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주의원에 재도전한다

“이슬기 의원, 호주 한인 역사 최초의 주 국회의원”

글|주경식 사진|권순형·정성택 | 입력 : 2020/04/27 [10:57]

 

▲ 초등학교 1학년1학기를 마치고1986년 가족들과함께 호주로 이민온 이슬기 의원은호주 한인 역사최초로 ACT 준주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호주의 한인 역사는 길지 않다. 베트남 종전 이후 본격적으로 한인들이 호주로 유입되는 1975년을 기점으로 친다면 약 45년의 한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활동하던 한인 정치가들은 그동안 꽤 있어 왔다.

 

권기범, 남기성, 남경국, 옥상두, 양상수, 피터김, 크리스티나우 등 그동안 한인 사회에서는 여러 명의 한인 시의원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한인 정치가들은 주로 지방정부(Local Government)의 시의원(Local Councillor)들이었다.

 

주 정부(State Government), 또는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은 나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호주 수도 준주(ACT: Australian Capital Territory)의 국회의원으로 뽑힌 이슬기(Elizabeth Lee)의원은 한인 최초의 주정부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정치형태가 달라 호주 정치 체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한인들을 위해 먼저 호주 정치 구조를 간략히 설명한다.

 

호주의 정치제도

 

호주에는 세 단계의 정부가 있다. 그리고 각 단계별 정부마다 맡은 책임과 하는 일이 다르다.

 

먼저 한국의 구청에 비교할 수 있는 지방정부(Local Government)가 있다. 지방정부에서는 어쩌면 시민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쓰레기 처리 및 재활용, 상하수도, 공공 도서관, 도시 계획, 건축 승인, 지방 도로, 가축과 지역사회 시설들을 담당한다. 지역 개발도 1차적인 권한이 있지만 주정부의 권한이 우위에 있다.

 

두 번째로 주정부(State Government)와 준주정부(Territory Government)가 있다. 호주에는 6개의 주와 2개의 준주가 있다. 

 

6개의 주(NSW, Victoria, Queensland, South Australia, Western Australia, Tasmania)와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은 2개의 준주(ACT: Australian Capital Territory, NT: Northern Territory)가 있다. 이 8개의 주정부(State Government)에서는 각자 자기 주의 치안, 공립 학교, 도로 및 교통, 공립 병원, 공공 주택, 기업 규제 등의 일들을 관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 가 있다. 연방정부는 호주 전체를 관할하는 국가차원의 정부로서 연방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들을 시행한다. 연방정부는 호주 전체의 국방, 외교, 통상, 이민, 세금, 노사관계, 통신 등을 관장하며 아울러 메디케어와 센터링크 같은 정부기관을 통해 복지 및 기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 정부마다 선거가 다르고 명칭도 다르지만 지면상 세세한 사항은 독자가 찾아보기를 권한다.

 

그동안 호주의 한인 정치가들은 주로 지방정부(Local Government)의 시의원(Local Councillor)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슬기 의원은 ACT 준주정부의 하원의원(MLA: Member of Legislative Assembly)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 의원 사무실에서 Wave TV와인터뷰 중인 이슬기 의원.     © 크리스찬리뷰

 

 이민 1.5 세대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7살 때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왔다. 그때가 1986년이었다. 한인들이 호주에 많지 않은 시기였다. 그녀의 가족이 호주에 올 때는 본인과 5살 여동생, 부모님 이렇게 4식구가 왔다. 그리고 호주에서 태어난 막내 여동생이 있다.

 

그녀의 가족이 호주에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시드니 서부 메릴랜드(Maryland) 동네였다. 거기서 일 년을 살다가 더 서부 안쪽 지역인 블랙타운(Blacktown)으로 이사한다. 지금도 이슬기 의원의 부모는 블랙타운에 살고 있다.

 

이 의원은 초등학교를 블랙타운에 있는 Our Lady of Lourdes Catholic School를 다녔다. 부모님이 가톨릭 신자라서 자연스럽게 가톨릭 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이민 초기 한국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녀들을 키우고 가족을 돌보느라, 청소등 궂은 일을 마다 않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년 전 호남 향우회장을 지낸 이연형(69. 고흥) 고문이다. 이연형 고문은 2016년 ‘세계 호남인의 날’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호남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여 하이스쿨(High School)은 셀렉티브인 기라윈 하이스쿨(Girraween High School)을 졸업했다.

