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누구인가? 기독론(基督論) IV
 
주경식/크리스찬리뷰

 

예수의 실제 모습이나 얼굴은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

예수와 마주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예수의 생애를 전하는 성서조차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외모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읽을 때

우리가 예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를 알던 사람들이 평생 그를 잊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엔도 슈사쿠, <예수의 생애> 중

 

 

    ©Robert Nyman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메시야에 대한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남 유다마저 바벨론에 망하면서(B.C 587) 시대적인 배경으로 메시야 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백성들이 고통과 억압의 과정들을 지내면서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다윗은 한국으로 말하면 고구려 광개토대왕처럼 인접하고 있던 중국을 호령하고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근처의 많은 땅까지도 차지했던 전쟁에 능한 왕이었다.

 

이처럼 바벨론에게 나라를 짓밟히고 유랑했던 유대인들은 민족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다윗왕 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자기 민족을 구원해줄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의 별을 국기로 삼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새의 줄기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다윗 시대와 같은 찬란한 영광의 시대를 가져다줄 메시야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것이 메시야 대망 사상이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요한도 메시야를 기다리던 선지자였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기인의 차림으로 외치는 자의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나와서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냐? (다시 말해 네가 메시야냐?는 말이다.)고 물었다. 그때 세례요한은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능력 많은 이가 오시나니 그는 불로 세례를 줄 것이요 자기는 그 신들메도 감당치 못한다(요 1:27) 라고 고백한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자기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다시 한번 예수가 그리스도인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예수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들어 설명한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셔서 메시야 사역이 자신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말씀하였다. 다시 말해 자신이 너희가 기다리는 메시야(희랍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인 것을 밝힌 것이다.

 

또한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3-14).

 

그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신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에 대답하는 이가 바로 베드로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을 예수는 긍정하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니라” (마 16:17)라고 말씀하신다.

 

곧, 본인이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메시야’)인 것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다. 또는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였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나의주 나의 하나님”(요 20:28)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16:16)이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순수한 가치 중립적인 묘사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라는 고백에는 예수 그리 스도와 만난 사람들의 실존적인 구원의 체험이 담겨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신학적 해명의 책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자들은 이 복된 소식을 자신만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의 서신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말씀 중의 말씀

 

위에서 살펴본대로 기독교의 출발은 예수그리스도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칼 바르트는 그의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에서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주체를 서술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기독교는 전혀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제거하면, 기독교는 둔화되고 약화된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기독교를 창조하였다. 그가 없이는 기독교란 결코 존재할수 없었다.” 라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중심이며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그리스도가 진리이며 요한이 진술하는 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하신 말씀(요 1:9)인 것이다.

 

그래서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책 <Christ the Centre: 그리스도의 중심성>에서 기독론(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연구)이야 말로 말씀 중의 말씀이며 학문 중의 학문이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말씀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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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5 [17:08]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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