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와 사역
 
글|류병재 사진|권순형

 

▲ 코로나-19 관련, 이동 및 모임 제한 조치로 인해 인적이 끊긴 대형 쇼핑몰.     © 크리스찬리뷰


“목사님! 비록 가게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번에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변화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어려운 교우들을 위로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자리에서 70세를 앞둔 어느 교우가 고백한 말이다. 그는 이민 온 후 처음으로 4일을 쉬어 보았고 역시 처음으로 수요 예배와 새벽 기도회를 온라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정 지역(사스, 메르스 등의 경우)이나 혹은 특정인(에이즈 등)들만의 이야기로 여겼던 대유행 전염병(pandemic)을 마주한 것이다. 1918년 당시로서는 정체도 모르고 최소 4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에 전 세계인들의 삶이 송두리채 바뀐 것이다.

 

사실,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지만 인류는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파스퇴르에 의해 바이러스와 세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과의 도전과 응전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알고 있는 미생물은 아마 1%도 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것이 발견될 때마다 이름을 하나씩 붙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들의 사회와 가정생활은 물론 영적인 삶에도 벌써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앞으로 이러한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는 예기치 못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이고 어떻게 적응해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큰 숙제가 놓여 있다.

 

이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을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현재 호주에서의 상황과 사역에 대해 정리한 후에 향후 사역과 우리들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전개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고통

 

갤럽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만약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면 무슨 질문을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이 “세상에는 왜 고통이 있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인생에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특히 불신자들에게서 많은 듣게 되는 질문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완전하게 알 수 없고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 55:8-9)

 

그러나, 성경의 빛을 통해 더듬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악과 고통이 없는 완벽한 곳으로 창조하셨지만(창 1:31)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떠났고 그로 인해 세상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고 묻지만, 미국에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 5%만으로도 충분히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즉 인간의 죄와 탐욕으로 인해 세상은 고통과 아픔이 있는 것이다. 음주 운전자에 의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던 교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고통을 우리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전염병의 이해

 

▲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로부터 중간 숙주 천산갑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분명한 것은 21세기 들어서 인류는 인수공통 전염병으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특정 동물에만 있는 미생물이 중간 숙주를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에이즈, 조류독감, 광우병, 메르스, 에볼라, 신종플루, 돼지 열병 등이 해당된다.

 

그런데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분류하신 동물들의 목록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박쥐, 낙타, 돼지, 갈매기, 쥐, 뱀, 물수리, 사반 등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와 도시 개발,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 등으로 동물들의 거처가 없어지고 야생 동물들을 탐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이런 동물들과 살아오던 바이러스들이 살 곳을 찾아 필사적으로 인간에게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이번 전염병이 진정된다고 해도 앞으로도 어떤 변종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할지 어느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야생 동물 거래도 막아야 하지만, 가축들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연한 고기 더 많은 양의 육질을 얻기 위해 송아지나 닭을 가두고 사육함으로 인해 면역력이 매우 떨어진 고기를 우리는 먹고 있다. 동물의 유전자 조작 같은 것을 멈추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요구된다.

 

▲ 필수적인 상황을 제외한 외출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동네를 산책하는 주민들     © 크리스찬리뷰
▲ 반려견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주민들     © 크리스찬리뷰

 

인류 역사가들은 인간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전쟁, 자연 재해와 더불어 질병을 꼽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보면,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자주 등장함을 알게 된다. (렘 14:12)

 

따라서 과거에는 전염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중세 시대에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에 맞설 수가 없다는 신학적인 체념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 앉히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거나 심지어 자기 몸을 사정없이 채찍질하기도 했다.

 

카톨릭 교황 클레멘트 6세는 1350년을 성년으로 선포하여 고해성사를 하고 성베드로 성당 등을 성지 순례하면 죄가 없어지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여서 많은 순례객들이 로마에 몰리는 바람에 전염병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건강할 때는 (초대 교회 시대와 종교 개혁 시대) 전염병의 상황이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그에 따라 세상에 복음이 확산되었다.

 

로드니 스타크는 그가 쓴 ‘기독교의 발흥’(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에서 주후 251년 키프리아누스의 말을 인용한다.