 

그리고 Law(법)를 공부하기 위해 캔버라에 있는 ANU(Australia National University)의 법학과에 입학했다. 호주에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수전공을 하게 되어있다. 그녀도 법학과 함께 아시안 스터디(일본어 전공)를 복수 전공했다. 그녀가 10학년쯤 되었을 때 장래 무엇을 하며 살까? 앞으로의 전공에 대해서 고민할 무렵 그녀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사다 준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책은 바로 시드니 셀던의 ‘Rage of Angels: 천사의 분노’였다.

 

한 권의 책 (Rage of Angels: 천사의 분노)

 

▲   ‘Rage of Angels’ 책 표지


“원래는 제가 기자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10학년 때 아버지가 시드니 셀던의 ‘Rage of Angels’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사다 주셨어요. 그 책을 읽고나서 제가 법(Law)을 공부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저 자신을 생각할 때 무슨 장점이 있나 생각해 보니 저의 장점은 ‘communication’을 잘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기자를 해야 할까? 무엇을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 책이 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것 같아요.”

 

나중에 찾아보니 시드니 셀던의 ‘천사의 분노: Rage of Angels’는 영화로도 상영된 유명한 소설이었다. 유능한 여변호사가 얽히게 되는 음모와 반전 그리고 인간의 양면성을 여주인공 변호사를 통해 폭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이 책은 감수성 풍부한 여고시절의 그녀에게 앞으로 법을 공부해야 겠다는 선택을 하는데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다. 살아오면서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기자도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톨스토이 인생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슬기 의원은 저널리즘을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이 책을 읽고 법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법공부를 하기 위해 ANU (Australia National University)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연스럽게 캔버라로 혼자 올 수밖에 없었다.

 

캔버라는 제2의 고향

 

▲ 선거운동을 돕는 동료와 한복을 입고 선거유세를 펼친 이슬기 의원.     © Elizabeth Lee 


대학공부를 위해 18살부터 캔버라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캔버라가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캔버라 호주 수도 준주의 국회의원이 된 것도 이러한 인연으로 시작된 것이다.

 

“맨 처음에는 아빠가 그러셨어요. 어린 제가 혼자 타지 생활을 해야 하니까, 시드니에 있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법학으로 전과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도 제가 그냥 법(Law)을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말리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18살 때부터 ANU 캔버라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했어요. 처음 몇 달 간은 재미있었습니다. 기숙사에 친구들도 많고 다양한 활동(activity)들도 같이 하고 자유(freedom)롭고, 하하...

 

그런데 몇 달 지나니까 진짜 힘들었어요. 그리고 1998년경만 하더라도 캔버라에는 아시안들이 많지 않았어요. 특히 제가 공부하는 법학과에는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한국인들이 법(Law) 공부를 많이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흔하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1998년 ANU에서 법 공부를 하면서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일도 했다. 맨 처음 일을 했던 곳은 캔버라에 있는 법률 사무소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법률사무소에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법을 공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 캔버라 한국의 날 축제에서 인사말 전하는 이슬기 의원 (2018. 9.)     © 크리스찬리뷰

 

“제가 1학년 여름방학 때 파트타임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캔버라에 있는 법률 사무소였어요. 거기서 맨 처음 일을 할 때는 제가 타이프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들어갔어요.

 

다행히 아빠가 7살 때 그 당시 비싼 돈을 주고 아미가(Amiga) 컴퓨터를 사주셨거든요. 그걸 가지고 놀면서 타이핑 연습을 많이 해서 제가 진짜 타이프를 빨리 치거든요. 처음에는 타이프 라이터로 들어간 거예요. 그러다가 거기에서 제가 법을 공부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 법 관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것이 나중에 좋은 일로 사용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1986년 당시만 해도 아직 윈도우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컴퓨터도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들에게 거금을 들여 컴퓨터를 사준 이슬기 의원의 아버지도 대단한 안목이지만, 그때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을 때, 타이프 프로그램을 통해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 타이핑 연습을 한 이슬기 의원은 이것이 그가 첫 번째 파트타임 일을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의 약력을 보면 그의 타이프 솜씨는 1분에 104단어를 칠 정도로 빠른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태권도 2단 검은 띠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작지만 야무지고 당당하게 호주 주류사회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법조인의 길을 가다

