나와 가족이 감염될 수 있다는 위험 속에 살아가고, 시장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제적 위험을 느끼고 있다.
 
희망차게 시작된 2020년에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한 대혼란으로 요동치고 있다. 올해 내내 이 사태의 파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울해지고 의기소침해진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안식(安息)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안식을 누리며 그동안 당연시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특별히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크리스천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믿음과 교회란 무엇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하면 좋겠다.
 
안식은 우리가 일상으로 행했던 일들을 그치고 하나님 안에서 쉼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의 그침은 일 자체만이 아니라 성취와 생산의 필요, 근심과 걱정, 긴장, 소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을 그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비자발적이지만 그침의 삶을 살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만남을 그치고, 마스크를 쓰며 말을 그친다. 학생들은 수업을 그치며 종교인들은 종교적 장소에서의 만남을 그치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그침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지만 이것을 안식과 연결할 때, 지금의 혼동과 고통은 귀중한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안식일을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라며 문명이 살아남으려면 참된 안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문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이며 경험이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또 다른 이름의 신종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것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응징일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명 안에서의 생각이 아니라 문명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안식이 필요하다.
 
헤셀은 “우리는 시간을 성화하기 위해 공간을 정복해야 한다”면서 “하나님은 공간의 사물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시간의 찰나 속에 계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과제는 시간을 영원으로 변화시키고 우리의 시간을 영(靈)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는 것에 대한 한국교회 내의 논란과 관련해 음미해볼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사고는 공간 속에 함몰됐는지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공간을 지배하며 공간의 사물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가 됐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점차 망가지게 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돼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돕기 위해 달려간 이 시대의 천사들, 공포 속에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모든 사람이 깊은 안식을 누리기 바란다. 이 혼란의 시기 속에서 역설적 안식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공포 바이러스에 맞서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이태형|현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고려대 사학과 및 미국 풀러신학대학원(MDiv) 졸업, 국민일보 도쿄특파원,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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