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본 프랑스 대혁명

“인간은 감정, 가슴이 요동칠 때 죽음을 불사를 정도의 강력한 열정이나 힘이 생기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의 성공도 감정이나 신비주의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김병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08/25 [17:01]

 

 ©부글북스    


일반적으로 역사는 역사가들이 기록한다. 하지만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철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문화적으로 혹은 심리학적으로 볼 수 있다. 어떤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역사는 해석될 수 있다.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최근에 필자는 프랑스 대혁명(1789년 5월 5일, 시민 혁명)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퀴스타프 르 봉이 쓴, ‘프랑스혁명과 혁명 심리학’이라는 책이다. 심리 상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을 간략하게 요약을 하고 필자의 견해를 붙이도록 한다.

 

프랑스 혁명의 배경

 

우선 혁명의 시작은 언제나 어떤 확실한 불만으로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들 수 있다.

 

제1계급(추기경 등 로마 가톡릭 고위 성직자)과 제2계급(귀족)은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주요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구의 98%를 차지했던 제3계급(평민)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불만은 세금의 부담 때문이었다고 했다.

 

루이 16세는 영국의 신대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 전쟁(19775-83)을 돕기 위해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재정이 바닥이 나게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 경제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결국에는 세금을 백성들에 많이 부과하게 됨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어느 시대 어느 백성이고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려면 조세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백성은 안정을 되찾고 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어 있다.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사는데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시작에는 언제나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리고 이 지도자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시 프랑스 시민들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준 지도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면서 평등사회를 추구한 장 자크 루소였다.

 

▲ 1789년 8월 26일 발표된 프랑스 혁명의 근본 정신을 밝힌 인권 선언문. 자유, 평등, 주권재민, 사상과 언론의 자유 등 근대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 인권 선언은 이후 세계 여러 나라 헌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크리스찬리뷰

 

다시 예를 들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신물이 난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를 절대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나치 정권이 세워진 것으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혁명의 지도자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담대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마치 ‘죽으면 죽으리라’와 같은 삶의 자세가 있을 때 백성이 따르게 된다. 마치 모란 잎 위에 물방울과 같다. 큰 물방이 작은 물방울을 흡수하게 된다.

 

그리고 혁명의 시작에는 이론이 있어야 하지만 이론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혁명에는 감정이나, 혹은 신비주의적 종교적 성향이 있을 때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논리로만 가지고는 군중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중이 지도자들의 이론을 습득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혁명이 끝이 나야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론만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과학혁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혁명이나 종교 혁명은 감정이나 신비주의적 종교적 내용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감정, 가슴이 요동칠 때 죽음을 불사를 정도의 강력한 열정이나 힘이 생기게 된다. 즉 머리로써, 말로써는 약하다는 것이다. 가슴으로 그리고 그 어떤 행동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성공도 감정이나 신비주의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었다.

 

4.19 혁명

 

한 가지 우리 한국의 예를 들면 1960년 자유당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3.15 부정선거를 주도한 이승만 정권을 무너지게 한 4.19 혁명도 결국 감정적으로 불씨가 된 것이다. 1960년 전라북도 남원 금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산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에 아침 마산 중앙 부두 앞바다에서 죽은 채로 발견이 된 것이다.

 

3.15 부정선거 시위대에 가담했을 때, 경찰이 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로 시신이 인양되는 기사가 부산일 보을 통해 보도되면서 온 백성의 가슴이 움직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학생들이 경무대로 진격을 했고,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발로 그 당시 경무대를 걸어 나오게 되면서,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게 된다. 가슴이 움직이고, 확신한 종교적 신념이 생길 때만이 죽음을 초원할 행동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력함이 없이는 한 국가의 체제가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혁명, 허공을 치는 메아리

 

마지막으로 혁명은 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을 요구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프랑스 대혁명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밟고 난 뒤에 그 열매가 맺혔다고 하는 부분이다.

 

1792년 프랑스혁명 기간 중, 9월 대학살 사건만 해도 거의 프랑스 전국에서 1만 6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나 살고 너 죽고라고 생각하는 지도자나, 백성들은 끝내는 위대한 혁명을 일구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역사의 사실로 남아 있다.

 

한 시대를 바로 잡는 데는 그 시대마다 혁명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부패했을 때, 종교 개혁(혁명)이 있었고, 전제 군주시대가 싫었던 사람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

 

부르주아(bourgeois, 자본가 계급)에 반발해서 칼 막스 이론으로 공산주의 혁명이 있었다. 커다란 불만이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혁명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은 이것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심리적 측면에서 감정적으로, 신비주의적인 내용을 갖추지 못하면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어 성공을 하지 못한다는 심리학적인 관점의 역사를 보면서, 결국 혁명은 옳고 그름만 가지고, 말로만으로는 허공을 치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병근|엠마오대학 한국학부 학장, 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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