 

그녀는 재학 중에도 파트타임으로 법률일을 했지만 2003년 학교를 마치자 그녀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2004년 처음에는 호주 정부의 Attorney-General’s Department (Commonwealth)에서 Legal officer로 시작해서 Australian Government Solicitor에서 호주 정부의 변호사로 그리고 Meyer Vandenberg 로펌에서는 소송 변호사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

 

▲ 딸의 선거유세를 돕기 위해 매 주말이면 새벽에 시드니를 출발하여캔버라까지 7개월 동안 달려갔던 이연형 씨 (전 호남향우회 회장)     © Elizabeth Lee 

 

그리고 2010년부터 ANU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양한 이력을 쌓은 셈이다. 어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졸업하고 2004년부터 변호사(lawyer)로 일을 하면서 “ACT 청년 변호사 협의회”(ACT Young Lawyers Committee)에서 회원으로 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2006년에 이 위원회의 회장이 되었어요. 그리고 2007년에는 호주 청년 변호사 협의회 (Australian Young Lawyers Committee)의 회장이 되었지요.

 

이런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난 후 “ACT Law Society Council” 위원으로 선출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선거 나오기 전에는 “ACT Law Society”의 부회장을 했어요. 이러한 일들을 하게 되니까 저의 경험들이 인정받은 것 같아요.

 

이런 위원회나 단체를 대변하는 일들을 많이 맡게 되니까 저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증명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동안은 제가 주로 법과 관련된 단체의 커뮤니티에서만 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일반 시민들을 위해서 로컬 커뮤니티에서 봉사하면서 이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아빠가 그때 저에게 그러셨어요. 네가 정말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뭐냐? 그걸 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서 이제는 일반 커뮤니티, 시민들을 위해서 봉사하자. 그런 마음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지지자들과 선거 운동 전략을 세우고 있는 이슬기의원.     © Elizabeth Lee 

 

멀고도 험한 정치인의 길

 

캔버라 시민들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서 그리고 ACT 커뮤니티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야겠다 하는 마음에서 정치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 길이 결코 녹녹한 길은 아니었다.

 

그녀는 2012년에 ACT 주 선거(State Election)에 자유당 후보로 나왔지만 아쉽게도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그리고 2013년에는 연방선거(Federal Election)에 역시 자유당 후보로 나왔지만 또 떨어졌다. ACT는 전통적으로 노동당이 자유당보다 강성인 지역이다. 이런 노동당 텃밭에서 그것도 검은 머리 유색인 여자가 선거에 나왔으니 불리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ACT는 전통적으로 여자가 선거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노동당이 강성인 지역에서 자유당으로 그것도 검은 머리 아시안 여성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때 참 힘들었어요. 그래도 졌지만, 혼자 생각하기를 나름 인생의 경험이다, 의미있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연속으로 2012년 주 선거, 2013년 연방선거 두 번을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선거에 출마해서 한 번만 고배를 마셔도 얼마나 힘든데 연속으로 2년 동안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정치인의 길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희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 이슬기 의원(앞줄 왼쪽)이 선거운동원들과 함께했다.     © Elizabeth Lee 

 

“2012년 선거 때는, 부모님이 매주 토요일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셔서 블랙타운에서 캔버라로 운전하고 오셨어요. 캔버라에 도착하시면 어머니는 바로 아침식사를 준비하시고, 저는 그때 에어로빅 강사일을 파트타임으로 토요일마다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새벽에 일어나서 에어로빅 강사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침을 먹고 바로 아빠와 함께 쇼핑센터로 갔습니다.

 

아빠와 저는 선거 포스터를 붙이고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오전 내내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운동원들과 함께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에는 바로 집집마다 선거 전단지를 나눠주러 다녔습니다. 일요일에도 똑같이 했죠. 그리고 아빠는 일요일 오후 3~4시 쯤에 다시 시드니로 올라 가셨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당신들 일을 하셔야 하니까요, 이렇게 매주 시드니에서 캔버라를 7개월을 다니셨습니다.”

