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병원, 연합과 합력 선교의 모델
현지의 의료 인력이 잘 자라나면 현지인에게 이양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헤브론병원에서 운영하는 간호대학의 실습(위)과 강의 장면.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은 2018년 9월 병원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하나님의 이끄심을 토대로 헤브론병원의 비전과 미션을 정했다. 비전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병원’이다.

 

미션은 크리스찬 의료진들을 잘 세워가는 병원, 암·심장·눈 수술을 잘하는 병원, 호스피스와 심장 수술 받은 아이들을 관리하는 CAP(Care After Programme) 프로그램을 통해 캄보디아 환자들을 만나고 다가가는 병원이 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된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에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6년 전 설립한 간호대학을 통해 능력 있는 크리스찬 간호 인력을 잘 양육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캄보디아 의사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실력 있고 헤브론 정신을 잘 이해하는 의료 인력을 세우려고 노력 중이다. 호스피스 사역도 할 일이 많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일, 기독교식 장례 문화를 만드는 일 등이다.

 

▲ 헤브론병원은 2017년 6월, 캄보디아 의사 3명의 레지던트를 배출했다.(앞줄 가운데)     ©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원장은 “이번에 새로 만든 인공신장실을 통해서도 많은 기적이 일어나리라 기대한다”며 “헤브론병원은 어느 한두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연합과 합력으로 세워 나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김 원장은 “그동안 헤브론병원과 간호대학에서 봉사하고 협력한 많은 선교동역자들, 그리고 헤브론 현장에서 애쓰며 수고하는 많은 동역자가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여러 후원자와 후원교회의 도움과 기도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정말로 하나님은 단기 봉사팀과 수술팀을 헤브론병원에 붙여주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의 꿈은 캄보디아 현지의 의료 인력과 행정 인력들이 잘 자라나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자라고 실력이 높아지고 섬기는 마음과 자세가 확고해질 때 헤브론병원은 현지인에게 이양될 것입니다. 오래 전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그렇게 했듯이 말입니다.”

 

내려놓음, 선교사가 갖춰야 할 기본자세

헤브론병원 행정부장 정진석 선교사

 

▲ 헤브론병원의 전반적 살림을 책임맡고 있는 행정부장 정진석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현재 헤브론병원에서 최고령인 정진석(70. 행정부장) 선교사는 모든 헤브론 가족들에게 인기가 많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정 선교사에게 그들은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유난히 사랑 많고 다정다감한 정 선교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대학교수로 쌓아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교회에서 장로로 섬김의 훈련을 받았으니 이 사랑과 섬김의 자세를 선교지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정 선교사는 “이런 것들이 시니어 선교사의 강점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사랑과 섬김의 자세가 유지된다면 분쟁을 줄일 수 있고 선교사들과도 좋은 협력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행정부장? 부장이라는 말은 계급 같아서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선교사님들과 만나 얘기할 때마다 무슨 부장, 무슨 부장 해가지고 계급 같은 인상을 주지 말자고 그럽니다. 다같이 선교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자. 그리고 무슨 일이든 힘들면 혼자 짊어지지 말고 서로 나누어서 돕자. 모두들 이해를 해줘서 서로 거리낌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진석 선교사의 그런 마음을 김우정 원장이 읽은 것인가. 김 원장은 정 선교사와의 첫 대면에서 선교사들 간의 소통을 간곡히 부탁했다.

 

“정 선교사님 같은 분이 오셔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파트타임이라도 좋습니다.”

 

▲ 심장 수술 받은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가정 방문하여 관리하는 헤브론병원의 CAP 프로그램     © 크리스찬리뷰

 

“원장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약국을 관리하시면서 한방 사역을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부탁할 게 있습니다.”

 

“특별한 부탁이라니요.”

 

“예, 헤브론가족들이 서로 잘 소통하여 협력할 수 있도록 애써주세요.”

 

▲ 레지던트 졸업식에서 한인 선교사들이 특별찬양을 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아, 소통요?”

 

“부탁합니다.”

 

이때 정 선교사는 ‘소통’을 부탁하는 김우정 선교사의 눈빛을 지켜보면서 가슴과 눈시울이 함께 뜨거워졌다고 했다. 3년 가까이 되어오는 지금까지도 화살촉이 되어 가슴에 박혀있는 그 한 마디는 계속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원장님이 준비가 많이 되신 분이라는 걸 느꼈어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역을 욕심 없이 감당한다는 것이 쉽지 않죠. 정직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곳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존경스러워요.”

 

정 선교사는 “지금 내가 섬김, 겸손을 외치고 있지만 나 역시 사람들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할 수 있어도 기다려 주는 것,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필요한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 또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이곳에 와서 배웠습니다. 원장님이 처음에 관계에 대해 많이 강조를 하셨지만 사실 이곳은 연합하고 합력하는 곳입니다. 선교는 함께 더불어 사는 게 아니겠어요.”

