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를 섬기라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4/27 [15:26]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0:42)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는 관용적 표현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표현되고 사람의 돌봄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 만큼, 작은 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성경 속은, 성경 밖 유대 사회에 속한 작은 자들이 누리는, 교과서 천국이었을 뿐, 약자들을 위한 사회 시스템은 늘 오작동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해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향한 사역을 선포(눅 4:17-19)하면서 출사표를 던진다. 또한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눅 14:13)는 정신으로 일하고, 사역의 후반도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마 25:31-46)를 언급하시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예수님]에게 한 것이라는 교훈으로 마무리한다.

 

물질만능주의가 떠받힌 성공제일주의가 성행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다리의 위쪽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한 우리가 우리 중의 작은 자들에게 예수님 대하듯 할 수 있을까?

 

“나는 못 한다!” 물론 “남도 힘들다”. 이미 과도하게 심리학과 성공학, 마케팅과 조명받는 공연문화의 영향을 받아 변질을 거듭한 이 시대 기독교의 왜곡된 가르침이 혹 이를 우회하는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섬기는 자가 큰 자다’.

 

가장 짧은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가 흥미롭게도, 어떤 복음서 기자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한 구절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막 14:7).

 

우리 중에 항상 있는 가난한 자들을 우리는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돕고 있는가? 종이 되어 섬기는 인자 예수님의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마가다운 멋진 도전이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나오는 삭개오의 결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는 후반부가 아니다. 조건문이다. 그러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라는 부분은 자원하여 조건 없이 무조건 하겠다는 파격적 나눔 실천이다. 요사이 감옥 가기 싫은 재벌이 내놓는 사회적 기부와는 결이 다르다.

 

삭개오의 결단은 지상에서 드문 화젯거리가 되고 간증의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결단을 내릴 필요나 주목받을 이유도 없이, 평소 선행과 구제로 나눔을 실천한 고넬로(행 10:2, 4, 31)와 다비다(행 9:36)를 보라. 그들은 어두운 밤 같은 세상을 따뜻하게 덮는 천상의 이불에 박힌 빛나는 보석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베드로는 이방인 선교팀을 이끄는 바울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했고 이는 바울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다(갈 2:10). 일부 교회 교인들은 부자와 빈자를 차별했다(약 2:3). 야고보는 반문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큰 자가 되면 나중에 하지’라는 유보는 자신도 확신 못 하는 미래를 빌미로 “내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로부터 면제받으려는 꼼수다. 이도 저도 힘드니 눈 딱 감고 부재중인 사람으로 투명 인간이 되려고도 하지 말자. 그냥 “내 모습 이대로” 작은 자가 되어 작은 자를 섬겨보자.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면 자주 충성의 옷을 입은 아첨이요 아부가 되고, 작은 자를 섬기는 큰 자(대인)는 자주 작은 자와 삶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 아닌 자선을 베푸는 시혜자가 되고, 관심은 사람을 떠나 공덕비에 가 있기 쉽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이라고 하셨다. 보라. 온통 작은 자, 작은 것 아닌가! 거창한 예수의 이름으로도 아니고 제자의 이름으로, 큰 자 여럿이 아니고 작은 자 중 하나에게, 저수지가 아니고 냉수 한 그릇이다.

 

“…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는 말씀을 실천하는 자, 가히 “…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후 9:9)는 말씀 이루리.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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