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BC/AD vs BC/AC

글|정지홍 사진|권순형 | 입력 : 2020/04/27 [15:13]

 

▲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배를 비롯한 모든 모임을 제한하자 호주내 각 교회는 홈페이지에 온라인 예배를 공지하고 있다. 사진은 좋은씨앗교회 홈페이지.     © 크리스찬리뷰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예수님의 탄생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이른바 BC와 AD다. BC는 Before Christ 즉,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시대’를 말하며 일반 역사에서는 ‘기원전’이라고 한다.

 

AD는 Anno Domini 로 ‘In the year of the Lord 즉, 주님의 해’란 뜻이다. 이 땅의 주님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의 시대를 말하며 일반 역사에서는 ‘기원후’라고 한다.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기준이 예수님의 탄생이었다.

 

교회에서는 BC와 AD를 ‘주전, 주후’라고 부른다. 주전, 주님이 탄생하기 이전과 주후, 주님이 탄생하신 이후를 말한다. 올해는 주후 2020년이다.

 

BC와 AC의 시대 도래

 

이처럼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인류의 역사는 크게 둘로, 예수님의 탄생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만큼 예수님의 탄생이 인류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고, 예수님이 세상 역사의 중심이셨다. 그걸 표시했던 것이 BC와 AD였다.

 

그런데 최근에 사회학자들은 이 BC와 AD가 BC와 AC로 변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인류의 역사를 BC와 AD로 나누었다면, 앞으로는 BC와 AC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BC와 AC는 무엇인가? BC는 Before Corona, AC는 After Corona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 사태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 코로나19로 교회당 출입을 완전 차단한 시드니순복음교회     © 크리스찬리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이전에 승승장구하던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에 매출이 곤두박질 치고, 크고 작은 회사와 상점들이 파산을 하거나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경제 지형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이미 호주에서도 수많은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폐업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경쟁력도 달라질 것이고,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도 변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학교도 코로나 이전에는 강의실에서 직접 수강을 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수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교회도 대부분이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직접 얼굴을 보고 대면하던 시대에서 모발, 인터넷, 화상으로 만나는 시대가 되었다.

 

▲ 국내외 여행이 전면 금지된 시드니국제공항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 크리스찬리뷰

 

코로나 이전에는 성대하게 치르던 결혼식이 코로나 이후에는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주례사와 신랑, 신부 그리고 증인 둘을 포함해서 달랑 다섯 명이 전부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 여행, 단체 여행, 동창회, 친목회, 구역 모임 등이 활발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가족이 아니면 2인 이상 함께 모일 수 없고, 꼭 필요한 일이 없으면 외출을 금하고 해외 여행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주님의 해(AD로 살아야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바뀌게 될런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사태 이후에 세상이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BC- Before Corona, AC- After Corona가 인류의 역사를 가르는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도 코로나를 중심으로 BC와 AC로 살아야 할까? 우리 역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코로나를 역사와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BC와 AD를 역사와 내 인생의 분기점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AD, 주님의 해'로 살아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우리의 역사와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책무를 지속해야 한다. 첫째는 예배다. 지금 각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도 예배당에 드리는 예배처럼 성령의 임재를 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령과 진리의 예배이어야 한다. 결코 온라인 예배라고 해서 영성이 흐트러지거나 얄팍해져서는 안된다. 지금은 오히려 더욱 집중하고 더 깊은 영성의 예배를 드리도록 주님을 갈망해야 할 때다.

 

두 번째는 선교와 구제다.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지만 우리의 선교와 구제는 결코 멈출 수 없다. 선교사들의 발이 묶이고 우리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어도 교회의 땅끝을 향한 선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구제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비록 코로나 사태 이후를 산다해도, 지금처럼 각 처소에서 참된 예배를 드리고 또 선교와 구제에 힘을 쏟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AD 주님의 해’,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역사를 살게 될 것이다.

 

▲ 사회적 거리 두기를 알리는 웨스트필드 쇼핑센터 (혼스비) 안내판.     © 크리스찬리뷰

 

멈추어 버린 인간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200만 명에 이르면서 인류의 이동이 멈추어 섰다. 호주를 비롯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각국이 출입을 금하고 국내에서도 이동 제한하는 등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휴교를 하고 공장은 가동을 멈추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여행이 전면 금지되면서 우리의 일상이 위축되거나 정지하고 있다. 인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류와 활동과 이동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삶의 질도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전 세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해졌다.