 

▲ 예배를 금지한 호주의 모든 교회는 문을 닫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사진은 시드니불꽃교회와 시드니제일교회(작은 사진)     © 크리스찬리뷰

 

“공포스럽고 치명적인 이 역병과 흑사병이 각 사람의 공의를 검증하고 인류 정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니 얼마나 시의적절하고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건강한 자가 병든 자를 돌보는지, 친척끼리 서로 사랑할 도리를 다 하는지, 주인이 병든 노예에게 자비를 베푸는지, 의사가 고통받는 자를 저버리지 않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힘겨운 훈련입니다. 기독교인에게는 이 훈련이 죽음을 멸시함으로써 면류관을 예비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영광이 됩니다.”

 

또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도 소개하는데 “약자를 돌보고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우리의 모습은 많은 우리의 반대자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브랜드이다. 한 번만 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를 보라고 말한다.” 초대 교회가 핍박과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복음이 증거되고 로마의 중심 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은 전염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큰 비결이 되었던 것이다.

 

칼뱅을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은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과 훈련의 도구로 이해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고 환자들에 대한 목회적인 돌봄을 교회 법령으로 제정하기도 했다.

 

또한 죽음이 인간적인 아픔과 슬픔을 가져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서 누리는 안식의 소망으로 우리를 낙심에 이르게 하지는 않다고 했다.

 

특히 마틴 루터는 레위기 13-14장에 나오는 나병 환자의 예를 통해 전염병의 격리와 제사장의 공중 보건 책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 본문에 제사장이 나병 환자를 검진하라는 말이 20회나 나온다.

 

마틴 루터가 요한 헤스 목사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처신에 대해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으로 1527년에 쓴 소책자 “치명적인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 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악한 자가 독과 치명적인 병을 퍼뜨렸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지켜 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조제하여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음을 당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한다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루터는 전염병이 발병했을 때 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염병이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악한 이들로부터 시작된 일이므로 전염병을 퍼뜨리는 일은 마귀의 행동과 같은 것이며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기를 보호하지 않는 것은 자살을 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야 하며 이것이 많은 교회들이 이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만약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문을 열고 그들에게 달려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호주의 상황과 사역

 

호주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매우 발 빠른 대응을 해왔다. 일찍이 국경을 봉쇄하여 해외 입국자들을 막았고 자국민의 해외 여행을 금지시켰다. 3월 중순부터 보다 강력한 행정 명령을 통해 ‘필수적’이 아닌 외출과 사업을 중단시켰는데 경찰들이 집을 떠날 수 있는 14가지 이유(NSW 주의 경우이며 다른 주도 유사함)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막대한 벌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교회들도 이와 같은 상황에 맞추어 예배와 사역을 준비하느라 많은 혼란이 있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올 수가 있기 때문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에 맞는 사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물론 온라인 예배이다. 현재 교회는 예배를 생방송하거나 예배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소수가 모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모임이 금지되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텅빈 예배실에서 심지어 가정에서 벽을 마주보며 설교를 하는 고통을 호소한다.

 

평생 교회와 함께 살아온 시니어들 중에는 교회 근처를 맴돌다가 눈물 흘리며 돌아간 분들도 있다. 분명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 드리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고통스럽고 특수한 상황이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의 장점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집이 멀어서, 건강이 좋지 못해서 혹은 직장이나 사업, 출타로 인해서 예배를 빠져야 했던 분들이 언제든 어디서든 영상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밤 시간에 외출이 어려웠던 분들이나 여러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분들도 언제든 편한 시간에 영상을 통해 수요 예배와 각종 기도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비록 사역의 방법은 달라질 수 있어도 사역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사역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약한 자들을 돌보는 이유(Providing caring or emergency assistance)로 외출이 가능하기에 목회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교우들을 찾아 목회적 심방을 자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며칠 전 삼 일 동안 60여 가정을 심방했는데 과거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교우들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집 밖에서 간격을 유지하고 5분 이내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은혜와 감동의 만남이었다.

 

온라인으로 헌금을 하지 못해서 매주 헌금을 꼬박 꼬박 모아 전달한 교우들도 있었고 목사를 만난다고 목욕과 화장을 하고 기다린 권사님들, 아침부터 이발하고 양복 입고 기다린 시니어들이 있었다.