 

참으로 이슬기 의원 부모의 헌신은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2013년에도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딸의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거듭 낙선했다. 얼마나 기운이 빠지고 허탈했을까? 그동안 들어간 엄청난 선거비용, 쏟아 부은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한다면 보통 사람들 같으면 벌써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녀는 시드니 동포들의 후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녀가 2012년 ACT 주 하원의원 선거에 나왔을 때 시드니 동포들도 그녀를 후원했다.

 

“지금도 너무 고맙고 감사한 것은 우리 동포들의 후원입니다. 제가 캔버라에서 주 하원에 도전했는데도 시드니에서 후원의 밤을 했는데 많은 분들께서 성원해 주셔서 저는 지금도 그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2013년 연방선거에 도전해서 낙선했을 때도 그녀를 위로해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3년 연방선거에 도전하여 실패했을 땐 저희 가족들 모두 몸과 마음은 물론 경제적으로 너무 지쳐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포츠머스대학(University of Portsmouth)에서 법을 연구할 수 있는 장학 특전을 오퍼 받았어요. 그래서 영국에 가서 1년여 동안 법전에 대해 연구도 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며 재충전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런 덕분에 다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2016년에 주 선거에 재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힘든 가운데서도 감사한 일을 찾으려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이러한 실패와 도전 모두가 인생의 중요한 한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녀가 이렇게 힘든 과정들을 이길 수 있었던 그녀 나름의 탈출구가 하나 더 있었다.

 

기자도 작년에 연방하원의원 후보자인 샘크로스비를 선거 캠페이너로 몇 달간 도운 기억이 있다. 선거를 홍보하기 위해 후보자들은 정말 힘겹게 에너지를 쏟으며 홍보들을 한다. 체력이 정말로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슬기 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매주 토요일마다 에어로빅 강사일도 쉬지 않고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녀가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얼마나 인생을 엔조이하면서 그녀의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가 2012년에 주 선거(State Election)에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 나가기 전에 매주 토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에어로빅 센터에 가서 에어로빅 강사일을 하고 집에 와서 밥먹고 그리고 아침에 선거운동을 하러 나갔습니다. 에어로빅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줄 모릅니다.”

 

그녀는 에어로빅 강사를 하기 위해 따로 자격증(certificate)까지 취득했다. 지금도 여전히 매주 토요일이면 에어로빅 강사일을 즐긴다. 어쩌면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그녀가 지치지 않는 묘약일 것이다.

 

▲ 태권도 2단인 이슬기 의원은 지금도 에어로빅 강사 일을 즐기고 있다.     © Elizabeth Lee 

 

2전 3기 만에 ACT 준 주 국회의원이 되다

 

매 4년마다 돌아오는 주 선거(State Election)가 2016년에 다시 돌아왔다. 두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난 선거의 패배를 분석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결과 2016년에는 드디어 ACT 준주 자유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호주에서 주정부 하원의원(MLA: Member of Legislative Assembly)이 된 것이다. 실로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녀는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아시안, 여자라는 이유로 눈에는 안보이는 차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녀는 움추려들지 않는다. 작지만 당당하게 그녀는 ACT주 국회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그녀는 ACT 준주의 하원으로 그림자 내각의 교육, 환경, 장애인부 장관을 맡고 있다. 모두 중요한 부서이다. ACT에서는 올 10월에 다시 주 정부 선거가 있다. 올해도 이슬기 의원은 출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녀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그리고 한인 1.5세, 2세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한국인으로 호주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 호주 문화 두 문화를 알고 있고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효도와 정 이러한 것은 절대 호주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으니까 결코 한국인의 단점을 부각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인들은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활동들을 열심히 하는데 아직 호주 주류 사회와 소통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다.

 

▲ 만국기가 휘날리는 캔버라 국회의사당 가는 길목에서 이슬기 의원.     © Elizabeth Lee 

 

또한 1.5세와 2세대들은 언어의 장벽이 없으니까 호주의 주류사회에 더 많이 개척정신을 가지고 공헌할 일들을 찾아 도전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 하는 일은 뭐든지 힘들 수 있습니다. 보람있는 일이지만 힘듭니다. 만약 쉽다면 누구든지 하려고 하겠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작지만 작지 않다. 인터뷰 내내 당당하게 자신의 소회를 밝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호주사회에 공헌하며 호주 주류사회를 이끌고 가는 한인 전문인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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