 

▲ 헤브론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캄보디아 환자에게 침 시술하는 정유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정진석 선교사가 헤브론병원에 온 것은 2017년 7월이다. 왜 헤브론일까.

 

“한의학 쪽으로 제자들을 양성하리라는 꿈을 가지고 캄보디아에 왔어요. 우선 언어를 배우면서 주말에는 시골 현지교회를 방문해 의료사역을 하던 중이었죠. 미국에서 이곳으로 오신 선교사님이 계신데 그분들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교제를 해왔어요.

 

그런데 만나던 그날 김우정 원장님이 선교사님께 전화를 하셨어요. 병원 약국에서 일할 약사가 없다. 한 분은 그만두시고 한 분은 휴가를 가서 급히 약사를 찾고 있다는 거에요. 선교사님이 저를 보고 도와줬으면 해요. 그래서 김우정 원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한 거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헤브론병원에 혼자 와서 약국에서 일했어요. 아내는 언어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고요. 그런 후 아내도 12월 헤브론병원에 합류하면서 한방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진석 선교사는 30대에 아내 정유정 선교사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삼라한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한의사 면허를 받은 후에는 이 대학 교수로 특채되어 학장으로 재직했다. 아내는 미국에 둥지를 튼 후 곧바로 공부를 하여 유치원 원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여기에 삼라한의과대학에서 다시 공부해 한의사 면허까지 취득했다.

 

▲ 한의사 정유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삼라한의과대학은 설립된지 50년이 넘는 미국 최초로 정식인가를 받은 한의과대학입니다. 이 대학은 한인커뮤니티보다 주류사회에 더 알려진 대학으로 부속 한방병원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임상교육이 정밀하고 우수하게 이루어지고 있죠.”

 

이들 부부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재밌고 신나게 공부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꿈을 꾸며 행복감을 느꼈다.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아내도 그렇고 선교사의 꿈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죠. 1963년도에 중국분이 이 대학을 세우셨어요. 그분의 설립목적이 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1996년부터 이 대학교 학장을 맡아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교육 목적이 그거였어요.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여러분들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인도자다. 여러분들이 치료자가 아니다. 그러니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갖고 환자들을 대하여야 한다’ 늘상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정 선교사는 “그러면서 늘 하나님의 부르심에 목말라했다”며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부흥집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 정진석·정유정 선교사 부부     © 크리스찬리뷰

 

“선교를 많이 하시는 강사님이신데 말씀 후 장기로 3년 이상 선교사로 나갈 사람 일어나라고 그래요. 이번 기회에 결단하는 게 좋겠다고 벌떡 일어났죠. 그런 후 서있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가 왜 서있지? 그러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걸 알았던 거죠. 사실 그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했어요. 오래 걸렸지만 결국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은 아내였다. 아내와 상의도 못한 상태에서 한 결단이라 아내의 서운함이 마지막 장애물로 남아있었다. 고민 끝에 정 선교사는 아내와 의논했다.

 

“여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참 편안하게 살아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야 되지 않겠소?”

 

선교사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았다. 아내는 퍽 고통스러워했다. 안정된 생활과 세 아이들 그리고 인생의 모든 설계를 뒤엎어야 하는 그 길을 그렇게 선뜻 나설 수 있는 아내가 어디 있을까. 명예와 풍족한 생활을 그냥 누리기만하면 됐다. 가난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적당한 봉사활동으로 상쇄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대학교수로 잘 지냈고 물질적인 복도 잘 누리고 살았잖아. 이제는 복을 나눠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갑시다."

 

그때까지 정 선교사를 늘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던 아내였다. 이번에는 침묵이 흘렀다.

 

“당신, 즉흥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지?”

 

“아무렴요. 우리 이대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잖소.”

 

“맞아.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야. 이제는 복을 나눠주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갑시다.”

 

▲ 간호부장 임승주 선교사와 업무를 협의하고 있는 정진석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아내는 맞장구를 쳤다.

 

그 무렵, 정 선교사는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로부터 소식을 접했다.

 

“캄보디아에 환자들이 많으니 와서 한방사역을 장기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한방치료를 하면 많은 돈이 안 들어가서 좋을 것 같고 또 한방 쪽으로 크리스찬 제자들을 양성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비전이 생긴 이후로 기도하면서 준비해왔기에 스스로에게도 어떠한 사역의 이유를 만들려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 부부가 LA 생수의강교회 파송선교사로 캄보디아에 온 것은 2016년 4월이다.

 

그렇게 떠난 선교의 여정.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힘을 주는 든든한 동역자들을 허락하셨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정진석 선교사는 지금까지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이 신앙은 세월 속에 스며들어 믿음의 가정으로 견고히 만들어 주고 있다.

