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人間論), 인간이란 무엇인가? V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4/27 [15:27]

 

‘인간다움’이란? 사람의 결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 말에는 깊은 가시가 있는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사람의 탈을 썼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라는 표현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미하는 ‘사람다움’ 즉 ‘인간다움’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 볼 수 있을까?‘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인간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지식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다움의 요소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묵상해보아야 한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어떤 때일까?” 이 질문과 “태초에 삼위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사실 이런 질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의 연결고리는 사랑이다. 삼위의 하나님은 서로 교제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셨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인간다운 때는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줄 때이다.

 

이 사랑의 요소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은 적나라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디테일한 ‘사랑’의 요소를 다 만족하는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지구상에는 몇이나 될까?

 

지구 역사를 통 털어서 세어 본다 하더라도 열 손가락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는 인간이 닮아야 할 가장 원형으로서 인간상을 제시한다. 사복음서를 보면 그의 삶과 가르침들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하고, 억눌리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예수는 그려진다. 그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 주셨다. 억울한 자들을 신원하여 주시고, 죄인들의 친구이기를 자청하셨다. 가난한 자들에게 입히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수건을 차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이처럼 한없이 자애롭고 사랑의 표상이셨지만, 불의에 대해서는 버락 화를 내고 채찍을 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곁에는 항상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약한 자, 억울한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그들과 삶을 나누시는 모습은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이 땅에 서야 할지를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인간은 사랑을 위해 지어진 존재임에 분명하다.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서로 사랑 가운데 교제하고 계셨다고 학자들은 피력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당신의 대리적 존재로 사람을 만드시되 당신의 형상을 닮아 사랑하는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아담을 만드신 후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온 이유도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2:18)가 그 이유였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는 삼위일체의 흔적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교제하며 사랑 가운데 하나 되셨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받은 인간도 혼자 있는 것이 당연히 좋아 보이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때는 서로 사랑할 때이다.

 

물론 이때의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 필레오의 사랑, 아가페의 사랑 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사람이 사람다워 지려면 태초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처럼 인간 사이에 서로 세워주고 아껴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이상을 볼 때 위대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가 정의한 인간에 대한 진술은 설득력이 있다. “인간이란 말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삶의 관계성 속에서 혹은 사귐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개념이다” 그래서 한자어를 보더라도 인간을 뜻하는 사람인(人)자는 서로 의지하고 세워주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서로 세워주고 한 몸인 존재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세우신 중요한 기관(organization)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결혼 제도를 통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이다. 이 두 가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 안에 심오한 유비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정은 혼인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세례를 통해 들어온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는 신앙 공동체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 두 가지 유비는 관계성의 유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인격적 관계성 속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하여 삼위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셨듯이 우리도 서로 세워주고 사랑하므로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들인 것이다.

 

사실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을 기뻐하고 교제하며 사랑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라면 이와 같이 우리 이웃인 타자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책임 또한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이 관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과의 관계성이다. 그런데 사실 이 관계는 구분은 할 수 있어도 분리할 수는 없는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의도하셨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이웃과 타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믿음이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타자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론을 종합하며

 

우리는 그동안 몇 번의 인간론 연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올바르고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이나 철학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함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칼빈(John Calvin)이 지적하였듯이 인간자신에 대한 지식은 결코 자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 즉 살아있는 영(Living soul)이 되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참 인간 이해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이해에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만 인간의 존재가 규명되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사랑을 위해 지음받음 존재이므로 인간이 서로 사랑할 때 인간다움이 발휘될 수 있다.<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전 시드니신학대학, 웨슬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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