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눈, 군인의 눈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8/25 [16:02]

 

나의 대학 시절은 유신 정권 시절이었다. 군인 출신의 혁명가인 대통령은 왕보다 더한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 신입생인 내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로마군단같이 방패와 투구를 쓰고 몽둥이를 든 경찰 병력이 교문 앞에서 대열을 이루고 그 앞에 가스를 방사하는 포신이 보이는 검은 장갑차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성을 공격하려는 군사였고 학생인 우리들은 성을 지키는 민병대 같은 느낌이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부대가 어깨총을 하고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면 ‘타타타타~’하는 총성과 함께 공중에서 주먹덩이 만한 최루탄이 쏟아져 내렸다.

 

이어서 바로 가스를 뿜으며 보기에도 겁이 나는 검은 장갑차가 돌진해 왔다. 학생들은 학교 뒷산에서 리어카에 담아온 돌들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러다 싸움이 치열해지면 여러 개의 농구대에 불을 붙여 교문 앞 언덕 밑으로 굴려 보내기도 했다.

 

학교 앞 일대의 상가는 유리창이 깨지고 기와가 깨지고 하면서 문을 닫았다. 머리에 띠를 맨 운동권의 핵심인 학생들이 우리가 등교하면 교실에 들어와 소리쳤다.

 

“우리는 군사독재인 유신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합니다. 독재정권과 재벌만 배 불리고 잘 살면 안 됩니다. 착취당하는 불쌍한 노동자도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런 말에 공감했다. 다만 용기에 차이가 있었다. 앞서가는 친구는 시위를 주도하고 감옥에 갔다. 그리고 후일 민주화 투사가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법무장교로 근무할 때였다. 여러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그 부대장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육사 출신 중령인 대대장과 얘기를 하는 도중이었다. 다른 장교들이 몇 명 그 자리에 있었다. 그가 하는 말 중에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정권은 우리 육사 출신 군인이 잡아야 해. 우리의 주적인 북이 남침하려고 노리는데 국회를 봐. 김대중, 김영삼이 패거리를 짓고 맨날 반대하느라고 혼란하잖아? 대학생놈들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치를 하고 말이지.

 

우리 군이 권력을 잡아야 일사 분란하게 사회질서를 잡을 수 있는 거야.”

 

그가 보기에는 국회에서의 토론이나 찬반은 혼란인 것 같았다. 절대적이고 획일적인 명령체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일본의 군국주의도 장교들이 의회정치를 혼란으로 본 데서 비롯된 역사가 있었다. 그런 부대에서는 자주 ‘충정훈련’이라는 게 있었다. 그것은 데모진압훈련이었다. 그 훈련광경을 이따금씩 봤다. 철망이 달린 철모를 쓴 군인들이 일정 간격으로 열을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이 총에 꽂혀 있는 섬뜩한 검은 칼날을 앞에 내세우고 군화 발을 땅에 구르면서 대열을 이루어 한 발 한 발 시위대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그 앞에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오합지졸의 시위대가 있었다. 병사들을 옷을 입혀 가상의 시위대로 만든 것이다. 훈련을 받는 병사들에게 그 앞의 시위대는 국민이 아니라 타도하고 파괴해야 할 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러운 세뇌방법이기도 했다.

 

대학 때의 민주화 운동이 군대에서는 사회질서를 교란시키는 반역적인 행위가 됐다. 우리는 대학시절 예전 헌법에 있는 대로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 개인이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는 사회였다.

 

군사회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공산주의 북의 남침 위협 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재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논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런 비유가 떠올랐다. 말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정말 이상하겠지. 말의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말같이 먹고, 말같이 부림을 받아야겠지.

 

그런데 거기서 인간이 되면 어떨까? 말들은 일제히 인간을 욕하고 내쫓을 거야. 세상의 편견과 오해는 바로 그 말의 눈 같은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일부 군인의 시각을 말의 눈으로 폄하하는 건 아니다.

 

보는 시각이나 인생관이 많이 다를 수 있는 인간들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개의 눈으로 보는 인간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고 나무 위에서 무심히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까치는 무얼 볼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다른 눈을 가진 존재들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좌우가 대립되고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있다. 너무 단순한 이분법에 묶여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의 회색들은 머물 곳이 없기도 하다.

 

관념으로 포장된 무슨무슨 주의라는 허울을 걷어내고 수양된 인간 위주의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