 

▲ 문 닫은 음식점. 호주내 모든 레스토랑은 배달 및 테이커웨이만 가능하다     © 크리스찬리뷰

 

코로나의 역설, 회복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세계의 굴뚝이자 코로나 사태의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의 공기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수집한 위성 데이터 결과에 의하면 지난 2월 한 달간 중국에서 화확연료 소비로 대기 중으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같은 결과는 곧장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지난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인 날이 단 이틀에 그친 것이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18일 동안이나 ‘매우 나쁨’이었는데, 무려 9분의 1로 줄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애틀·LA 등 미국의 대도시에서도 이산화질소 배출량이 50% 이상 감소했고, 코로나 피해가 심각한 이탈리아도 4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멈추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의 공기는 더 맑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Corona’s paradox 코로나의 역설’이다.

 

코로나의 역설은 물(수질)에도 나타났다. 연간 2천만 명이 찾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급감을 했는데, 운하의 수질은 개선된 것이다. 운하의 밑바닥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아졌다고 한다. 그러자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됐고, 심지어 60년 전 사라졌던 돌고래도 돌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곳곳의 동물원이 문을 닫으면서 동물원은 그야말로 동물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소문이다.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는 덤불멧돼지가 울타리를 넘어 동물원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목격됐고, 아쿠아리움은 펭귄들의 세상으로 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적이 끊긴 도시에는 야생동물들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사슴이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영국 웨일즈에는 염소 떼들이 나타났고, 칠레 산티아고에는 퓨마까지 등장했다.

 

▲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연간 2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급감했다.     © 크리스찬리뷰

 

미국 오클랜드에서는 야생 칠면조 떼가 거리를 활보하고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에는 밤이 되자 곰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SNS에 올라왔다. 인도의 한 해변은 폐쇄가 되면서 올리브 바다거북이 무려 80만 마리가 돌아와 둥지를 틀었다는 기막힌 소식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간은 갇혔는데 동물들은 자유를 얻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또 하나의 역설은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예방 수칙을 지키면서 사람들도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보도다. 실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의 98개 병원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1월과 2월의 입원환자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와 3.5% 감소했다. 사태가 악화된 3월에는 그 일곱 배인 26.5%가 급감했다. 이처럼 아픈 사람이 눈에 띄게 줄고, 또 이전보다 건강해져서 병원 방문이 줄었다는 의견이다.

 

코로나의 역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범죄도 크게 줄었다. 한국의 경우 전국에서 112신고가 가장 많은 홍대 인근 지역이 20% 감소했고, 보안업체 출동도 22%가 줄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더욱 현저하다.

 

이탈리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2일까지 전국적으로 집계된 범죄 건수는 5만 2천596건으로 전년 대비 64%나 감소했다. 그중 성폭력이 69%, 절도 67.4%, 강도 54.4%, 마약 범죄도 46%나 줄었다.

 

특히 주택 침입 절도는 72.5%로 대폭 줄어들었다. 또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 간의 대화도 많아지고, 가정 폭력도 43.6%나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의 역설은 인간의 삶과 환경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지구촌의 풍경을 빠르게 바꾸어가고 있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일이 생겨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코로나의 역설이 바로 이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신앙에도 코로나의 역설이

 

우리의 신앙에서도 코로나의 역설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풍경은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외형으로만 볼 때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예배처소가 교회당이 아니라 각 가정이 되었다. 부서별로 흩어져 드리던 예배에서 가족끼리 모여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

 

교회당에서 예배드릴 때보다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와 여유가 주어졌고, 교회에서 하던 오후 활동과 각종 모임, 소그룹 활동은 임시 휴업 상태다. 하루 온종일 교회에서 집중하던 주일에서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 주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온라인 예배가 낯설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관심있게 드렸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예배의 깊이가 얕아지고, 주위가 산만해지고, 심하게는 때우는 식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신앙에도 코로나의 역설이 나타나야 하는데, 자칫 신앙 생활 전반이 두루뭉실해지고 침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는 온라인 주일예배를 대하는 마음 가짐을 늘 신선하게 유지해야 한다. 온라인 예배도 모발폰이나 TV 스크린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예배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배를 준비하는 자세, 복장, 예배 드리는 태도도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가 있다.

 

▲ 미국 메릴랜드 세인트 에드워드성당의 조셉 매켄리 신부는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 검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드라이브 스루 고해 성사를 실시하고 있다. (JTBC 뉴스룸 캡쳐)     

 

두 번째는 온라인 예배 후에 가족들과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것이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들과 또 아내와 남편과 나누면서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한 주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개인 묵상과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날마다 주님과 친밀하게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우리의 영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깊어질 수 있다.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성경 읽기에 더 긴 시간을 할애하고, 교회를 위해 성도들의 건강을 위해 코로나 사태의 진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성실하게 해 나간다면, 다시 일상이 회복되었을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든든하고 깊어진 코로나의 역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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