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구인가? 기독론(基督論) 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예수는 없다

 

오래전 오강남 교수는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이 주는 제목으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제목처럼 예수의 실존을 부인하는 책은 아니다. 실제 저자는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지 않는다. 예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착각하고 믿고 있는 그런 종류의 예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평적인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은 예수가 1세기 팔레스틴 땅에 실존했었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비평적인 연구들을 통해 입증된 사실은 예수는 주후 30년경 팔레스틴 땅을 거닐며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하고 사회적 소외된 자들의 친구였으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했었던 인물이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도 인정하듯이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재 했었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복음서와 고고학적 문헌 자료를 근거로 단지 외형적인 예수의 역사성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기독론 연구 역사

 

초대교회 이래로 교회와 학자들은 예수에 대한 논의를 신조적(creed)이고 교리적(doctrine)인 부분에 치중해 왔었다. 즉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일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기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도 참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해야 하는 난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초기에는 유대인들의 반발과 정죄에 반대하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처럼 생각하여 그의 신성을 훼손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 것을 바울 서신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에비온주의와 같은 유대계 분파는 강한 유일신론의 전통을 따라 단지 예수에게 신적인 임재가 일시적으로(예수의 세레시부터 십자가까지) 머무른 것이었을 뿐이라고 하면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했다. 그리고 예수의 아들됨은 단지 입양된 아들로만 인정하였다.

 

아리우스주의는 예수가 단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골 1:15)에 불과할 뿐이고 성부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요 성자(예수)는 그보다 열등한 자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유대교의 반대와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예수가 참 신(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인간임을 확증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공의회들이 소집되었다.

 

그러나 17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예수 연구에 대한 초점이 바뀌어 갔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사람들의 사고구조와 관심을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꾸었고 그 결과 인간이 진리의 규범이라는 오래된 그리스 철학의 인식원리가 재발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신앙과 신학 안에 이성주의와 반기독교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다. 역사적 예수연구는 이러한 시대사조와 맞물려 전통적인 예수 연구에 반기를 든 학자들이 신학적 전통에 있는 고백적 예수와 실제 팔레스틴의 땅을 걷고 군중들과 어울렸던 역사적 예수는 다를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

 

역사적 예수 연구의 저변에는 나사렛에서 실재했던 인간 예수를 탐구하면 제자들과 바울에 의해 해석되어져 신앙으로 발전한 성경 속의 그리스도와는 다른 인물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기대와는 다르게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에 대해 갖고 있는 그들의 선입견으로 어떤 자료들은 인정하고 다른 자료들은 거부하는 태도들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였던 슈바이처(Schweitzer)에 의해 비평되기도 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1차 자료인 복음서 본문에 대한 비평적 분석에 그 기초를 두고, 예수가 실제 살았던 당시의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배경을 통해 예수의 실존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역사적으로 예수는 AD 30년경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전파를 시작으로 그의 공적생애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와 로마 총독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였고 로마 총독부는 그를 로마황제의 통치를 부정하는 반체제 인물로 누명 지어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였다.”

 

역사적 예수 연구 자료들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하지만 예수를 인격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만난 예수는 역사상의 실존하는 예수일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바꾸고 변화시킨 신앙의 예수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탐구하면서 신앙적 예수를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균형잡힌 접근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K라는 사람을 알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K를 바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객관적인 자료나 정보들을 수집하여 읽는 것이 K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객관적인 자료나 정보가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런 지식은 K라는 사람에 대하여(about) 간접적인 지식과 정보는 제공할 수 있지만, K라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oneself)를 경험하여 알 수는 없다. K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K와의 직접적 부딪힘과 인격적 만남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문헌적 자료들이 주는 예수의 상을 통해 예수에 대하여(about)는 알 수 있지만 예수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예수와의 인격적, 신앙적 만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탐구하면서 신앙적 예수를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그동안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예수에 대해 신조적이고 교리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온것이 사실이다.

 

계몽주의 전까지의 기독론 연구는 예수그리스도 교리에 대한 확립과 신앙적 변증이 대부분이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여기에 대한 반발로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교리적, 신앙적 접근도 필요하고 역사적 예수 연구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실패한 것은 신앙적 접근없이 역사 비평적으로만 접근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머니스트 인간 예수를 발견 했을지언정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를 무시하고 신앙적 접근만 하는 것도 위험하다.

 

초대 교회의 영지주의 이단과 신비주의는 예수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영으로만 임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적 예수, 신비스러운 영의 예수를 강조하여 이단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전통적 교리적 접근만을 강조할 때 우리는 영지주의적이고 신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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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9 [16:21]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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