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지구적 차원에서 리셋(reset)이 이뤄지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리셋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구 전체나 일부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기억 장치나 계수기 등을 영(零)의 상태로 전환하는 일이다. 컴퓨터를 생각하면 된다. 바탕화면에 수없이 깔아두었던 것들을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로 만드는 게 리셋이다.
우리는 지금 미증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지구상 70억 인구 가운데 무려 40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전의 삶과 단절하며 일종의 격리 상태로 살아야 했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대처를 잘해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미군 병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사망할 것이라 한다. 섬뜩하지만 속수무책이다.
전 세계 학교와 교회, 성당, 사찰이 닫혔고 온라인 수업과 예배가 일반화됐다. 우리를 지배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도 빈자도 유명인사도 무명 씨도 강대국 총리도 감염 위험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결과다. 어떤 면에서 바이러스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일시에 이뤘다. 이런 엄청난 일을 겪으며 사람들은 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상시의 생각이 아니라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처음엔 극도로 불안해하다 점차 분노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 전체가 지금 이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구적 차원의 흔들림의 주체는 누구일까. 바이러스는 이 땅을 흔드는 도구다. 이번은 바이러스지만 다음 흔들림의 도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일 수 있다. 워낙 엄중한 상황이라 내놓고 이야기하진 못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이 흔들림이 어디서 왔는지 직감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다! 그분은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흔드심’은 성경 곳곳에 나와 있다. 하나님이 이 땅을 흔드시는 이유는 이 땅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을 마구 흔들어 각종 쓰레기와 잡동사니들, 기초가 부실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은 치워버리려 하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의 삶과 사고를 지탱해왔던 모든 것들을 재정립해야 한다. 모든 것을 지우고 리셋을 해야만 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우리가 리셋하지 않았기에 강제로 리셋을 강요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리셋해서 깨끗해진 그곳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심어야 한다. 모든 것이 흔들리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견고한 터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딤후 2:19) 범죄와 폭력, 오만, 우상숭배, 물질주의 등 바이러스 하나에도 흔들려버리는 모든 초라한 잡동사니들을 지우고 거기에 하나님의 견고한 터를 세워야 한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이후, 한국교회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생존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리셋해야 한다. 리셋해서 리본(reborn·새롭게 태어남)하고 리스타트(restart·새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태형|현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고려대 사학과 및 미국 풀러신학대학원(MDiv) 졸업, 국민일보 도쿄특파원,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역임.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