 

 

▲ 헤브론병원 약국에서 근무 중인 약사 유미, 정진석, 김미경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 대한병원협회가 기증한 앰뷸런스 기증식 참석(정진석, 이영돈, 김우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 헤브론병원에서 열린 사랑이야기 콘서트에서 손잡고 찬양하는 정진석 선교사(왼쪽)     ©크리스찬리뷰

 

▲ 단기 선교팀의 일정을 협의하는 이영돈 부원장(왼쪽), 본지 권순형 발행인, 정진석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갔으니까요. 새벽기도회도 참석하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지니 신앙이 더욱 깊어졌죠.”

 

정유정 선교사는 불교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된 건 초등학생 때 동네 주일학교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교회에 갔던 게 계기가 돼 집안에서 유일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교회는 그녀의 놀이터가 됐고, 꿈을 일깨워준 비전의 장소가 됐다.

 

“불교가정에서 핍박을 많이 받았더라고요.(웃음) 은근히 걱정했는데 지금은 장인 장모님 다 세례 받으시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십니다. 제사도 안 지내시고요. 허허.”

 

사역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려움이 없어요. 편해요. 주님이 이곳으로 인도하셨는데 참 기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더위를 못 참는 성격이에요. 끈끈한 걸 싫어해요. 이 캄보디아가 얼마나 덥습니까. 그런데도 불편하지 않아요. 참 희한하죠? 못 견디는 성격인데 여기 와서 잘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곳으로 보내주신 게 기쁩니다. 감사하죠.”

 

정 선교사는 “단순하게 현지인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는 꿈을 가지고 무작정왔는데 하나님은 그 방향을 헤브론으로 바꾸셨다”며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방향을 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사역하면서 깨달았던 선교사의 기본자세를 설명했다.

 

“선교사가 선교현장에 오기 전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있어요. 나를 비워야 한다.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갈 때 금방 숨차고 지쳐 쓰러지더라고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내려놓아야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욕심 모두 채우고 조금 버리는 것을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정진석 선교사는 의사면허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비전이 생기면서부터다. 캄보디아로 올 때는 집과 살림도 정리했다. 이들 부부는 달랑 가방 한 개만 갖고 캄보디아 땅을 밟았다.

 

“선교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긴 여정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욕심을 내지 말고 호흡과 속도를 조절해야 됩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도구인데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잘 추스르면서 준비해 놔야죠.”

 

언제나 매력있고 상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정유정 선교사는 그 고생스러운 길을 일단 떠난 뒤에는 단 한 번도 불편을 호소하거나 괴로운 내색을 한 일이 없다. 그녀는 “선교사로서의 헌신은 우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 부르심을 확신하는 가운데 출발하고 감당해야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을 사역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인가, 자기 의지인가 주님이 보여주세요. 하나님이 사인을 주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감정에 의한 결심과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속적인 관심,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계속 우러나오면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섭니다.

 

반대로 두려움이나, 돈에 대한 아쉬움, 여러 부정적인 생각들이 주저하게 만든다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이거나 탈진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감 없이 선교사역을 지속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하므로 정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지를 확인하고 출발해야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이들 부부는 헤브론병원에서 사역하면서 고생스럽다든가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선교는 개인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과 능력으로 주시는 대로 하는 겁니다. 또 철저히 자신을 버려야 하며 나 자신을 철저히 죽일 때에 하나님은 찾아오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사는 것이 조금도 미련이 없다. 큰 축복을 누리며 살기 때문에.

 

에필로그

 

이번 헤브론병원 방문은 세 번째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새벽부터 씨름하며 취재를 했다. 특히 헤브론병원 내에 머물면서 취재를 하는 동안 선교사들의 수고와 아픔이 내 일처럼 다가와서 많이 눈물도 흘렸다.

 

선교사는 자신만 결단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 가족이 함께 선교하는 것이고 특히 아내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우정 원장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장인은 예장통합 측 총회장을 역임한 박종렬 목사다. 큰 딸인 아내 박정희 선교사는 14년째 척박한 캄보디아 선교현장에서 김 원장과 고락을 함께했다.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왔다.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박정희 선교사는 10년 전 막 병원 신축 공사가 끝나갈 무렵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6년 전 심장센터를 막 시작할 때 김우정 선교사는 협심증과 스텐트 삽입을 했다. 5년 전엔 망막박리가 생겼고, 2년 전 병원 10주년을 기해 병원의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려 할 땐 전립선암이 발생해 지금도 치료를 하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와 인터뷰하고 있는 본지 편집인 김명동 목사(오른쪽).   © 크리스찬리뷰

 

얼마 전 부원장 이영돈 선교사도 전립선암이 발생해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정진석 선교사가 원장, 부원장이 없는 헤브론병원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아 힘겹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 하나님의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들에게 광야의 고독한 훈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헤브론 가족들의 사명을 지켜보며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 여행을 통해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길 권하고 싶다. 기적의 현장 헤브론병원을 방문하여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에베소서 5장 10절 말씀을 시험해 볼 수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을 재료로 성경의 말씀을 실험해 볼 수 있다. 기자가 경험한 교훈이다.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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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27 [13:5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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