 

근래 줌(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 대심방을 시작했는데 예전에는 많아야 하루 4가정 심방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10가정을 심방하고 있다. 심방의 벽이 높았던 교우들도 온라인 심방은 쉽게 문턱을 넘어오고 있다.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경제적인 풍파를 만난 자들, 한인 사회에서 취약 계층인 워킹 할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이나 유학생들에 대한 구제 사역이 활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예배로 전환한다고 긴급 공지한 실로암장로교회 홈페이지.     © 크리스찬리뷰
▲ 실로암장로교회 부활주일 YouTube 온라인 예배 장면.     © 크리스찬리뷰

 

왜냐하면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윤리는 과부와 고아와 같은 자들을 돌보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그동안 화려한 교회 건물과 교인들의 숫자에 위축되었던 작은 교회들은 지금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본질로만 사역의 승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는 ‘필수적’ (essential)이란 말이다. 호주 총리는 필수적이지 않는 사업체들과 외출을 중지한다고 했다. 우리들은 그동안 필수적이지 않은 사역에 얼마나 바뻤으며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에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역들은 예배하고 섬기는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이 아닌가? 따라서, 지금은 과거 전염병이 유행할 때 나타난 이교도들과 구별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성과 사랑 그리고 공동체성이 회복될 때이다.

 

근래 우리가 또 하나 많이 듣는 말은 ‘stay at home’ 이다. 그동안 우리들의 집들은 잠만 자는 곳(bed town)이 아니었는지 반성해 보자. 지금까지 우리는 집을 너무 떠나 있었고 가족에게 무관심했었다.

 

▲ 어린 자녀들과 동네를 산책하며 운동하는 가족     © 크리스찬리뷰

 

자녀들의 학업은 학교, 취미 생활과 보충 수업은 학원에, 영적 생활은 주일학교에 맡긴 채 자녀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던 부모들이 학교가 문을 닫자 자녀와 함께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집에서 함께 놀이를 개발하고 있다.

 

하루 한 끼도 같이 식사를 못해보았던 가족들이 식탁에서 세 끼를 함께 하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방치했던 집을 가꾸려는 사람들로 인해 하드웨어 가게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으로 보냈던 많은 공장들이 이번의 어려움을 통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듯이,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으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과제

 

선지자 하박국은 유다 백성들이 풍부한 과실과 많은 가축들을 자랑하다가 그것들이 사라진 후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게 될 것을 찬양했다.(합 3:17-18).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같이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시험하는 기회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모태 신앙인으로 혹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문화적, 습관적으로 신앙 생활을 해왔는지 모른다.

 

혹은 수많은 교인들에 섞여 건강한 교회에 소속된 것으로 자신도 훌륭한 신앙이라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좋은 집과 자녀들의 출세에 가려서 하나님을 잘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이 필요없이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로 서야 하는 지금, 과연 우리는 진정한 예배자인지, 말씀 생활, 기도 생활, 헌금 생활은 어떠한지, 나는 주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을 지금 제대로 준비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지금과 같은 때에 하나님을 찾으라고 외치는 것이다.

 

“…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서 유행하게 할 때에..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3-14) 의인 한 명의 간구는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질문으로 글을 시작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고통이 있지만 그것을 선으로 완성하신다.(롬 8:28) 고통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고 회개에 이르도록 한다. 질병이 찾아오고 사업이 망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절박한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께 무릎 꿇게 되고(고후 7:10) 주님을 닮아 가게 된다. (롬 5:3-4)

 

훈련은 힘들지만 유익이 있다.(히 12:9-11) 하나님은 심지어 악도 선으로 바꾸신다.(창 50:20)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한 환경을 주신 것보다 오히려 고통을 주신 것 때문에 아마 더 감사하지 않을까?

 

중세의 전염병이 봉건제도의 몰락, 지주들의 파산 등 정치와 경제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 왔듯이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과 경제 회복보다 영적인 복구, 사역의 복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훨씬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원래 만드셨던 창조의 세계로 말이다. 그때의 지구 환경으로, 그때의 가정으로, 그때의 교회로 우리는 돌아가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소망을 가지고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 나가야 한다.

 

 

글/류병재|실로암장로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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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27 [15:0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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