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내가 네게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코로나 조심하라’라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전화하셨다. 본인 이야기인데, 나 들으라고 전화하신 느낌이다.

 

“교회 노년부 방학 숙제로 예레미야 말씀을 쓰고 있는데, 이제 52장 마지막 한 장만 쓰면 되니 어서 끝내고 기도 많이 할 터이니 너도 조심하거라. 목사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

 

짧은 몇 마디로 이리도 강하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고, ‘나도 건강 잘 챙겨야 하겠다’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참 대단하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예레미야서를 쓰고 계신다는데 아들은 읽기라도 해야 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위로의 예언을 하게 하신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품게 하시는 일은 단연 하나님께서 최고이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너는”. 하나님께서 개인과 관계하신다. 살아 계신 위대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지목하여 말씀하셨듯,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적용 방식을 통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책이 되고, 우리 믿음은 살아나 생활로 튀어나온다. 바로 당신과 내가 기도해야 한다.

 

“내게”. 우리의 믿음, 예배와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특별한 관계 맺기를 원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라는 다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바로 당신과 내가 보혈이 흐르는 은혜의 강에 놓인 십자가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부르짖으라”. 기도 요구요 명령이다. 그분께 부르짖어 본 적이 있는가? 부르짖는 간절함이 있는가? 연기자는 극적 효과를 위해 자주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울부짖는 가짜 연기도 진짜처럼 하는데, 우리는 도저히 가짜일 수 없는 진짜 내 존재의 고뇌, 삶의 문제, 장래의 어두운 전망 앞에서 왜 부르짖지 않는가?

 

위로와 해결이 필요한데도, 탤런트의 연기만큼조차도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 아닌가? 삶의 전부를 드러내 놓고 나를 살려달라고 사실적으로 바로 당신과 내가 직접 울부짖어야 한다.

 

“응답하겠고”. 이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차례이다. “너는 내게”와 “내가 네게”…하나님께는 내가 부르짖지만, 응답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다. 당연한 소리? 허나, 이렇게 쌍방의 화살표 등식을 얼마나 두텁고 강력하게 경험하며 살고 있는가? 부르짖는 막강한 믿음의 기도는 강력하게 역사한다.

 

이 성구 앞절은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2절). 어떤 다른 보장이 더 필요할까? 당신과 내가 이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상상에는 제한이 없다. 마음껏 상상하라. 내 지식과 경험을 뛰어넘을 뿐 아니고, 무제한의 상상조차 초월하여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실 하나님은 실로 크고 위대하신 분이다. 당신과 내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크고 은밀한 비전을 품고 꿈꾸기 시작할 뿐 아니라 크고 은밀한 일을 실제로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말한다. 설사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유롭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신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도 자신이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신다.

 

그분의 응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시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6절 이후로 계속되는 말씀은 온갖 좋은 약속들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따라 꿈꾸면서 하나님께서 열어 가시는 내일의 희망에 당신과 나는 믿음으로 참여할 몫을 받았다.

 

이 숙제를 어머니가 주셨나? 하나님께서 주셨나? 경계가 모호하다. 어머니가 전화하신 이유가 지금도 알쏭달쏭하듯. 그러나 당신과 내가 받은 숙제가 어머니의 한국 여름 방학 숙제보다 더 무겁다는 점은 확실하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노트에 쓰지 않고 한 부분을 읽었으니, 코로나 겨울 방학 숙제로 이 정도는 시드니에서 해야 공평할듯하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20/08/25 [17:07]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배너
배너
배너
포토 포토 포토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